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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May 30. 2023

고향은 어떻게 소설이 되고, 영화가 되는가

모옌



"사람이 특수한 환경에서 얼마나 끔찍하게 변할 수 있는지를 알아야만,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복잡한지를 알아야만, 사람이 비로소 타인을 경계하고 자기 자신을 경계할 수 있다." p330 고향은 어떻게 소설이 되는가.


모옌이 중국인 최초로 노벨상을 탔다 했더니, 지인이 중국인이 노벨상을 탄 적도 있나고 물었다.


모옌은 중국인 최초로 2012년 노벨 문학상을 탔다. '중국인 최초'라는 면에서 조금 혼돈스러운 검색 결과가 나오는 이유는 2000년에 가오싱 젠이 같은 상을 탔기 때문이다. 가오싱 젠은 중국에서 태어났지만 국적이 프랑스다. 이건 가즈오 이시구로가 영국인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러니 모옌이 중국인 최초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건 맞는 말이다.


지인의 물음에 나는 다소 당황했다. 현재의 중국 분위기가 어떻든 중국은 페르시아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찬란한 문명을 가졌던 나리이기 때문이다. 15세기 예수회 신부의 중국 선교 과정을 보여주는 책 『거인의 시대』에 명나라 말 중국이 등장하는데, 품위 있고 지적인 중국 지식인들과 당시의 문화를 엿볼 수 있었다.




한국인에게 모옌은 책 보다 영화 '붉은 수수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1987년 모옌은 '홍까오량 가족'을 발표했고, 소설은 장예모 감독에 의해 '붉은 수수밭(1989년)'으로 영화화되었다. 감독과 여주인공의 처녀작이었던 이 영화는 1988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했다. 붉은 수수밭이 큰 인기를 끈 이유를 모옌은 『고향은 어떻게 소설이 되는가』에서 이렇게 말한다.


당시 중국 사람의 공통적인 심리상태를 딱 맞추어 표현했기 때문이라고. 개인의 자유가 오랫동안 억압을 받은 상태에서 '붉은 수수 가족'이 대담하게 말하고, 대담하게 개성 해방의 정신을 퍼뜨렸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작가는 당시에는 이러한 사회적 의미를 의식하지 못했고 사람들에게 이런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지도 못했다고 한다. 만약 요즘 이 책을 쓴다면 몇 배 더 야하게 써도 아무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할 것이라며. 요즘 독자가 안 읽어 본 것이 무엇이 있나. 그래서 사람마다 나름의 운명을 가진 것처럼 작품도 나름의 운명을 갖는 것 같다고.


책을 읽다가 나는 영화  '붉은 수수밭'을 찾아봤다. 예전에 봤다고 생각했는데, 궁리 주연의 다른 영화와 혼돈했다는 걸 알았다. 우리의 기억은 얼마나 불확실한지. 영화는 1930년대 산동성 시골 마을이 배경이다. 아비가 딸을 팔아넘기고, 산적이 날뛰고, 제대로 옷도 걸치지 못한 시절. 그럼에도 사람들은 노래하고 춤을 추고 술을 마시고 사랑한다.





작가의 고향은 가오미 둥베이향(산둥성)이다. 비가 오면 강도 저수지도 개구리 등짝이 모두 덮었다. 옥수수 알만한 파리에게 두꺼비가 소리 없이 다가와 순식간에 20센티 길이의 혀를 내밀었다. 큰 비가 내리면 둑이 터져, 황소개구리(쿠바에서 유입된)에 끈을 매달아 건너편 마을의 둑을 텄다. 그러면 마을이 살았다.


벼도, 보리도 아니고 왜 하필 수수일까?


강물이 해마다 넘치니 그나마 키 큰 수수밖에 버티는 곡물이 없었다. 문화 대혁명(1966년~1976년) 10년간 저자는 잡종 수수를 3천 근은 족히 먹었다고 말한다. 수확량은 늘었지만 이 수수를 먹은 수탉은 홰를 치지 않았고, 암탉은 알을 낳지 않았다. 붉고 고운 수수가 아니라 잡종 수수. 이 수수를 먹으면 변비에 걸렸다. 서기는 고깃국물에 불려서 먹으라 했지만 너무 귀족적이어서 따를 수 없었다. 의사가 수수로 만든 찐빵을 하나 먹을 때마다 볶은 피마자 열매를 두 개씩 먹으라 했다. 방법은 효과적이었지만 문제가 적지 않았다.


1960년. 마오쩌뚱이 사회주의 국가를 밀어붙이던 시대. 핵 개발을 추진하던 시대. 대 기근으로 연못의 이끼도 불려서 구워 먹으면 식량이 되었다. 모옌의 글에 매번 등장하는 그의 유별난 식탐은 이때의 후유증 아니었을까. 그의 글은 솔직하고 직설적이다. 가식이 없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이다'라고 한 공자의 말을 모옌은 인용한다. 식탐 많았던, 가족에게조차 사랑받지 못했던 밉상이었던 소년이 후일 위대한 작가로 클 수 있었던 계기는 무엇일까? 『고향은 어떻게 소설이 되는가』를 한 소년의 성장소설로 읽는 것도 흥미롭다.


