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한 사람의 말투는 그 사람의 성격과 살아온 분위기를 손쉽게 압축해 주는 것 같다. 어머님을 알게 된 후 말의 내용과 말투는 상대를 대할 때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마음에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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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나는 집에 치마가 있으면 옷장에 숨겨 놓을 정도로 치마 입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입기 싫은 옷을 입으라고 하는 말은 더욱 극도로 싫어해서 내가 치마를 다 구석에 두는 것을 보고 언젠가부터 엄마도 나에게 치마를 권유하지 않았다. 성인이 된 후, 스타일링을 위해 치마를 입기도 하지만 여전히 치마는 그냥 가끔가다 한번 입는 옷, 혹은 휴양지에서 입는 옷 정도이고 일상복의 8할은 바지이다. 근데 어느 날, 어머님이 나에게 치마를 입으라고 권유가 아닌 명령을 하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치마에 대한 거부반응이 다시 올라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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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옷에 대해 왈가왈부 이야기가 나온 건 상견례를 앞둔 일주일 전이었다. 가족과 가족이 만나는 자리인 만큼 가장 정갈해 보이는 옷을 미리 준비했다. 하의는 블랙 슬랙스, 상의는 아이보리와 실버가 은은하게 섞인 블라우스, 그리고 너무 높지 않은 구두와 아주 연한 그레이 색상의 가방, 마지막으로 진주 귀걸이까지. 이 옷을 입고 나갔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 같다. 지금 생각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샌들을 신는 것도 아니고 캐주얼 복도 아니고 하지만 며칠 뒤 남편과 전화를 하고 내 의상을 송두리째 바꿔야 했다.
우리의 통화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새미야, 방금 팀장하고 얘기하다가 나온 말인데 상견례 갈 때는 치마를 입어야 된다네?”
“엥? 웬 치마? 치마건 바지건 자기한테 잘 어울리게 깔끔하게만 입으면 되는 거 아니야? 팀장 무슨 40년대 사람이야? ㅋㅋㅋㅋㅋ”
“나도 그렇게 생각하긴 하는데… 뭔가 상견례를 경험해 본 사람이 그렇게 말하니까 들어야 되나 싶기도 하고…”
“에이.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나 옷도 다 준비해 놨고, 심지어 집에 있는 치마는 상견례 때 입을 만한 옷들도 아니야. 걱정 마. 깔끔하게 코디해 놨으니 훗.”
“맞아. 그치… 내 생각도 그래.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할까.”
-3초 후-
“(깊은 탄식과 함께) 하… 사실 그거 우리 엄마가 한 말이야. 진짜 미치겠다. 상견례 때 치마 입어야 된다는 그 주제로 며칠째 싸우고 있는데도 안 바뀌어.”
“으엥? 치마를 입고 오라는 그런 말을 하셨어?”
그러니까 어머님은 그전부터 내가 입고 간 옷을 못마땅해하고 계셨다. 정확히 말하자면 어머님을 뵐 때 바지를 입고 있던 게 싫으셨던 것이다. 그리고 어머님의 말은 이러했다.
처음 만날 때 뭐 입고 왔어. 바지 입고 왔지. 두 번째는. 그때도 바지 입고 왔지. 어른 만나는데 치마도 안 입고. 상견례 때도 바지 입으면 어떡해. 나는 치마 입고 있는 걸 보고 싶어
결혼하기 전 남편이 우려하던 것들이 이런 것이었다. 어머님 본인의 말이 정답인 것처럼 말하는 것. 남편은 어렸을 때부터 그런 어머님과 잦은 트러블이 지속적으로 있었고, 그것이 혹여나 나에게까지 전해질까 봐 걱정하고 있던 것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런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아무래도 어머님은 내가 치마를 입어야 대우가 높아진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반대로 바지를 입으면 내가 예의 없고 자신의 대우가 낮아진다고 여기시나 보다. 예의는 치마와 바지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옷을 어떻게 입느냐에서 시작하는 것 같은데 그 기준이 우리와 달랐던 것 같다. (그래 뭐 그럴 수도 있지)
결국 그 당시에 나는 원피스를 하나 구매했다. ‘어머님 말을 들어야지!’ 이런 마음보다는 ‘그래, 뭐 입으면 되지’ 이런 마음이었다. 무엇보다도 남편이 고군분투하느라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느껴지기도 했고.
하지만 별거 아닌 것처럼 넘겼어도 어머님의 기준에 나를 강제로 끌어드리려는 그 모습에 썩 유쾌하지 않은 그런 기분이었다.
어머님은 여전히 어른 만날 때 치마를 입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언젠가 한번 셋이 앉아서 옷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아직도 치마를 입어야 한다는 말을 하셔서 남편이 몇 년 전 상견례 일화를 다시 꺼냈다.
“엄마, 난 몇 년 전에 장모님 뵈러 갈 때 바지에 그냥 카라티 입고 갔어. 옷으로 문제 삼을 거면 내가 더 심했다고.”
“너는 그럴 수 있지. ㅇㅇ은 결혼하기 전 인사하러 온 거였잖아.”
“다르긴 뭐가 달라. 난 그때도 결혼을 전제로 뵌 거라고.”
“얘가 진짜 왜 이래.”
그랬더니 첫제사에 저에게 말씀? 아니죠. 또 명령하더군요.
“치마 입어라.”
상견례 때는 그럴 수도 있지 라는 반응에서 갑자기 치마에 대한 거부반응이 치솟았다. 문제는 말투였다. 바로 어머님의 관습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것. 결혼했으니 내 말을 따르라는 듯 말하는 것.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제사를 지낼 때 내가 치마를 입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싶었으면 저런 방식이 아니라 친절하게 제안을 했어야 한다. 좋은 말투는 상대로부터 좋은 존중을 받을 수 있고 심지어 나와 다를 수 있다는 전제하에 ‘잘’ 말하는 게 중요한데 어머님은 그 중요한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분이셨다. 어머님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의견을 다듬지 않고 일단 피력하는 게 중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그것을 수긍하는 게 중요했고. 어머님이 그렇게 당연하다는 듯 명령조로만 안 했어도 거부반응이 크진 않았을 것이다.
아마 치마를 입고 싶지 않다는 뉘앙스를 은근슬쩍 내비치면 1000% 이렇게 대답하실 분이다. 확신의 찬 목소리로 말할 수 있는 게 소름 돋게 대부분의 상황에서 이렇게 대답하시기 때문이다.
“그게 왜 싫어. 그냥 입으면 되지”
(입고 싶지 않다고 말했는데 그냥 입으라고 하는 답변)
혹은
“왜. 치마 입는 게 어려워?”
(치마가 수학 공식도 아니고 누가 치마를 어려워서 안 입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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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제사 때 여전히 치마를 입고 있긴 합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치마를 입지는 않을 거예요.
바로 그 지점. 치마를 입지 않아도 강요하지 않는 그날부터, 치마를 입지 않아도 쓸데없는 핀잔을 주지 않는 그날부터,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래 치마를 입고 싶지 않을 수도 있지’라고 여기는 그날부터 점점 어머님을 대하는 게 편안해질 거라고 예상해요. 그럼 이번 추석에도 치마 잘 입고 오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더 기가 막힌 제사 이야기에서 만나요.
남편의 talk
이 글이 세상에 나올 때까지 나는 와이프에게 미안한 감정을 계속 표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