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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훈 Sep 24. 2020

대리운전기사와 즉석우동

 대학생 시절이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렇겠지만 나 또한 수많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등록금을 모으고 용돈벌이를 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꼽자면 역시 대리운전이다. 일반적으로 대리운전이라고 하면 그저 술에 취한 손님의 차를 대신 운전해서 집까지 데려다주는 간단한 일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대리운전기사’라는 단어가 무색하게도 대리기사의 하루 일과 중에서 운전대를 잡는 업무는 매우 작은 비중을 차지한다. 기사라고는 하지만 남의 차 운전대를 잡기 위해서 거쳐야 할 과정이 꽤 많은 편이고, 결코 그 과정이 쉽지 않다.


 휘향 찬란한 유흥가 근처에서 스마트폰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보면 ‘콜’이라고 부르는 일감이 배정된다. 그러면 스마트폰 화면엔 고객이 기다리고 있는 출발지와 대략적인 목적지, 그리고 그 일을 완료하면 받을 수 있는 금액이 담긴 정보창이 뜬다. 어느 것 하나 대리기사에게 중요하지 않은 정보가 없건만 그것들을 꼼꼼히 살피고 있다간 한 콜 잡아내기도 어렵다. 처음 대리기사 일을 시작하던 날, 나 역시 산발적으로 스마트폰에 뜨는 그 콜 정보를 꼼꼼히 살피며 콜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채 목적지를 확인하기도 전에 그 창은 사라졌고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콜 정보창이 떴다 사라지는 것을 구경만 하기를 십여 차례, 옆에서 흘끔흘끔 날 바라보던 기사 한 분이 말을 걸었다. “오늘 처음 나왔나 봐요?” 난 그렇다고 답했고 그는 이어서 젊은 친구가 왜 이런 일 하냐며 타박하기 시작했다. 난 등록금 좀 벌어보려고 나왔는데 쉽지 않다며 멋쩍게 웃었다. 그는 안타까운 표정을 조금 섞은 얼굴로 날 바라보다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렇게 콜 잡아서는 오늘 한 콜도 못 탈 거라며, 알림이 울린다 싶으면 이것저것 재지 말고 일단 수락 버튼을 누르라고 했다. 난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렇게 막 잡았다가 못 가는 콜 잡으면 어떡해요?” 그러자 그는 말했다. “그럼 그냥 취소하고 벌금 내는 거지 뭐.”

     

 그 로부터 몇 시간 전 난 기사 면접을 보기 위해 한 대리업체의 사무실을 찾았다. 강남 교보타워 사거리에 위치한 그곳은 사장이라고 하는 남자 혼자서 지키고 있었고, 나를 비롯해 세 명의 사람들이 대리기사 등록을 위해 앉아있었다. 사장은 필요한 서류를 확인하고 대리운전 애플리케이션을 깔아준 뒤 일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주었다. “그냥 폰 들고 돌아다니시다가 맘에 드는 콜 뜨면 잡아서 수행하시면 돼요. 아, 그리고 콜 일단 잡았다가 취소하시면 벌금 물어요 그리고 페널티 받아서 콜도 안 주니까 절대 그렇게 하시면 안 돼요. 그것만 조심하시고 보험 가입되는 대로 나가셔서 일하시면 돼요.”

 잠시 후 그는 보험 가입이 완료되었다며 한 달 치 프로그램비와 보험료를 결제한 뒤 머뭇거리는 우리의 등을 떠밀었다. 그 사무실에 발을 들이기 전에 우린 그저 학생이었고, 명예 퇴직자였으며 힘겨운 자영업자였다. 그곳에서 15분 남짓한 시간을 보내고 나오자 우리는 초짜 대리기사가 되어있었다. 실무에 투입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그동안 내가 해봤던 많은 아르바이트 중에 가장 짧았다. 이거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나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15분 만에 투입된 일터에서 제대로 된 방향을 잡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었다.

 옷장에 꽤 오랫동안 걸려있었던 듯한 눅눅한 느낌의 양복을 입고 있던 50대 후반쯤의 아저씨는 돋보기안경을 올렸다 내렸다 하며 스마트폰을 이리저리 만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긴 한숨을 내쉬고 담배를 꺼내 물었다. 우리는 쭈뼛쭈뼛 인사를 하고 의례적인 질문 몇 가지를 서로에게 던진 뒤 세 가치쯤의 담배를 연달아 피웠다. 그리고선 아무 말 없이 각자 어디론가 걷기 시작했다.

      

 콜을 잡은 뒤에 취소하면 내야 하는 벌금은 한 건당 500원이라고 했다. 한 푼이 아쉬운 처지에 500원씩이나 마구 써댈 수 없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게 아까워서 꾸물대고 있다간 오늘 정말 공치고 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시간은 이미 열한 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콜이 가장 많은 시간인 ‘피크타임’은 열 시부터 열두 시 사이라고 했다. 한 시간이 채 남지 않은 피크타임에 개시라도 하려면 지금부터 부지런히 500원씩 써야만 했다.

 독하게 맘을 먹고 스마트폰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콜이 떴다는 알림이 울렸다. 손에 진동이 온다고 느껴지는 그 순간 즉시 수락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나서야 내가 수행할 콜에 대한 정보를 자세히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첫 번째로 잡아낸 콜은 4만 원짜리 아주 비싼 콜이었다. 그리고 그 콜의 목적지는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이었다. 언젠가 들어본 듯한 곳이었다. 어쨌든 명확한 건 아주 먼 곳이라는 것과 적어도 강남 같은 번화가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도무지 그런 곳에 툭 떨어져서 다시 서울로 돌아올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눈물을 머금고 취소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대리운전 애플리케이션에서는 ‘계좌에서 벌금 500원이 출금된다.’는 메시지가 출력됐다. 그리고 난 고객에게 전화를 걸어 ‘죄송하지만 콜을 수행할 수 없을 것 같다. 취소했으니 번거로우시겠지만 다른 기사를 구해주세요.’하고 말했다. 아니 말하고 싶었다.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 고객은 아무 말 없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렇게 몇 건의 콜을 잡고 고민하다 모두 취소했다. 피크타임은 이미 모두 지나가버렸다. 내 계좌에선 삼천 원가량의 벌금이 출금되었다. 난 굳게 문을 닫은 교보타워 입구에 멍하니 앉아서 줄담배를 피웠다.

