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uge
8년을 만난 구남친 현남편과 결혼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할 때쯤 지금의 내 남편이 굉장히 지친 표정과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우리 엄마 그냥 삼 사십 년대 할머니라고 생각하는 게 더 마음이 편할 거야.”
그 당시에는 엄청 보수적이신가 보구나라고 가볍게 여겼는데, 한 번 만나고 두 번 만나고 그리고 만날 때마다 그 당시에 남편이 나에게 거짓 없이 토로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시댁은 여전히 긍정적인 이미지보다 부정적인 이미지로 남아있는 것 같다. 상대의 입장에서 조금만 생각한다면 아무리 시대가 달라도 태도는 뒤틀리지 않게 나올 수 있을 텐데, 시어머니의 입장에서 며느리를 무조건적인 이해로 대하는 것보다 무조건적으로 본인을 따라야 하는 것처럼 행동하신다. 여기가 무슨 전쟁터도 아니고.
결혼은 나의 세계와 상대의 세계가 만나 서로 바라보며 물들어 가는 일이라고 여겼는데 시어머니에게 우리의 결혼은 다 본인의 세계로 끌어들여야 하는 일이었다. 크고 작은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시어머니는 우리가 자신의 삶 위주로 돌아가길 원했고, 굳이 안 해도 되는 말들도 “뭐 어때”라는 추임새를 곁들이며 하시는 편이었다.
물론 주변을 둘러보면 너무나도 좋은 시어머니들도 많이 계신다. 내 지인이 시어머니로부터 따뜻한 배려를 받고 있다는 일화를 들으면 나까지 마음이 포근해진다. 그러니 지금부터 적는 글은 “역시 시월드는 최악이야. 그러니 여러분 결혼하지 마세요.”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다. 좋은 시어머니도 많다. 그럼 우리 시어머니는 나쁜 시어머니라는 뉘앙스가 되나? 아무튼 부정은 하지 않겠다만, 단순히 나쁜 시어머니라고 라고만 쓰면 너무 부정적인 이미지가 부각되는 느낌이니 (고개는 살짝 갸우뚱한 채로) 음 좋은? 시어머니라고 말해야지.
다들 무슨 차이인지 살짝 느낌 오시죠?
난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레 점점 거리를 두고 싶었다. 세 번을 만나야 한다면 한 번으로 줄이고 싶었고, 꼭 만나야 하는 날이 아니라면 예의랍시고 의무적으로 어머님댁으로 향하는 일을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던 게 어머님댁이 너무 가까웠고 (우리 집은 종로구, 어머님댁은 은평구다.) 그러다 보니 ‘가까이’ 지낸다는 이유만으로 만날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나는 만나고 싶지 않아라고 대응 할 수도 없는 법.
하지만 이제 좀 지친다. 왜 이렇게 만남이 유쾌하지 않을까. 이제 정말 감정적으로 조금은 거리를 두고 싶어졌다.
* 그리고 이 글은 시어머니에 대한 글을 한번 써보라는 남편의 제안으로부터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