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브로콜리 Jan 19. 2023

과거로 시간여행을 간다면 언제로 가겠나요?

지금 다니는 회사는 이력서를 제출할 때 정해진 주제의 에세이를 쓰면 가산점이 있다.

그래서 썼던 글.


물리적 제약이 없다는 가정 하에 빅뱅 이전의 우주에 가보고 싶습니다.


 입사지원서에 톡톡 튀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첫 문장을 빅뱅으로 장식한 것은 아닙니다. 저는 이과를 나오지도 않았고 과학도도 아닙니다. 유신론자냐 무신론자냐 하는 케케묵은 논쟁에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는 타입은 더더욱 아닙니다. 무지로 인해 “모른다”라는 입장을 펼칠 뿐입니다. 그래도 믿는 구석이 있으니 빅뱅이란 거대 담론을 적은 것 아니냐는 말씀을 하실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런 수준이 못됩니다.


그럼에도, 빅뱅 이전의 우주로 꼭 가보고 싶은 이유는 명확합니다.


우리는 무엇으로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어렴풋이라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입니다.


우리는 이따금씩 먹고사는 문제에 치여 이리저리 방황을 합니다. 그렇다고 먹고사는 문제에서 잠깐 벗어나 뒷짐을 지고 세상을 관조한다고 뭐가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럴 때마다 어느 것 하나 쉽지 않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매 순간 매 순간이 처음인 우리들은 한없이 불안했고, 불안하고, 또 앞으로도 불안할 존재일 것입니다. 가끔씩 그 이유가 우리라는 존재의 시작과 끝이, 존재의 이유가 무엇인지 몰라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만약 시간도 공간도 존재하지 않는 빅뱅 이전의 무의 상태, 무의 개념조차도 없는 그곳에 간다면 확인해보고 싶습니다. 도대체 어떤 이유로 우주와 지구가 생겨나게 된 걸까?, 왜 하필 우리는 서로 부대끼며 하루하루를 살아내야만 하는 걸까?를 말입니다. 말 그대로 전지전능한 신이 빅뱅을 창조했다면 왜 이 세상을 만들었는지 이유를 따져 물을 것입니다. 신이 정답이라고 말하는 것을 정말 믿어야 할지 의심하고 또 의심해 보렵니다. 그게 아니라 정말 단순하게 우연의 일치로 세상이 만들어졌다면 한동안 엄습해 오는 무기력함, 허무함, 절망감, 온갖 것들의 감정들이 뒤범벅된 곳에서 허우적거릴 겁니다. 존재의 가치가 상실된 상태의 제 모습이 퍽 연민을 일으킨다고 해도 말이죠.


한편으로는 삶을 어떤 태도로 바라봐야 하냐는 곱상한 고민이 있는 그대로의 제 삶을 얼룩지게 하는 것만 같습니다. 이런 생각의 무게를 과연 혼자서 다 감당할 수 있긴 한 걸까요? 아쉽게도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다 아무리 머리 굴려도 적당한 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삶의 이유가 꼭 외부적 요인인 빅뱅을 끌어들여야만 완성되는 것인가 하는 물음을 할 것도 같습니다. 굳이 그런 이유를 들지 않더라도 우리가 살아 내고 있는 이 땅에서 때로는 슬프고, 아프고, 기쁘고, 행복한 것들을 삶의 이유로서 정의 내리는 건 나쁜 건가 하는 그런 물음 말입니다. 사소한 일상에서 잔잔하게 흐르는 감정폭이 삶을 지탱할 수 있지도 않을까요? 나름 발칙한 생각을 해봅니다. 물론 제 생각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선택한 그 무엇도 정답이 아닐 수 있겠죠. 우리는 애초에 정답이 없는 문제로 침 튀겨가며 얼굴을 붉혔던 걸지도 모릅니다. 다만, 삶의 밑줄을 어디에 긋느냐 차이 정도로만 남겨둔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비록 입사지원서를 위해 쓰게 된 글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삶을 살아가면서 너무나도 많은 외부적 요인에 휘둘렸던 게 아니었나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열정과 현실 그 두 개 사이에서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저울질을 해야만 했던 저와 당신께 아주 작은 한줌의 위로를 보내며 글을 마칩니다.

작가의 이전글 그래 사랑에 정의를 내리는 것도 웃긴 일이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