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마 Nov 17. 2020

환자와 보호자

아픈 사람이 환자 아니던가?

아픈 사람이 환자 아니던가


입에서는 연신 거친 숨소리가 세어 나왔다. 빨라진 심장박동이 만들어낸 것이다. 일부러 내려고 하는 게 아닌 몸이 힘든 만큼 자연스럽게 세어 나오는 소리였다. 씩씩대면서 주차장 바닥을 대걸레로 꼼꼼히 약간의 힘을 주어 닦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힘은 빠지고 숨소리도 거칠어져 갔다.


고급 승용차 한 대가 걸레질을 하고 있는 바로 내 옆까지 천천히 밀고 들어왔다. 거친 숨소리를 내뱉으며 고급 승용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제네시스 신형이었다. 주차를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내 쪽으로 밀고 들어올 수밖에 없는 모양이었다. 그 틈을 이용해하던 걸레질을 잠시 멈추었다. 여전히 숨소리는 거칠었다. 제네시스는 조심스럽게 천천히 후진을 하고 있었다. 다시 걸레질을 해도 됐지만 제네시스에 어떤 사람이 타고 있을까 내심 궁금했다.


조수석 문이 천천히 열렸다. 하지만 문이 열리고 으레 보여야 하는 사람이 보이질 않았다. 천천히 아니 조금 느리게 내리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햇빛을 가리기 위해 쓴 것 같은 벙거지 형태의 털모자가 보였고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흰머리만 보일 뿐이었다. 조수석 문에도 가려질 정도로 왜소한 체구에 벙거지 털모자를 쓰신 머리가 하얀 할머니께서 지팡이를 이용하여 조심스럽게 내리고 계셨다.


그사이 운전석 문이 열렸다.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급하게 운전석 문을 열었고 곧바로 할머니께 가시질 않았다. '조수석 문은 할아버지가 열어 주셨나 보다' 트렁크로 향하신 할아버지는 무언가를 꺼내기 위해 분주했다. 두 손으로 지팡이를 잡고 계신 할머니는 영락없는 환자의 모습이었다. 털모자를 쓰고 계셔서 얼굴 전체가 보이진 않았지만 부잣집 사모님 같아 보였다. 제네시스 때문일까. 인자하신 모습 뒤로 어딘지 깐깐하고 꼼꼼해 보이는 여학교 교장 선생님 같은 모습도 보인다. 그런 할머니께서 나를 가만히 쳐다보고 계신다. 할머니를 똑같이 쳐다볼 수 없어 다시 걸레질을 하기 시작했다. 

   

“왜 그렇게 열심히 청소를 해요?”

씩씩거리며 걸레질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차 안에서 한동안 보고 계셨을 할머니께서 내게 한마디를 건네신다.

기운 없는 목소리였지만 차분했다. 환자는 아니고 그저 연세가 있으셔서 거동이 불편하듯 보였다.


“손님들이 떨어뜨린 음료수하고 아무 데나 뱉은 침 자국이 말라버리니까 잘 안 닦이네요." 

"이게 힘을 줘야 닦이더라고요" 나는 걸레질하는 시늉을 하며 대답했다.


내가 닦고 있었던 자리는 건물 출입구 자동문 바로 앞이었다.

1층이라 사람들의 출입이 잦은 곳으로 더럽기도 제일 더러운 곳.

눌어붙은 껌이나 흘린 아메리카노처럼 보이는 차에서 떨어진 오일, 오일은 잘 안 닦이고 커피 자국은 잘 닦인다. 거미 똥, 호숫가 옆이라 그런지 엄청 많다. 잘 닦이지도 않느다. 그리고 침 자국 등 각종 오염이 즐비한 곳이다.

힘들지만 오히려 개운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나 때문에 깨끗해진 주차장을 보는 것이 좋기도 하다.



“너무 힘들게 하지 마여, 힘들어 안돼.”

할머니는 기운 없는 목소리로 천천히 말씀하셨다.    

나는 순간 할머니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고마웠고 좋았고 달려가 와락 안아 드리고 싶었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났다.


할아버지가 트렁크에서 꺼내온 것은 다름 아닌 휠체어였다. 

몸이 불편해 보이는 할머니를 위한 휠체어를 할아버지는 능숙한 동작으로 펼쳐고 있었다.

