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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새미 Jan 19. 2024

관계의 거리를 더 멀어지게 만드는 시어머니의 말투

6.




이 소재로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해소되지 않았던 기분을 조용히 다스리기 위해서였다. 스트레스 해소용도 아니고, (물론 안 쓰는 것보단 해소가 되긴 하지만) 고발하기 위함도 아니다. (독자 분들의 다양한 공감으로 에너지를 받기도 하지만) 아무튼 내게 필요했던 것은 오묘하게 뒤틀어진 기분을 한 번쯤 정리하기 위해 내 감정을 글로 써 내려가는 것이었다. 가끔 글을 적다 보면 느낌표를 백개씩 넣고 싶고 1차원 적인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싶지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내가 좋아했던 대사.

워 워 하세요 워 워.

그 장면을 떠올리면서 다시 워 워. 솟아오르려는 기분을 워 워 한다.


그러다 글을 쓰면서 놀라운 점을 똑바로 알게 되었는데 바로 크고 작은 사건들이 대부분 신혼 초기에 발생한 일이라는 것이었다. 어쩌면 서로가 서로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만큼 가장 조심스러워야 하는 시기에 어머님은 나와의 거리를 본인의 색으로 밀어붙이셨다. 난 그 순간들이 가장 불편했다. 자주 만날 수록 좋은 관계가 유지되어야 하는데 한 번 뵙고 올 때마다 최대한 천천히 이왕이면 더 천천히 보고 싶었다. 어머님을 뵙고 오면 거의 정확히 3주 후에 “그래 곧 밥 한번 먹자.” 이 말을 듣는 것조차 소진돼서 먼저 전화 거는 것도 피하게 되었다. 어머님에게 3주는 긴 시간일 수도 있겠지만 나에겐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었다.


한 번은 어머님이 사용하시는 금융 관련 어플이 잘 안 된다고 하셔서 남편의 부탁으로 혼자 어머님 댁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때마침 그 근처에 일정이 있어서 문제없기도 했고.

친구와 약속을 마치고 어머님 댁에 갔는데 내 얼굴을 빤히 보는 등 반응이 꽤 의아했다.


(희죽희죽 웃으시며) “너네 솔직히 말해. 짰지?”

“네? 뭘요?”

“ㅇㅇ이 그러던데 너 오늘 약속 있다고. 사실 집에 있는데 이것 때문에 여기까지 온 거지?”

“아니에요. 저 오늘 친구 만날 일이 있어서 밖에 나와있었어요. 약속장소도 완전 근처였고요. “

“그래애? 둘이 짠 게 아니고?”

“오, 그럼요!”

“짰으면서 아니라고 하는 거 아니야?”

“오? 진짜 아닌데…”

“에이 난 나 때문에 집에서부터 여기까지 온 줄 알았지”


(보통의 상식이라면 오늘 가까이 있어서 다행이다 혹은 와줘서 고마워 이 정도가 내가 가진 스탠다드인데 어머님은 마치 본인을 위해 내가 먼 곳에서 여기까지 영차영차 와주길 은근히 원하시는 뉘앙스로 말하셨다.)

\

“근데 이러고 다녀?”

“네?”

“(얼굴을 가까이 쳐다보며) 친구 만난다더니 화장도 안 하고 다녀?”

“전 원래 4계절 내내 선크림만 바르고 다녀요.”

“그건 결혼 전에나 그럴 일이지. ㅇㅇ얼굴을 봐서라도 화장 좀 하고 다녀. 옷도 이러고 다니면 친구들이 ㅇㅇ을 욕해.”



이러고 다니면?



가장 즐겨 입는 유니클로 청바지를 입고, 가장 편한 마이클 코어스 스니커즈를 신고, 최근에 h&m에서 구매했던 리사이클링 플리스 재킷을 입고 내 문신과도 같은 이미스의 에코백을 걸쳤는데, 이러고 다니면?


여기서 문제.

Q. 제가 친구를 만나러 갈 때 하면 안 되는 거라도 한 게 있나요?


지하철 1호선에서 9호선까지 탑승객들의 의상을 대충 훑어봐도 나와 비슷한 패션이 수두룩 할 텐데 이토록 평범한 패션이 지적을 당할 일인가. 내가 이 옷으로, 선크림만 바른 얼굴로 면접을 본 것도 아니고 가볍게 친구를 만나고 온 건데.


게다가 이 모든 말들이 현관문 근처에서 들은 말이다. 나를 보자마자 할 말이 고작 이런 거라니 그저 기분 좋게 도움이 되러 온 사람의 기세를 또 이렇게 꺾어버리는구나 싶었다.


어머니는 언제나 상대의 장점보다는 본인 기준에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다 단점으로 보는 분이기도 하고 이런 일이 한두 번도 아니고 그래서 그냥 잘 안된다는 그 문제의 어플을 바로 시도했다.


어플의 문제상황은 나도 처음 보는 일이라 혼자 조용히 하고 싶었다. 괜히 누가 옆에 있으면 신경 쓰여서 더 안되고 그러니까. 다른 일 하고 계시라고 말을 했지만 어머님은 뒷 짐 지고 내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한 단계 한 단계 넘어갈 때마다 “이렇게 하라는 것 같은데?” “이걸 하라는 것 같은데?”라는 식의 참견을 계속하셨다. 뭐 이 정도는 어느 특정 어른들이 가진 디폴트 참견 값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어른이더라도 받아드려지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상대를 향한 말투이다. 말투는 생각보다 정교해서 조금만 신경 쓰면 모나지 않게 전달될 수 있는데 귀찮다고 툭툭, 난 원래 이런 사람이니까라는 식으로 툭툭 뱉어버리면 좋지 않은 방면으로 강한 인상을 줄 수밖에 없다. 당연히 어머님은 후자이다.


난 어플에 접속해서 어머님이 해결하지 못한 일처리는 하는 중이었다. 금융 관련 어플이다 보니 보안도 복잡하고 한 가지를 클리어하기 위해 거쳐야 할 단계도 참 많았다. 어플에서 하라고 하는 것을 하고 있다가 무언가를 못찾아서 살짝 헤메고 있었다. 근데...


(손가락으로 툭툭 핸드폰 액정을 치면서) “여기 있네. 참네 이거 안 보여?”


.

.

.


‘저도 눈이 있는데 안보인 게 아니라 아직 못 찾은 거겠죠. 말을 해도 꼭 그렇게 너는 이것도 안 보이니?라는 식으로 말하면 어머님이 갑자기 멋진 사람이 된 것 같고 위풍당당해지고 그런가요?’


충분히 나에게 ‘잘 말해 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상대가 아직 못 찾은 것을 본인이 먼저 찾았으면 그냥 친절하게 알려주면 되는 거 아닌가.


어머님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어머님을 향한 애정을 멈추게 한다. 그날 난 바로 그 자리에서 앞으로 어머님을 위해서 작고 사소한 무언가를 하고 싶은 마음이 희미해졌다.





남편의 talk

이번 일은 한마디로 할 수 없고 war war 하자는 건가? war war (순화할 수 있는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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