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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수안 Jan 28. 2024

하나 장만해야겠어요.



  요즘 싱어게인 4를 즐겨본다. 가수들의 노래도 좋지만, 심사평을 듣기 위해 방송을 본다. 심사평 덕질을 하는 중이다. 그중 마음에 꽂는 말이 있었는데, “미뤄놓고 외면해 놓은 감정들의 축적이 한”임을 이 공연을 통해 알았다는 김이나의 말이었다. 한국인에게만 친숙하지만 풀어 설명할 수 없는 한이 저런 거라면, 내 속에도 하나 키우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넌 좀 그건 고쳐야 해.”,“언제 다시 돌아올 거야?.”,“아직도 충분히 못 논 거예요?”의 칠판 긁는 듯한 소리들이 자주 들려올 때마다 희미해지는 웃음으로 외면했다. 마치 피구 경기에 끝까지 살아남는 능숙한 회피인간이니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가끔 정면으로 돌진하는 공에 스스로 머리를 대며, 치명상도 감수하며 피 흘린 채 생존해 왔달까. 


 이런 생존법의 장점은 역시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주위에 아무도 싸우지 않고 살아남는 사회인 본 적이 있는가. 여기 있다. 그런데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공격이 멈추지 않는다. 이 게임은 한쪽 편이 전멸해야 끝나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내가 공에 맞지 않는 이상 끝이 없다. 계속 그들은 선 밖에서 피구왕 통키 마냥 불꽃 슛을 던진다. 맹속도로 날아오는 공을 잡기엔 무리다. 

  해결책은 내 쪽으로 오는 공을 잡거나 터트리거나, 상대편을 0으로 만들거나이다. 난 공격성이 없는 사람이라, 상대편을 맞출 용긴 없다. 결국 공을 터트려야 한다. 혹은 무서워서 나에게 던지지 못하거나. 내 몸에 뿔이 나와서 공을 터트리면 어떨까. 뿔로 한 번 공을 터트리고 나면, 또 공을 던져도 뿔이 터트릴 걸 알아서 더 이상 던지지 못하겠지. 그럼 이 게임은 끝이다. (참고로 이건 절대 주제 때문에 억지로 연결한 게 아니다. 아마 조금의 우연이 있을 뿐이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뿔이다.  


  뿔은 방어용일 뿐이다. 예시로 들자면, 처음 6학년 담임을 맡을 때의 일이다. 6학년들의 거대한 키와 반항적인 성향을 소문으로만 많은 걱정을 했었다. 의외로 첫 1달간 아이들이 말을 잘 듣고 착하게 지내서 아주 편했던 적이 있다. 나중에 물어보니, 내가 첫날 아주 무섭게 보였다는 것이다. 신경 써서 맞춘 도수 없는 뿔테 안경과 신경 써서 두껍게 그린 아이라인의 효과였던 듯하다. 이것처럼 뿔은 나를 바꾸지 않고도, 공격을 막을 좋은 방법이다. 다가오지 말라, 다치기 싫으면 멀리 떨어져라는 경고의 표시로 말이다. 


  뿔은 나의 매력을 높여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적당히 위협적이며, 놀이동산의 귀여운 머리띠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순한 양도, 무쌍인 염소도, 눈망울이 커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소마저도 뿔 하나로 반전을 가지고 있다. 오히려 1.5배 미모를 향상해 주는 귀걸이처럼 근사한 매력도 상승의 부위가 될 수도 있다. 


 어디에 나면 좋을까. 여러 뿔들을 살펴보면 제일은 이마 쪽, 머리 쪽인 거 같다. 소와 염소 뿔이 적당히 귀엽게 난 듯하다. 코뿔소의 뿔은, 참 애도의 말을 전하고 싶다. 코뿐만 아니라 흔히 난다고 하는 엉덩이는 피하고 싶다. 아끼는 소파마다 구멍을 내고 싶진 않으니 말이다. 이왕이면 사람들이 납득이 갈만한 자리에 나길 바랄 뿐이다. 아 저건 뿔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장소에 뿔이 나길 바란다. 저건? 뭐지? 나뭇가지인가? 아니면, 각질인가 싶을 정도의 크기나 모양은 곤란하다.


  뿔이 필요하다. 이 정도면 뿔이 나야 할 거 같은 사람 같은데, 그냥 나의 상상일 뿐이다. 뿔처럼 나를 보호해 줄 날카로움을 찾아 갈고닦는 게 나에게 시급한 문제인 듯하다. 그렇다. 나는 뿔이 좀 필요하다. 뿔난 것을 보여주긴 해야겠다. “야! 너, 뭐라고 했냐?” 







2024.01.03. 일기 

그것이 생겼다. 

오늘 아침 연락온 선생님의 전화가 요인이었다.  “언제까지 쉴 거예요? 아직도 부족해요? 노는 게? 돌아오시죠.”는 4단 질문 공격에 그냥 하하하 웃으며 죄송해 요하며 끊은 전화. 그러며 그냥 회피반응처럼 휴대폰을 보려고 고개를 숙이다가, 뾰족한 것을 발견해 버렸다. 

 “왜 하필 턱이야!” 확, 화딱지가 났는데, 동시에 턱이 길어졌다. 아니 턱에 있는 뿔이 길어졌다. 이건 귀엽다기 보단, 최악이다. 이 뿔은 얼굴의 연장선 같다. 무서워 보이기엔 성공이지만, 지금의 뿔은 소용이 없다. 전화로는 나의 뿔이 보이지 않으니. 아, 영상으로 받을걸. 나름 위협적인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만, 위치가 참 별로이다. 10도까지는 숙이는 건 문제가 없지만, 목이 짧아 그런지, 내 목을 찌른다. 이번 기회에 거북목 고쳐지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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