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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라 Jun 04. 2023

낭만이별과 안전이별 그 사이


낮과 밤, 그 어느 시간도 낭만적이었던 20대 어느 날, 사랑은 우리에게 거의 모든 것이었다. 친구들의 이별을 위로하기 위해 마셨던 쓴 소주와 흘렸던 눈물들. 학교 캠퍼스에서 첫사랑을 우연히 마주쳤을 때 어쩌지 못하고 우두커니 서 있기만 했던 그 어린 날들의 서툴렀던 사랑이라는 감정들. 지금 돌아보면 거의 아름답게 채색되어 있는 기억이지만 그 시절에도 어리석음과 후회, 상처로만 남은 이름들도 있었다. 


나는 헤어지는 것에 서툰 사람이었다. 헤어지는 것이 마땅한 이유들이 넘쳐도, 헤어지자는 말을 내뱉는 것이 힘들게만 느껴졌었다. 사실 그 시절의 만남에 헤어지는 것이 마땅한 이유들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저 마음이 다하게 되면 각자의 길을 가는 것이 옳았을 것이고 별다른 이유도 복잡한 절차도 필요하지 않았다. 제도로 묶이지 않은 사랑은 그렇게 쉬운 방식으로도 헤어질 수 있는 것이 당연했다. 그렇지만 사랑이 서툰 만큼 헤어지는 것도 방법을 잘 몰랐을 때이므로 이별은 쉽지 않았다. 그렇게 계속 헤어지는 중인 상태로 지내다가 어느 날엔가 용기를 내어 말했을 것이다. '우리 이제 그만 만나자'. 하지만 그 말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헤어지기로 한 이후에도 매일 걸려오는 전화, 술 취해 새벽에 보내는 문자, 그리고 집에 돌아가는 길 집 앞에서 기다리던 그림자. 그렇게 쉽게 이별은 오지 않았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상대방이 이별을 받아들이는 시간이고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헤어짐을 견디지 못하는 그 행동들을 나에 대한 사랑의 진지함과 무게라고 착각하고 다시 받아주기도 했었던 것 같다. 결국, 여러 번 헤어져야 했을 뿐이지만. 


이제 나이를 먹고 변호사가 된 지금,  예전 그 친구의 그 행동들은 이제 접근금지를 받아낼 수도 있고 스토킹행위로 처벌받을 수 있는 행위가 되었다. 또 헤어지자는 말에 격분하여 전 애인을 폭행하거나 살인하기까지 하는 일들이 실제로 많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이제 그냥 이별하는 것이 아니라 '안전하게' 이별하는 것이 화두가 되어 버린 현실에서 살고 있다. 


어두운 골목길, 가로등이 우두커니 서 있던 길목에서 그리움으로 범벅된 얼굴로 찾아왔던 전 남자친구의 모습은 나에게는 낭만의 시절로 남아 있지만, 이제는 그것이 범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법원은 부재중 전화를 남긴 것만으로 스토킹행위가 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제 헤어진 다음 날부터는 집 앞으로 찾아가는 것은 물론이고 받지 않는 전화를 걸어도, 문자를 보내도 상대방이 원하지 않으면 처벌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실제 재판에서는 헤어진 시점이 언제인지가 굉장히 중요해진다. 그러나 연인 간에 언제부터 사랑하게 된 것인지 각자의 판단이 다를 수 있는 것처럼, 연인이 사귀다 다투고 몇일씩 연락을 두절하다가도 다시 용서하고 관계를 유지하는 일 역시 비일비재한데, 몇 년 몇 월 며칠 몇 시에 헤어진 것인가에 대하여 합의된 일치를 볼 수 있을까에 대해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이제 사랑과 이별 역시 형법의 범주안에 들어오게 되었다. 헤어지자고 하는 연인에게 격분해 폭력을 저지르는 일이 많아진 만큼 법이 그만큼 촘촘히 범죄 피해를 보호해 주게 되었다는 점에서 안심이 되다가도, 과연 헤어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용서해 달라고, 기회를 한 번만 더 달라고 전화를 하고 그리움에 그 집 앞에 찾아가는 치기 어린 이별의 과정들까지 뭉뚱그려 처벌하여 법문의 해석대로만 가벌성을 확대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헤어짐도 아름다워야 한다. 결혼이라는 제도로 묶어지지 않은 관계에서 일방이 헤어짐을 원할 때 헤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이별의 통보를 자신에 대한 거부로 받아들여 폭력으로 점화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헤어졌던 그 시간들에 슬픔을 술잔에 담그고 '자니'라는 메시지를 새벽에 보내고, 아침에 이불을 차며 후회할지라도 그 이별의 과정들이 모두 다 '스토킹'이라는 그물에 걸려 형법의 관할 대상이 되어야 한다면 우리에게 더 이상 낭만적인 이별은 남아있지 않게 되지 않을까. 우리가 안전하게 이별하면서 낭만을, 사랑의 슬픔을, 이별의 아픔을 시로 노래할 수 있는 인류로 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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