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차(6월 14일)
로마에서 피렌체로 가는 길에 치바타와 아씨시를 들르기로 했다. 가이드를 테르미니역 근처에서 7시에 만나기로 했다. 마이리얼트립에서 여행사를 통해 투어를 예약했다.
30분 거리여도 초행에는 한 시간 전에는 출발해야 한다. 아니나 다를까, 꽁지머리 가이드를 만난 시간은 약속시간 5분 전이었다. 일행이 15명 정도였다. 같은 직장에 근무하는 수수한 모습의 아가씨 네 명이 눈에 띄었다. 간간이 직장 상사 이야기, 결혼 소식 이야기를 나누더라. (들으려고 귀 기울인 거 아님)
함께 10분 남짓 걸었다. 버스를 역 가까이 주차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치바타 근처에서 마을버스로 갈아탔다.
산은 비와 바람에 침식되어 오도카니 봉우리만 남아있었다. 치바타는 미야자키 히데오의 "천공의 성 라퓨타"에 영감을 준 곳이다. 마치 섬이 하늘에 떠있는 것 같았다. 영화에서 섬이 하늘과 구름 속을 떠다닌다. 생필품을 실은 작은 지프가 굉음을 울리며 우리 곁을 오갔으니 사람이 살고 있는 산이었다. 속세와 선계를 잇는 높고 긴 다리를 건너는데 어찔 현기증이 났다.
공간을 눈에 담고 마음으로 느끼기엔 머무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 주인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 고요한 동네여서인지 고양이들도 마르고 생기 없어 보였다. 힘차게 벽을 타고 오르며 꽃을 피우는 마삭줄은 마치 압화 같았다. 치바타의 노천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셨으면 좋은 추억이 되었을 텐데.
버스를 타고 아씨시로 향했다.
늘 아씨시의 골목을 걷고 싶었다. 인적 없는 돌담 뒤에서 슬그머니 얼굴을 내밀기도 하면서, 층고 높은 아씨시의 성당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조너스 소크가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하다 막혔을 때 번득이는 아이디어를 얻은 곳이 아씨시의 성당이었다. 건축을 하는 이들은 이후 층고 높은 건물이 인간의 사고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을 가졌고 그 결과 루이스 칸이 지은 캘리포니아 소크 연구소는 완벽한 비움을 형상화했다. 노벨상 수상자가 다섯이나 나온 작지만 큰 연구소... 이야기가 바깥으로 흘렀다.
아씨시를 가기 전 우리가 들른 곳은 프란치스코 성인이 자란 고향 성당이었다. 복도 회랑에 하얀색 비둘기를 키우고 있었다. 가시 없는 장미도. 혼돈스러웠던 게 이곳의 성당, 아씨시에 가서도 여러 성당이 있어서 내가 알던 아씨시의 성당은 어느 곳인지, 가이드가 우리를 그곳에 제대로 데려다줄 것인지 확신이 없었다.
마침내 찾아간 아씨시의 주교좌성당은 신자와 관광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가이드가 벽화를 보며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에 대해 이야기해 주다가 경비원의 지적을 받고 쫓겨났다. 뮤지엄과 성당같이 많은 사람이 있는 공간에서 설명을 할 때는 무선 마이크와 이어폰이 필수다.
2주간의 이태리 여행 중 여행사를 통해 가이드를 다섯 명 만났는데, 가이드의 연령대는 나이 많은 경우는 쉰 초반, 젊은 측은 마흔 초, 중반으로 보였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회상하니 나이 많은 분들은 준비가 잘 되어 있고 설명에 깊이가 있었다. 토스카나 와이너리 투어를 만든 분과 베네치아 최초 한국인 영주권자.
하지만 이날 피렌체행에서 만난 가이드와 몰 가는 날 만난 젊은 가이드들은 실망스러웠다. 왜 그렇게 날이 서 있을까? 이 일이 주업이 아니라는 걸 풍기고 있었다. 쉬러 온 날이라니.
피렌체에 도착하니 장대비가 내리고 있었다. 고생길. 우산 쓰고, 짐 끄느라. 계단을 올라가고 내려가고. 숙소까지 20분 거리였는데 가방을 끌다 바퀴가 턱에 걸리면 손아귀 힘이 약해 매번 가방 손잡이를 놓쳤다. 타닥! 가방을 떨어트리면 친구들이 놀라서 뒤돌아봤다. "미안!" 돌아올 무렵에는 나름 손 힘이 생겨서 그런 일이 줄어들었다.
마티아스 집은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오르막을 올라가야 한다고? 길을 보니 그제야 "30 미터 오르막"이라 쓰였던 게 떠올랐다. 직접 겪어야 글의 뜻을 제대로 안다. 에어비앤비 숙소 설명을 읽을 때 "계단"이란 말이 없어 다행이군 했던 게 떠올랐다. 이런 뜻이었구나.
우리가 헤맬 줄 알았는지 키가 훤칠한 백인 남자 마티아스가 우리를 마중 나왔다. 나를 어떻게 알아봤지? 하지만 잠시 후 영리하게 그나마 영어가 좀 되는 친구랑 눈을 맞추더군. 열쇠를 두 개 따고 들어간 실내는 후끈했다. 이런, 에어컨이 없었다
친구가 "우리에게 팬을 달라!" 외쳤다.
마티아스 왈.
"아마존에 주문했는데 곧 올 거다."
친구들은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나만 빼고. 나는 어쩐지 마티아스가 우리를 놀리는 것 같았다. 역시나. 떠날 때까지 아마존에서 팬은 오지 않았다.
이 집은 로마의 숙소가 게스트 전용이었던 것과 달리 마티아스가 바로 전까지 살던 집 같았다. 마티아스는 일종의 전위 예술가, 사진작가일까? 집에 쓸데없는 잡동사니가 많다는 뜻이다. 창틀에 나란히 놓인 각종 구형 카메라는 장식이겠지.
"휴지가 없어요"
왓츠앱으로 문자를 보냈더니 다음날 달랑 납작한 휴지 네 개를 갖다 놓았다.
이 남자가...?
여자 다섯이 5일간 휴지를 얼마나 쓰는지 감이 없군.
우리는 화장실을 들락 거릴 때마다 휴지가 필요하다고요...!
한국에서 로마에서 헐레벌떡 달려온 우리에겐 에어컨, 선풍기가 필요하지만 피렌체에선 살아온 마티아스는 그런 게 필요 없었던 것 같다. 두텁고 습기를 머금은 돌벽은 폭염을 막아주니까.
여행에서 가장 필요한 마음은 역시 무한 긍정 심이다. 어쩔 수 없어서 하는 생각이긴 하지만. 모기만 없었더라면 창문을 활짝 열어 바깥의 초록 초록한 수목과 아래층 정원의 하얗고 은은한 분홍 수국을 마음껏 볼 수 있었을 텐데.
지쳐서 코 골며 잤다. 십여 년 전 동유럽 여행할 때 코 많이 고는 친구를 다들 흉봤는데, 서로 같이 안 자려고. 누구든 함부로 흉보면 안 되겠다는 꽤 깊은 깨달음을 피렌체에서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