신문으로 집의 벽을 도배했다. 그런 날은 누워서 이리저리 몸을 옮기며 벽에 붙은 신문을 읽었다.  당시의 신문은 매직 리얼리즘 소설이었다. 화려한 중국 문화를 수백, 수천 년 전으로 후퇴시킨 문화 대혁명시대. 작가들은 사랑에 대한 성애 묘사로 계급과 사상을 피해 갈 수 있었다.




'붉은 수수밭'을 계기로 중국 영화들을 찾아봤다.  와호장룡(2000년), 게이샤의 추억(2006년). 전작은 중국, 홍콩, 미국, 대만의 합작이었고 후자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한 미국 영화다. 그래도 2000년 이전에는 좋은 영화들이 제법 있었다. 홍등(1992년), 인생(1995년) 최근 20년간 중국에서 제작한 영화가 떠오르는 게 없다.


장예모 감독의 '인생'(위화, 원작)


중농의 자식이 대학을 가려면 하층민의 추천을 받아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기에 저자는 군대를 택했다. 군인이 되면 대학 갈 길이 열린다 했다. 해방군 예술단과대학과 루쉰의 문학창작원에서 접한 열린 사고가 고향의 민담과 연결되어 상상력으로 피어났다.


최근 '위화'에 대해 강연할 기회가 있어 모옌이 제자에게  쳇 gpt를 활용해 연설문을 써오랬더니 셰익스피어가 쓸 법한 문장이 나왔다고 공개했다. 현재 중국에서 쳇 gpt사용은 불법이다. 처벌받을 수 있다는데. AI의 등장으로 앞으로 작가도 사라질 거라 한다. 하지만 모옌의 글을 보면 개인의 체험을 기반으로 한 독창적인 글쓰기는 AI가 절대 따라 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모옌은 자신의 고유하고 특수한 삶을 예술적으로 승화시켰다.


"고향의 체험, 고향의 풍경, 고향의 전설 등은 어떤 작가라도 모두 벗어나기 어려운 꿈나라이지만, 이 꿈나라를 소설로 바꾸려면 필연적으로 이 꿈나라에 사상을 부여해야 한다. 이 사상적 수준의 높낮이가 당신이 도달할 수 있는 높이를 결정한다. 여기에는 진보와 낙후의 구분이 없다. 단지 깊고 얕은 차이만 있다. 고향을 뛰어넘기는 무엇보다 먼저 사상적으로 뛰어넘기를 해야 하며, 혹자는 철학적 초월이라고 말한다." p51






글은 거칠다 할 정도로 직선적이고, 익살맞다. 자신의 식탐에 대해 구구절절한 토로할 때는 특히. 모든 분야에 다변인데, 실제로 그는 말이 없는 사람이다. '모옌'은 그의 필명이다. '모옌'의 우리말 풀이가 "말을 하지 않는다"라는 의미라 한다. 침묵으로 보신을 꾀한 중국 문화의 영향인 것 같기도 하다.


『고향은 어떻게 소설이 되는가』는 모옌의 에세이 중 59편을 골라 번역 편집했는데 한 가지 아쉬운 건 겹치는 내용들이 다소 있는 것이다. 모옌이 어릴 적 겪은 일들을 여기저기 에세이에 반복해 썼으리라. 상처는 물을 마셔도 계속 갈증 나는 타는 목마름 같은 것이니. 이 책은 상권이다. 하권은 『다른 세계와 나』란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중국의 주류 문인으로 왜 현재의 중국에 대해 침묵하느냐고 한 강연회장에서 그에게 질문이 나왔을 때 모옌은 이렇게 말했다 한다.  "어느 시대든 중국의 농민들에게는 변하지 않는 조건과 전형적인 상황이 있어왔습니다. 제 작품이 어느 시대를 배경으로 삼고 있든 독자들은 공감할 수 있습니다."(김택규 중국어 번역가 페북에서)

필명에 걸맞게 두리뭉실 넘어갔다고 여겼던 김 번역가는 후일『사부님은 갈수록 유머러스해진다』를 읽고 작가는'글로써' 말한다는 걸 깨달았다 한다.


하느님의 금잔에 오줌을 갈기시라. 그래야 문학이다. 인의도덕이 훌륭한 작가들을 치료할 약이 없다. 남에게 욕먹을 글을 써낼 수 있는 것이 남에게 허풍 치는 글보다 더 큰 위안을 준다.

맨 위 사진은 '붉은 수수밭'을 촬영하던 당시의 기사(명보월간)이다.  궁리, 모옌, 강문, 장예모 감독 (사진 제공: 『대만 산책』의 저자, 류영하 교수)


 #고향은어떻게소설이되는가_모옌_박재우배도임_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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