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앞을 지나가는데, 벤치에 앉아서 간식을 먹던 지인이 반갑게 웃으며 먹던 빵을 반으로 뚝 떼어 내게 권했다. 오후 모임에서 디저트를 많이 먹었던 터라 '또 빵을 먹어? 안 돼. 요즘 탄수화물을 너무 많이 먹었어. 거절해야 해.' 생각을 했다.
이 생각의 회로는 좌뇌의 영역이다.
다른 한편으로 '만나니 반가워서 그러는 거잖아. 내미는 빵을 거절하면 얼마나 무안하겠어. 받아먹는 게 맞아.' 생각이 들었다.
이건 우뇌의 영역이다. 나는 우세한 우뇌의 활동을 받아들여 빵을 먹었다.
당시에는 좌뇌와 우뇌를 인식하지 못했다. 읽던 책을 덮은 후에야 이게 죄뇌와 우뇌가 내게 보낸 신호였다는 것. 나는 우뇌의 신호를 받아들였다는 걸 깨달았다.
뇌에 대해서 알게 되면 우리가 느끼고 행동하는 방식에 많은 선택의 여지가 생긴다.
'뇌과학자의 뇌가 멈춘 날', 이란 부제가 붙은 책,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다>를 읽었다.
저자는 하버드 의대에서 인간의 뇌에 관해 연구하던 뇌과학자다. 어느 날 아침 좌뇌에서 뇌출혈이 일어났다. 4시간 동안 그녀는 자신의 인지기능이 어떻게 사라지는지를 관찰했고, 이후 수술과 회복하는 과정에서 우뇌의 역할을 인식하게 되었다.
골프공만 한 혈전 때문에 좌뇌의 세포가 제대로 활동하지 못해 유아기로 돌아간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모든 것을 처음부터 배워야 했다. 걷기, 말하기, 읽기, 쓰기. 뇌 속의 깨진 파일 캐비닛을 열어 복구해야 했다.
시도하려는 의지는 뇌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봐, 이쪽 연결이 중요해. 연결을 만들어 보고 싶어."
좌뇌와 우뇌는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이 각기 다르지만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려고 할 때는 서로 긴밀하게 연락을 주고받는다. 좌뇌는 단어의 의미를 이해하고 연결해 복잡한 메시지를 만든다. 이때 우뇌는 비언어적 소통을 해석함으로써 좌뇌 언어의 활동을 보완한다. 우뇌는 목소리 톤, 표정, 몸짓으로 전체를 평가한다. 좌뇌와 우뇌가 하는 역할에 관한 설명이 책에 상세히 나와 있지만 내가 관심을 가진 부분은 다른 영역이어서 패스한다.
야채 수프? 그게 뭐지?
참치 샌드위치가 뭔지 모르면 어머니가 설명 후 만들어 보여줬다. 지능 회복을 위해 '닌텐도 스위치 말랑말랑 두뇌학원'을 이용했다. (나는 이게 뭔가 검색해서 찾아봤다. 초등학생부터 사용 가능한 게임기인데 마흔 넘은 성인도 치매 예방을 위해 사용하면 좋다고 한다. 굳은 두뇌를 유연하게 한다나. 생전 처음 게임기를 살지 모른다.)
8살 녀석에게 처음으로 게임기를 선물해 줄까?
수술 후 회복 과정에서 인상적인 건 3개월이 되던 때 어머니가 그녀에게 운전하는 법을 가르친 것이다. (게으름과 귀차니즘으로 언제 운전대를 놓을까 고민하던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6개월째 되는 날에는 과거의 파일을 열기 위해 고향 인디애나의 동창회에 참석했다. 그리고 2년 후 직장에 복귀했다.
세탁소를 찾아가 동전을 세며 세탁물을 집어넣는 훈련을 하는 것, 아령을 듣고 걷기, 충분히 잠을 자는 것, 좋은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는 게 회복에 도움이 되었다.
뇌졸중을 겪기 전 그녀는 좌뇌가 우뇌를 지배하는 스타일이었다. 판단하고 분석하는 성격이 저자의 개성이었다. 좌뇌가 활동을 멈추자 우뇌의 성격이 드러났다. 우뇌 의식의 핵심에는 마음 깊은 평화와 연결된 성격이 존재한다는 걸 저자는 깨달았다. 이곳은 평화와 사랑, 기쁨, 공감을 표현하는 일을 전담하고 있었다.
머릿속에서 상극인 두 성격이 주도권을 놓고 다투는 것을 우리는 경험한다. 자신의 성격에 상충되는 두 부분이 있다는 걸 자각할 수 있다. 이성과 본능, 노동과 휴식, 남성적 마음과 여성적 마음, 이 모든 것은 머릿속 양쪽 뇌의 차이 때문이다.
회복 과정에서 저자는 생각을 좌우하는 성격을 본인이 선택하는 걸 목표로 했다.
"조금만 관찰해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이 두 성격을 확인할 수 있어요. 어느 쪽 뇌에서 자신의 성격을 찾고 자기만의 정체성을 확립해 세상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걸정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우뇌 성격의 밑바탕에는 깊은 마음의 평화와 공감이 있다. 이런 성격을 담당하는 회로를 가동하는데 많은 시간을 들일수록 인간이 세상을 향해 보내는 평화와 공감의 메시지가 많아지고 그만큼 세상에 더 많은 평화와 공감이 쌓이게 된다.
티베트의 수도승,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수녀들로 실험을 해본 결과, 명상이 절정에 이르면 좌뇌의 움직임이 줄어들고 공간감을 잃고 몸이 어디에서 시작하고 끝나는지 알 수 없게 된다. 의식이 바뀌어 몸을 고체가 아니라 유동체로 지각하고 우주와 하나 되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좌뇌의 재잘거림이 멈추는 순간 우뇌는 깊은 마음의 평화 상태에 들어선다.
모두 한번 시험해 보시면 좋겠다.
머릿속에 두 가지 생각이 오갈 때 어느 생각을 꺼낼 것인지. 자주 꺼내다 보면 연결 회로가 튼튼해져, 그쪽이 본인의 정체성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