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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Mar 22. 2023

빅토리아 시대 어린 살인자의 미스터리

『사악한 소년』케이트 서머스케일, 김희주 역, 클


1895년 7월 영국 웨스트햄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던 로버트(13세)와 내티(12세)는 아침 일찍 크리켓 경기를 관람하러 갔다. 밤늦게 돌아온 아이들은 다음날에도 경기를 보러 갔다.


어머니 에밀리의 시체는 열흘 후 발견되었다.

로버트가 자신이 저지른 일이라고 법정에서 진술했다.

법원은 소년을 브로드무어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


저자 케이트 서머스케일은 2012년 옛 신문에서 로버트 쿰스의 기사를 보았다.



책은 부모 살해라는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한 아이의 삶을 추적 탐색한 일종의 르포르타주로 당시의 화폐, 월급, 생활비까지 세세히 기록했다. 문학 담당 기자로 일했던 저자는 역사 속에서 찾은 인물과 사건을 짜임새 있게 구성해 풀어가는 이야기꾼이다. 소설은 탄광 농부의 일상과 가족을 그린 조지 오웰의『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떠오르게 했다.


나는 책이 이끄는 대로 로버트의 삶을 따라갔다. 끊임없이 의문을 가지며.




40년이 지난 1930년 호주 남동부에 사는 해리(11살)가 의붓아버지의 범죄를 경찰에 신고했다.

아이는 상습적인 폭행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웃에 살던 로버트가 해리의 양육을 떠맡겠다고 나섰다.


호주로 간 이후 로버트의 흔적을 찾아다니던 저자는 그의 묘비에서 해리의 이름을 발견했다. 두 사람의 연관성을 추적하다가 로버트에 관해 듣게 된다.


로버트는 1차 세계대전에 호주군인으로 참전했다. 군악대로, 의무 호송병으로.

2차 세계대전에는 참전 연령 55세가 넘어 실제 나이 59세를 54세로 고쳐 기록했다.

집을 나서기 전 로버트는 모든 재산을 해리에게 남긴다는 유언장을 작성했다.


해리가 만난 로버트는 교양 있고 심지 굳은 사나이였다. 독서광이며 크리켓 경기에 능한 체스 챔피언. 코넷과 피아노, 만돌린과 바이올린을 연주할 줄 알며 스타, 브리티시 워, 빅토리, 무공훈장을 받은 사나이였다.


책 뒷장에서 저자는 로버트가 해리를 돌본 이유를 추측한다. 로버트는 어린 해리에게서 자신을 봤을지 모른다. 절망과 두려움에 떨면서 자신을 폭행한 사람에 대한 분노를 간직했던 13살 소년을.


오래전, 교도소에서 자원봉사하던 지인이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특별한 사람들이 여기 올 것 같죠? 아니에요. 다들 평범해요. 일반인과 다른 점은 어느 한순간을 참지 못한 것뿐이에요."

 

같은 시기 부귀와 영화의 정점에서 추락한 오스카 와일드가 레딩 형무소에서 말했다.

"나에게 일어나는 일은 타인에게도 일어나리라." (옥중기 p63)




1860년 설립된 브로드무어 정신병원의 관리 시스템은 매우 훌륭했다. 윤리 경영 지침은 환자를 부드럽고 동정적으로 대할 것을 요구했다. 간호사들은 다른 병원보다 많은 보수를 받았기에 평생 이곳을 떠나지 않는 이들도 있었다. 병원장 니컬슨은 정신 이상이 부분적으로 개인의 환경과 경험에서 기인한다고 믿었기에 간호사들에게 환자들의 변덕스러운 행동은 수용하고 망상은 조용히 무시하라고 충고했다. 그는 범죄와 정신 이상에 대해 진보적이고 인도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목가적 환경 속에서 흉폭한 범죄자들이 점차 정상적이고 품위 있는 인물로 바뀌었다.


미국 군의관으로 증기선 화부를 살해한 윌리엄 마이너도 이곳의 환자였다. 그는 옥스퍼드 영어사전의 기고자로 맹활약했다. 병원 측은 그를 위해 방 하나를 따로 배정해 주었다. 멜 깁슨, 숀 펜 주연의 '프로페서 앤 매드맨'(2021)이 그에 관한 영화다.




오스카 와일드는 동성애를 이유로 기소되어 수감되었다. 의사는 그가 정신병에 걸린 게 아니라고 진단했고 더 많은 음식과 공간, 책을 제공하라고 권했다. 이렇게 호화롭기까지 한 정신 병원 시스템은 국민들에게 원망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이 치유되지 못하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을 상황을 예상해 보면 이러한 투자는 성공적이라 할 수 있었다.


브로드무어의 따듯한 간호사들, 직업 훈련을 담당한 다정한 어른이 로버트를 정서적으로 안정감 있는 인물로 성장시켰다.


최근 우리나라는 죄를 지으면 철저하게 응징하자는 분위기가 대세다. 형사 책임을 묻는 촉법소년 연령(14세)도 하향 추세이지만, 처벌하고 벌주어 사회 격리를 목적으로 하기보다는 올바르게 수용하고 이들의 재활을 지원해 정상적인 사회 구성원으로 복귀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적 시스템이 완비되면 좋을  같다.


'사악한 소년'은 환경이 인간의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걸 깨닫게 하는 논픽션이며, '처벌'이 아닌 '용서'가 사회에 미치는 선한 영향력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악한소년_케이트서머스케일_김희주_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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