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땅그지다

숲은 나의 놀이터

by 애플


숲에 들어서면 나도 모르게 고개가 숙여진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걸 좋아하지만, 숲에서는 발밑이 더 바쁘다. 나는 며칠 전 도감에서 본 풀꽃을 찾아볼 요량으로 숲에 왔다. 야생화는 대부분 작고 여려서, 자세히 보려면 허리를 굽혀야 한다. 잠깐 들여다볼 생각이었는데, 어느새 나는 땅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흔하게 볼 수 있는 풀꽃을 찾으러 왔지만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오후에 숲에 온 탓에 벌써 꽃이 다 져버린 건 아닌지 마음이 쓰였다. 숲 안으로 조금 더 들어가 보려고 치마 끝자락에 묻은 흙을 털고 일어섰다.


한 걸음 떨어져 나를 기다리고 있던 그에게 다가갔다.

“오래 기다렸지? 찾는 꽃이 없어. 조금 더 올라가보자.”

그는 장난스런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너 땅그지 같아.”

“내가 땅그지면 당신은 땅그지 남편이지롱.”

“난 땅그지랑은 못 다니겠어.”

투덜대는 말끝에 웃음이 묻어 있었다. 그는 등을 돌려 숲으로 걸음을 옮겼다


구불구불 이어진 좁은 숲길로 올라갔다. 길게 뻗은 나무들이 햇살을 가렸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유리산누에나방 알집을 발견했다. 알에서 깬 애벌레는 금빛 날개를 펄럭이며 숲속으로 날아갔을 것이다. 바로 그 위로, 후두득 거리며 박새 한 마리가 날아왔다. 잠시 두리번 거리더니 신갈나무 구멍 사이로 쏙 들어갔다. 여기가 박새의 집인 모양이다. 그때, 정적을 깨는 목소리가 들렸다. “두 걸음 가다 사진 찍고, 또 두 걸음 가다 꽃 보면 언제 내려가냐.“라며 그는 걸음을 재촉하며 말했다. 하늘을 보니 해가 지고 있었다.


숲을 거의 내려왔을 즈음이었다. 발밑 어딘가에서 파란 빛이 눈에 걸렸다. 서둘렀다면 그대로 지나쳤을 것이다. 드디어 찾았다 싶어, 나는 그 자리에 쪼그리고 앉았다. 꽃잎은 꽃받침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 꽃의 수술을 보고 코끼리 상아처럼 뻗쳐 있다고 어느 시인은 말했다. 수술은 새하얗고 투명했지만 내 눈에는 그저 콩나물처럼 보였다. 그 옆에서 파란 꽃잎이 파란 나비처럼 팔랑거리고 있었다. 파란 꽃잎 아래에는 작은 노란 꽃 여러 개가 선명하게 피어 있었다. 진짜 꽃도 아니고, 진짜 수술도 아닌 벌을 유혹하기 위한 헛수술이다. 이를 본 벌이나 나비는 커다란 꽃밥으로 착각해 이곳으로 날아들고, 그 사이 긴 수술의 꽃가루가 묻는다. 해가 지면 이 꽃은 꽃잎 하나 남기지 않고 꽃받침 속으로 들어간다. 이 꽃의 이름은 닭의 장풀이다.


“땅그지님, 이제 하산하시죠.

커피 사준다고 따라왔는데 또 숲이네. 오늘도 속았네”

알면서도 따라와준 그가 고마웠다. 해가 숨어버린 숲은 금세 고요해졌고, 부지런히 먹이를 먹던 참새 무리도 나뭇가지에서 깃털을 골랐다. 이제 내 둥지로 돌아갈 시간이다.


땅그지가 되어도 좋을, 숲은 나의 놀이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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