한 두 번이 아니었을 것이 짐작되고도 남는다. 할아버지도 나만큼 힘들어 보인다. 얼마나 많이 휠체어를 접었다 폈다 했을까. 힘든 건 할머니가 아니라 할아버지였을지도 모를 생각이 든다.

   

“어르신 산책하러 나오셨나 봐요”

묵묵히 휠체어를 펴고 계시는 할아버지께 나는 정중하게 말을 건넸다.

할아버지는 대답 대신 휠체어를 마저 피고 나서는 할머니를 조심스럽게 부축하여 휠체어에 앉히고 있었다. 나는 조금 언었고 무안했다.

할아버지는 분주했으며 얼굴에는 표정 변화가 전혀 없으셨다. 

꽉 다문 입은 고집이 세 보이기도 했다. 

무안한 기분을 떨치고 싶어서였을까 이번엔 할머니께 말을 건넸다.   


“할머니, 그렇게 가시면 추워서 안돼요. 장갑 끼셔야 돼요.” 할머니도 말씀이 없으셨다.


짧은 순간 나를 배려해줬다고 느꼈던 할머니의 모습은 없었고 말없는 노부부와 청소하는 나만이 주차장에 덩그러니 남아 있을 뿐이다. 바람이 차다. 심장박동은 요동치지 않았고 살짝 한기가 느껴졌다. 아무 말 없이 휠체어를 밀어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할아버지 뒷모습만 보인다. 노 부부는 대화가 없었다. 따뜻한 풍경으로 보여야 할 모습이 그러하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까웠다. 

   

“잘 다녀오세요. 할머니.” 나는 끝까지 할머니를 배웅했다.


할아버지께서는 내쪽으로 살짝 고개를 돌릴 듯 말듯한 모습이었다.

나는 할아버지께서 내쪽으로 고개를 돌렸으리라 믿고 싶었다. 그래야 내가 느낀 무안함이 사라질 테니.

그리고 나는 혼자서 중얼거렸다. 


'휠체어에 앉아 계시는 할머니보다 할아버지가 더 힘드시겠네'




몇 해 전 오토바이 사고로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다.

자식이 교통사고가 났는데 맘 편할 부모님이 어디 있으랴. 나는 차마 말할 수 없었다.

당시 사귀던 여자 친구에게 이야기를 했고 길지 않은 간호였지만 시간 맞춰 찾아와 주느라 고생이 많았다.


"괜찮아?"

"그러게 조심 좀 하지?"

"밥은 먹을 만 해?"

"오늘은 뭐 나왔어? 다 먹었어?"

"좀 걸을래?"

여자 친구 멘트는 늘 한결같았다. 그럴 때마다 내 대답 또한 한결같았다. 


"괜찮아"

"자기야, 우리 밖에 나가서 밥 먹자. 자긴 괜찮으면 술 마셔도 돼."


나는 정말 괜찮았다. 밥도 맛있었고 걸을 수도 있었다. 물론 환자라고 링거를 꼽고 있어서 누가 봐도 진짜 환자처럼 보이는 것만 빼면 난 정말 괜찮았다. 아, 환자복도 입었다.


여자 친구의 의무적인 부축을 받으며 승강기를 기다리고, 승강기 문이 열리면 여자 친구는 내 팔을 잡고는 사람들이 다 내릴 때까지 나를 안전하게 지켜주고 나서야 조심스럽게 나를 승강기 안까지 부축했다.

무엇이 여자 친구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병원 근처 식당에서 밥을 주문하고 맥주도 한병 시켰다. 내가 마실 맥주가 아니라 여자 친구가 마실 요량으로 시켰다. 맥주 두 잔을 마셨을 때쯤 여자 친구가 내게 건넨 말이 아직도 귀에 선하다.

"야, 너 때문에 내가 뭔 고생이야?"

여자 친구 본심이 드러나고 있었다. 

"왜 사고는 나가지고 말이야, 어? 귀찮게 말이야. 너 두 번 다시 오토바이만 타봐? 가만 안 둔다? 알았어?"라고 말이다.


나 때문에 평온했던 여자 친구 일상에 찾아든 불편함에 대한 애교 섞인 투정이었다. 아마 이게 길어진다면 짜증이 되고 탓을 할 것이다. 내 탓 말이다. 


'내가 좋긴 좋나 보네'

'있을 때 잘해라'

 나는 생각했다.


그때 힘든 것은 분명 내가 아니라 여자 친구였다. 



keyword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