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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체리 Jan 24. 2021

비가 온다는 말은 꼭 빨래를 걷으라는 말은 아니다  



우리 병원의 최대 '빌런(?)' 식당 이모님의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이 분의 독특한 성격 때문에 과거 다수의 직원들이 말다툼 끝에 병원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는 전설이 있다. 신입시절, 하루 딱 20분 정도 직원 식당에서 이모님을 만나는 것이 너무  싫어서 나도  퇴사를 하고 싶을 정도였다.



환갑이 가까운 이모님은 남 말 하는 것을 좋아했다.  내 옆에서 밥을  먹던 직원이 자리를 뜨자마자 " 저 인간은 꼴 보기 싫게 멸치에서  견과류만 쏙쏙 골라 먹네 ."라는 욕을 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또 다른 직원에게는  "저 아줌마는  입맛이 초딩이야. 그 비싼 생선 남긴 꼬락서니를 좀 봐"라고 뒷말을 하기도 했다. 이모님의 레이더망에 걸리면 모두가 험담 대상이 되었다.





어느 날은 이모님이 일하는 주방 뒤편에 무언가를 찾으러 간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  붙은 종이를 보고 모두가 기함을 한 적이 있었다. 그 종이에는 "홍길동 고춧가루 싫어함,/ 임꺽정 잡채에 당근만 빼고 먹음,/ 이몽룡 카레밥 대신 비빔밥 달라고 함'등 직원들의 편식 행태를  빼곡히 적은  블랙리스트가 있었다!





그렇다면, 특별히 가리는 음식이 없는 나는 이모님의 총애를 받았을까?  애석하게도 이모님의 블랙리스트에 올라갈 만한 이유는 백가지도 넘었다.



나는 너무 잘 먹어서 이모님의 미움을 받았다. 내 앞에 놓인 감자볶음을  반 접시 정도 먹은 적이 있었는데  나중에 "양 선생은 글쎄 남 줄 생각도 안 하고 감자볶음 한 접시를 눈치 없이 다 먹어버렸지 뭐야'라고 뒷담화를 했다는 것을 전해 듣게 되었다.  그때는 울컥해서 맞짱을 뜰까도 생각했지만, 소심한 성격 탓에 용기가 나지 않아서 그냥 다음부터는 반찬을 조금만 먹었다.








그런데 이모님의 뒷말보다 사실 더 힘든 것은 그의 설레발(?) 이었다. 그녀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일들을 부산하게 벌려놓고 그것을 실행하느라 늘 바빴다. 그가 블랙리스트까지 만들면서 우리를 괴롭히고 미워한 것은 그것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원장님이  "이모님, 오늘 저 반차입니다"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 말을 그냥 일찍 퇴근한다는 말로 심플하게 이해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 말을 '점심을 안 먹고 퇴근하니 원장실로 밥을 배달을 해 달라' 의미로 파악했다. 어떤 생각의 회로를 거쳐야 그런 해석이 나오는지 우리는 알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그녀는 끝내 작은 그릇에 반찬을 옹기종기 담은 쟁반을 우리를 시켜  원장실로 올려보낸다는 것이다.






원장이 지나가는 말로 "미국에 살 때는  꼬막이 없었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녀는 그것을 "꼬막 반찬이 먹고 싶다"라는 의미라고 우기기도 했다.  그 다음날, 바로 꼬막 비빔밥이 나왔고, 그것을 별말 없이 비우는 원장의 모습을 탐색한 그녀는 또 '원장은 꼬막 반찬을 제일 좋아한다'는 비논리적인 결론을 도출했다. 결국  매일매일 꼬막 반찬이 올라와서 모든 직원이 '꼬막'이라는 말만 들어도 내장 깊숙한 곳에서 신물이 올라올 정도였다.






이모님의 표정은 뿌듯해 보였다. 본인이 사회생활을 잘 하고 있다는 자부심 같은 것도 보였다. 점심 쟁반을 받아든 원장도 "아니, 참 이걸 왜 올려보내지..?'하면서도 특별히 거절의 액션을 취하지는 않았다. 그들의 뜨끈 미적한 태도는 이모님의 설레발을 더욱 심화시켰고 늘 부산스럽게 상사를 위해 무언가를 준비하다가 에너지가 소진된 그는, 우리가 반찬을 조금 뒤적거리기만 해도 짜증을 냈다.








누군가가 구체적으로 청하기도 전에 일방적인 도움을 주는 것은 어쩌면 타인에 대한 폭력이다



이모님은 자신이 눈치 빠르고 센스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지만, 그의 센스 덕분에 주변의 사람들은 정신적 피로함을 느껴야 했다. 평생 가족들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면서 살아왔던  삶의 방식이 이와 같은 행동 패턴을 만들어 냈다는 것은  알고 있다. (가끔 나는 이런 이모님의 모습을 우리 친정어머니나 큰 언니에게서 발견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것을 중년 여성들의 단순한 오지랖이라고만 보아 넘길 수는 없다. 나는 남의 생각을' 척하면 척' 하고  수 있다는 생각, 내가  베푸는 호의는 남들도 모두 좋아할 것라는 믿음. 이것은 때때로 남을 숨 막히게 하기 때문이다.





내가 만일 "원장님 밥상을 따로 안 올리면 되지 않아요?"라고 의사 표현을 했다가는 이모님이 분출하는 엄청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될 것이 뻔하다. 그래서 그냥 반찬을 많이 먹거나 뒤적거리지 않고, 이모님과 길게 말을 섞지 않기 위해  빨리 밥을 먹고 식당을 벗어나는 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처신이다.









인생을 담백하고 살고 싶은 나는, 빨래를 미리 걷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 "비가 올것 같"라고 말하는 것은 꼭 빨래를  걷으라는 말은 아니다. 엉덩이가 들썩거려도 "날씨가 궂은 것 같으니까 빨래를 걷아야겠어요. 조금 도와주시겠어요?"라고 분명하게 말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다. 그것은 결코  인정머리나 눈치가 없는 것이 아니다. 남의 의도를 자의적으로 해석하지 않는, 명쾌하면서도 정확한 의사소통일 뿐이다. 






이모님과 같은 최강 울트라 오지라퍼 중년이 되지 않기 위해서 주변 상황에 조금 둔감해지는 대신 나 자신을 조용히 성찰하는데 에너지를 써야겠다고 생각한다.


빨래를 서둘러서 미리 걷지 않는 것. 그것이 인생을 담백하고 쿨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나는 우리 병원 식당 이모님을 통해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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