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울리는 스마트폰의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뭔가 싶어 들여다보니 페이스북에서 친절히 알려주는 누군가의 생일 알람이었다. 사실 실생활에서는 크게 교류가 없는 페친들도 많다 보니 보통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기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낯익은 이름이 보였다. 어린 시절부터 오래 알고 지낸 친구였다. 사실 좀 더 자고 싶었지만 지금 상태에서 다시 잠들어 버린다면 이 상황은 머릿속에서 지워질 것이 분명했다. 크게 서로 챙기지 않아도 언제나 어색함이 없는 친한 친구지만 그래도 잊기 전에 생일 축하한다는 한마디는 전해야지 싶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생일을 기억하지 못한 것이 좀 미안하게 느껴졌다. 어릴 때는 이 친구의 생일 날짜를 정확히 기억했었던 것도 같았다. 때가 되면 지인들의 생일을 정확하게 알려주는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의 배려가 편하기는 하다. 하지만 기억하지 못해 인공지능이 상기시켜준 친구의 생일을 그냥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로 퉁쳐 버리자니 마음이 불편했다. 선물이라도 하나 해야겠다 싶어 선물함을 뒤적거렸다. 핑계 삼아 얼굴이라도 보면 좋겠지만 시국이 좋지 않다. 큰 고민은 하지 않고 프랜차이즈 제과점의 케이크 기프티콘을 결재해서 보냈다. 축하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한 시간 후 답장을 보낸 그 녀석의 반응은 좀 의외였다. 우리 사이에 낯 간지러운 감사의 표시까지 원한 건 아니었지만 녀석은 다짜고짜 ‘케이크를 뭐하러 보내냐’고 말했다. ‘난 생일이라 보냈으니 군말 없이 먹으라’며 농을 쳤고, 그 녀석은 지금 네 것까지 케이크 기프티콘만 다섯 개라고 했다. 일주일 내내 케이크만 먹어도 다 못 먹겠다며 투덜거린 그 녀석은 그래도 축하해 줘서 고맙다는 말을 남겼다.
난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생각해보니 내 생일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던 듯싶다. 난 서둘러 내 계정의 선물함을 열어봤다. 내 생일이었던 3월에 받아서 여태까지 썩고 있는 케이크 기프티콘이 두 개나 남아있었다. 심지어 두 개 정도는 교환해서 먹었던 기억이 있다. 누군가의 축하는 내게 닿지 못했다. 그날 저녁 나는 케이크를 먹었다.
돌이켜보면 난 생일 케이크란 것에 무척 집착하는 편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생일이라면 응당 케이크가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했었다. 친구들을 모두 불러 모아 거하게 생일파티를 한 기억은 한 손에 꼽지만 파티가 없을지언정 케이크 구경을 못했던 경우는 없었다. 어린 시절엔 옛날식 버터크림 케이크에 초를 꽂았고, 사춘기 무렵엔 딸기로 장식된 생크림 케이크에 초를 꽂았다. 내게 생일이란 일단 케이크를 먹는 날이었다.
난 성인이 되어서도 지인들의 생일파티에 케이크를 사다 날랐다. 누군가는 고마워했고, 누군가는 애들도 아니고 무슨 생일 케이크냐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때로는 케이크가 두세 개쯤 쌓이기도 했지만 내가 사간 케이크는 대체로 요긴하게 쓰였다. 유치하다고 했던 누군가도 케이크를 놓고 초에 불을 붙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입을 합죽 다물고 박수 칠 준비를 한다. 유치하긴 해도 케이크는 분명 생일을 더 생일답게 만들어 준다.
케이크로 생일을 축하하는 풍습은 로마시대부터 있었다고 한다. 동그란 빵을 만들어 그 위에 각종 장식을 올리고 그것으로 생일을 축하했다. 지금처럼 초는 꽂지 않았고, 로마 시대답게 당연히 그 케이크를 받을 수 있는 계층은 왕족과 귀족 한정이었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고가의 재료들로 만들어 내는 케이크는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다. 지금은 유치하다고 말하는 생일 케이크이지만 대부분의 인류는 그 유치함 조차 느껴본 적이 없다. 15세기 중세 독일에서 열린 킨더 페스테라는 어린이 행사를 통해 케이크에 촛불을 밝히기 시작했고,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케이크의 재료들은 저렴해졌다. 그제야 그 유치함은 모두에게 허락되었다.
방식은 다 달랐지만 생일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것은 인류가 고대부터 해온 일이었다. 그리고 변함없이 그곳엔 케이크가 있었다. 그 누가 유치하다고 말한대도 혹은 케이크 기프티콘이 너무 많이 쌓인다고 투덜대도 난 소중한 사람의 생일에 반드시 케이크를 선물하겠다. 그리고 초를 꽂고 불을 붙여 당신의 소원이 이루어 지길 기도하겠다. 촛불이 꺼지면 있는 힘껏 박수를 치며 당신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하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천오 백 년간 인류가 다듬어 온 이 생일 축하법 그 이상의 것은 존재하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