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간호사가 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
최근 후배들이 나를 지칭하는 데 있어 공통적으로 들리는 단어가 있었다.
그것은 트루널스.
내가 무슨 말을 하거나 어떤 행동을 하면 지나가는 말로 '역시 트루널스' 라며 놀리듯 웃는 거다.
그래서 후배들 간에 나를 특정 짓는 단어로 그 단어가 책정됐다는 걸 짐작을 할 수 있었다.
나쁜 의미는 아니겠지.
아니 오히려 후배들이 날 좋게 봐주고 있다는 생각에 참 기분이 오묘했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호평을 받을 수 있었던 그 과정을 되돌아보게 됐다.
분명, 내가 나 혼자 잘나서 그런 것은 아니다. 멋모르던 신규 시절부터 해서 꾸준히 내게 어떤 종류의
청사진을 그려준 그런 선배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애석하게도 나의 신규 시절은 환자들에게 그다지 나이스 하지 못했다.
8시간 동안 나는 일과의 사투를 벌였으며
환자들은 나를 힘들게 하는 존재로밖에 보이질 않았다.
실습 때는 무서운 선생님들을 피해서 먼지처럼 떠다니며 오히려 병실에 숨어들어가기도 했었지만 일의 세계에서는 그럴 수도 없는 거다.
제발 이벤트가 터지지 않게만 바랐다. 루틴 업무를 하기에도 벅찬데 환자의 컨디션으로 인해 이것저것 일이 늘어나면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그때 내게 환자는 인격체가 아닌 어떤 객체로서만 존재하던 때였다.
그렇게 일하면서 아무런 자극을 받지 못했다면 아마 지금도 똑같은 마음가짐으로 일을 하고 있었겠지 싶다.
어떤 의문이 들게 하는 선배가 있었다.
그 선배는 어싸인이 배정되고 난생처음 만나는 사람인데도 오랫동안 봐온 사람인 양 환자에게 살갑게 다가갔다.
그 선배는 이렇게 하면 시간을 아끼고 더 빨리 일을 끝낼 수 있는 것을 굳이 한 가지 두 가지를 더 추가하며 일을 했다.
나는 한동안은 그런 선배의 행동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조금 유난스러운 선생님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일이 적응이 돼 갈수록, 조금씩 시야가 넓어질수록, 그 선배와 다른 선배들 간의 차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단번에 눈에 들어오지 않지만 미묘하게 다른 어떤 차이.
환자가 느끼는 편안함의 정도라든가, 환자 파악 정도의 차이라든가.. 그 선배에게 인계를 받고 난 직후면
다른 선배에게 받은 때보다 일하기가 수월하고 편했다.
내게 피드백을 주는 내용 또한 달랐다. 어떤 선배들은 자신들이 할 일에만 질문을 하는 반면 그 선배의 질문 포커스는 환자에게 맞춰져 있었다.
"아니지. 이걸 이렇게 하면 환자한테 Fee 가 더 들어가잖아. 이걸로 바꾸자."라는 식이었다.
내가 좀 힘들더라도 환자에게 이롭게. 그것이었다.
나도 선배처럼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첫 의도였다고 생각한다.
나는 오늘도 선배 간호사 선생님들을 보면서 배운다. 내가 갖고 있지 못한 그들의 세심한 부분들을 포착하고 그것을 배우려고 노력한다. 그들이 내게 그랬듯이, 나도 다른 이들에게 좋은 선배가 되고 싶다.
우리의 일, 간호는 단순히 일만 잘하는 것 이상으로 요구되는 어떤 자질이 있다. 타인, 그것도 '환자'라고 하는 어떤 특수한 상황에 놓인 한 인격체와 직접적으로 맞닿는 일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환자를 일로 보는 시선에는 환자는 일로써만 그칠 것이고 환자를 사람으로 보는 시선에는 간호사로써의 성장도 함께 있다.
글을 줄이며 후배 간호사들에게 한 번 물어본다.
당신은 어떤 간호사가 되고자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