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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아 Apr 07. 2020

탯줄, 자르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어요

만삭의 하루9


누워있던 침대가 트랜스포머급 분만 침대로 변신을 하면

의사 선생님께서 오셔서 '진짜 출산'이 시작된다.


지금까지의 진통 더하기 힘주기 시작.

내 생애 모든 힘을 다 해 똥을 쌌다.

(표현이 너무 저렴해 보이지만 힘주기 방식은 정말 똑같다..)

관장을 해서 나올 것도 없었겠지만,

그것이 나오든 말든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빨리 낳고 싶은 마음에 초반부터 최대치의 힘을 주었지만,

힘 잘 준단 소리만 들을 뿐, 아이는 나올 생각이 없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어떡하지.. 나 진짜 최대한 힘준 건데.. 이게 부족하면 어떡하라는 거지?'


눈을 세게 감지 말란다.

얼굴에 힘주지 말란다.

이를 악물지 말란다.

허리를 들지 말란다.

근데, 숨은 계속 쉬란다.


내가 알고 있던, 힘줄 때 하는 모든 방법과 전혀 달랐다.


최대한 눈을 부릅뜨고

이를 악물지 않고

숨을 최대한 깊게 쉬며 계속 힘을 줬지만

내 최대치의 힘도 소용이 없구나 느낀 순간부터 힘은 점점 빠져갔다.

 

왜인지 오빠는 본격적인 분만이 시작되면서 칸막이 뒤로 가 있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탯줄 안 자르실 거죠?' 하고 묻더니,

칸막이 뒤로 가 있으라고 했단다.

탯줄을 안 자르기로 한건 맞지만,

출산할 때 떨어져 있겠다고 한건 아니었는데..


우린 일찍이 탯줄을 오빠가 자르지 않기로 했다.

아무리 내 새끼고 신비롭고 감동의 순간이긴 하나

솔직히 탯줄이 좀 징그럽단 얘기도 있고,

우리 둘 모두 그런 행위 자체에 큰 의미를 두진 않는다.

우리의 생각이 이상했는지 간호사분들이 돌아가면서 재차 물으셨다.

'네, 안 해도 돼요. 저흰 괜찮아요.. 정말 괜찮아요..'


서로를  이상하게 여기던 상황


아무튼 이랬던 상황 때문에 아마 간호사분들은

출산할 때 같이 있어주고 손잡아주고 하는 로망까지 없는 줄 아셨나 보다.

우린 이게 선택사항이란 생각은 전혀 못하고

당연히 오빠가 머리맡에 있을 줄 알았는데

저~ 기 뒤쪽에 얼굴만 빼꼼히 보였다.

당장 남편을 불러오라며 소리칠 기세는 있었으나,

난 차라리 그 상황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서럽고 불안한 마음이 오빠가 곁에 있었으면 더욱 극대화되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차라리 응원 짬밥이 있으신 간호사분들이 더욱 힘이 되었다.


둘러싼 간호사 분들의 격려가 계속 들려왔다.

내 손을 잡아주신 간호사님의 손이 남아나셨는지 모르겠다.

남이지만 정말 손을 부러져라 꽉 쥐었다.


있는 힘 없는 힘 다 쥐어짜가며

간신히 아기의 머리가 살짝 나온 듯했지만

진통은 점점 더 심해졌고 힘은 빠져갔다.


'산모님! 이러시면 아기가 힘들어해요!'


맞다. 우리 아기도 나오느라 처음 줘보는 힘을 열심히 쓰고 있겠지?

엄마가 숨도 제대로 안보내줘서 지금 숨쉬기도 너무 힘들겠지?

갑자기 차갑고 낯선 곳에 나가려니 지금 엄청 무섭겠지?


이 생각을 하니 또 너무 슬프고 미안했다.

그러자 또 눈물이 나고 꺼이꺼이 울었다.

내가 이렇게 통곡을 할 줄이야...

정말 미친 듯이 울어댔다.

그 우는 힘을 애 낳는데 쓰면 좋았을걸, 맘대로 되는게 아니었다.


하지 말랬던 눈감고 얼굴 찌푸리고 이를 악물고 온 마음과 힘을 다해 힘을 주었더니,


'됐어요! 힘 푸세요!'


아기가 거의 나오면 오히려 힘을 풀라고 하더라.

만신창이는 이럴 때 쓰는 말이겠지.

정말 세상 모든걸 내려 놓은 듯 몸에 힘을 풀어버렸다.


아주 잠시 후 뜨겁고 물컹한게 가슴과 어깨 위로 얹어졌다.

띵띵 부은 내 아가를 보고 또 대성통곡했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난 그렇게 우리 아가와 처음 만났다.

짧은 인사를 마치고 아기는 다시 간호사분의 손에 떠났다.

난 다시 평화를 맞는 듯했으나..

'후처치'가 남았다.


남아있는 태반이 나와야 해서 다시 몇 번 힘을 줘야 했고,

절개한 회음부도 꿰매야 했다.

남들은 거의 졸도 수준이라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던데

난 너무 아팠다.. 진통은 거짓말같이 없어졌지만 엄청 따갑고 아픈게 느껴졌다.

지금까지 죽을 만큼 아팠고 더 아플 힘도 없는데

또 괴롭히니 몹시 억울했다.


엄마가 되기는 정말 힘든거구나



왜 딸 가진 엄마들이 그렇게 출산이 다가오는 딸을 걱정하는지 알 것 같았다.


의사 선생님의 고생하셨습니다~라는 말씀과 함께

또 한 번 몸에 힘이 쫙 풀렸다.

'진짜 끝났다..'


그렇게 난,

2019년 11월 15일,

40주 1일 진통 9시간 만에

3.71kg의 건강한 여자 아가를,

자연분만으로 낳았다.


(초산치곤 빠른 시간이라고들 하지만

그렇다고 쉽게 낳았다고는 말하지 말아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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