     

 피크타임이 지나고 새벽시간이 되자 논현동 교보타워 사거리는 순식간에 다른 세계가 되었다. 왜 그곳에 대리운전업체들의 사무실이 모여있는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교보타워 사거리는 그야말로 대리기사들의 메카였다. 기사들의 출발점이자 도착점이며 휴식하는 곳이자 정보 공유의 장이었다. 대리기사들을 태운 낡은 봉고는 끊임없이 그곳에 그들을 내려주었고, 그렇게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한 기사들은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들 뒤로 하나둘씩 천막이 들어섰고, 간이매대 위에 대리기사들의 편의를 위한 각종 물품들이 진열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귀여운 라보 트럭 한 대가 도착했다. 그 라보 트럭에서 내린 한 부부는 순식간에 좌판을 깔고 물을 끓인 뒤 즉석우동이라고 적힌 촌스러운 입간판을 세웠다. 익숙하다는 듯 그 앞으로 기사들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들의 손엔 뜨끈한 즉석 우동 한 그릇씩이 들려있었다.

 그제야 배가 고프다는 것을 느꼈다. 저녁을 먹지 못했다. 대리기사 등록하고 스마트폰만 쳐다보고 있느라 잊고 있었다. 한번 허기짐을 인식하자 그 느낌은 강렬하고 빠르게 온 몸을 감쌌다. 슬쩍 라보 트럭으로 다가가 우동이 얼마냐고 물었다. 조금 무뚝뚝해 보이는 남자 사장님은 3500원이라고 짧게 말했다. 급히 지갑을 열었다. 아뿔싸 돈이 한 푼도 없다. 없는 형편에 어렵게 마련해 나온 현금은 아까 한 달 치 프로그램비와 보험료를 내는데 써버렸다.(대리기사의 초기 투자 비용은 생각보다 저렴하지 않다.) 가난한 대학생이 신용카드 같은 걸 가지고 있을 리 없었다. 당황하며 쭈뼛쭈뼛 돌아서는 나를 보고 사장님은 오늘 처음 나왔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말하자 몇 살이냐고 했다. 스물두 살이라고 대답하자 사장님은 아무 대꾸 없이 우동 한 그릇을 말아주었다. 김이 펄펄 나는 우동을 나에게 건네며 “이거 먹고 내일부터는 나오지 마.”라고 했다. 난 선뜻 그것을 받아 들지 못했다. 사장님은 다시 날 빤히 쳐다보며 “돈 안 받을 테니까 그냥 먹어. 대신 내일부터 나오지 말고. 아직 여기 오기에 너무 어려.”라고 말했다. 난 우동을 받아 들고 감사를 표한 뒤 면발을 들어 목구멍으로 쑤셔 넣었다. 뜨거운 우동 면발이 갑자기 목구멍으로 들어오자 기침이 났다. 크게 몇 번 세찬 기침을 내뱉은 뒤 난 면발을 우물 거리며 작은 소리로 ‘6개월만 할게요.’라고 중얼거렸다.

      

 그렇게 한 콜도 제대로 잡지 못하던 초짜 대리기사는 교보타워 사거리로 매일 출근했다. 경험이 쌓이자 좋은 콜 잘 잡는 방법도 알게 됐고, 설령 오포읍에 떨어지더라도 어떻게든 다시 강남으로 돌아올 수도 있었다. 진상 손님을 응대하는 법도 익혔고, 그만큼 벌이도 꽤 괜찮았다. 매일 아침까지 열두 시간 정도 일했다. 그리고 매일 즉석우동을 먹었다. 교보사거리 즉석우동 집의 사장님은 매일같이 왜 또 나왔냐며 날 타박했고, 난 그 타박을 들으며 우동을 먹었다. 그는 매일같이 우동을 먹으러 오는 날 보며 “너 계속 일 할 거면 그때 공짜로 먹었던 우동 값 내놔.”라고 말했지만 실제로 그 값을 받지는 않았다.

 대리기사 일을 시작한 지 6개월이 지났을 무렵, 난 목표했던 돈을 손에 쥐었다. 오포읍까지 가서 4만 원을 벌기도 했고, 어떤 손님은 젊은 친구가 고생한다며 몇만 원을 더 얹어서 나에게 주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일하러 나갔던 날, 난 또 강남 최고의 우동 맛집으로 향했다. 어느새 얼굴을 익힌 사장님은 나에게 더 이상 ‘그만두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난 사장님께 칠천 원을 건네며 “저 이제 진짜 그만둬요.”라고 말했다. 사장님은 아무 말 없이 그 돈을 받아 들더니 평소보다 푸짐한 양의 우동 한 그릇을 내어주었다.

 뜨거운 면발이 갑자기 들어오자 기침이 났다. 몇 번 크게 기침을 하고 우동 면발을 밀어 넣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난 더 이상 새벽에 이 곳에 오지 않는다. 하지만 사장님은 계속 우동을 팔 것이다. 그리고 그곳을 떠날 수 없는 이들은 그 우동을 먹는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옆의 술집에서 술을 마신다. 잠시 후 그들은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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