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 동쪽여행
동해의 비경, 시민의 손으로 빛나다.
겨울 문턱에 들어선 14일 토요일 동해 ’ 월산 아트만‘에서 개막되는 도우회 전시장을 방문했다. 북삼도서관에서 1년간 김형권 화백에게 교육받은 수강생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공유하는 자리다.
전시장에서 들어서자 눈에 들어온 작품이 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오종식 동해문화원장의 작품 묵호등대마을 그림이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동해문화원이 추진한 논골담길의 장소적 배경이기 때문이다. 오원장은 전시에 동참해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허무는 상징적인 활동을 보여줬다.
전시장은 김형권 화백, 장재만 회장(전 동해교육지원청 교육장), 최은자 동해문화원 이사 등 30명의 동해 자연을 화폭에 담아낸 예비 작가들의 정성이 깃든 작품들이 나를 맞이했다. 전시를 둘러본 후, 작품을 통해 변화된 시민 예비 작가들의 이야기를 나누는 토론 모임에 참여하며, 나는 미술이 가진 치유의 힘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전시회에 참여한 작가들 중 한 분은 울진에서 직접 겨울 방어를 포함한 회 한 상자를 가지고 와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는 그림을 통해 ‘갱년기의 우울과 무기력’을 극복했다고 한다. 그의 그림은 아름다운 풍경을 담은 것이 아니라, 삶의 고통과 희망을 자연으로 표현한 치유의 흔적이었다. 이 작가는 자신을 담담히 회고하며, 그림을 그리는 동안 ‘자신의 내면을 이해하고 위로받았다 ‘라고 말했다.
또 다른 참가자는 자신의 그림을 보며 스스로 놀랐다고 했다. “내가 내 그림을 보고 놀랐어요.” 그는 웃으며 말했다. 평소 자신이 품었던 고민과 감정들이 그림을 통해 분출되었다는 그의 고백은 나에게도 큰 울림을 주었다. 그림은 기술이 아니라 내면을 비우고 채우는 과정임을 그는 깨달았고, 그의 손끝에서 탄생한 작품들은 그것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는 덧붙여 말했다. “오래 그리고 나니 소질이 생기는 걸 느껴요. 그냥 생각하면 그림이 그려지더라고요.” 그의 말처럼 그림은 우리의 사고와 감정을 시각적 언어로 번역하는 놀라운 도구였다.
이날 토론 중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왔다. 월산 아트만 김형권 관장은 7살 바이올린 천재의 사례를 언급하며, “그 아이는 아마도 전생의 최고의 바이올린 연주자였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예술은 기술적인 습득이 아니라, 우리 삶에 깃든 무형의 경험을 끌어내는 과정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는 이야기였다.
앞으로 한 달간 이어질 이번 전시회와 토론은 예술이 재능 있는 사람들의 영역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치유와 성찰의 장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갱년기를 극복한 작가, 고민을 그림으로 표현한 작가, 그리고 생각을 통해 그림을 그려낸 사람들 모두가 증명하듯, 예술은 우리의 삶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만의 비경을 그리고 있다. 때로는 힘겨운 시간을 마주하며, 때로는 기쁨과 감동을 발견하며.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이 우리의 작품에 녹아든다. 그림이든, 글이든, 음악이든, 무엇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표현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발견하는 것이다.
“동해의 비경을 그리다” 전시는 예술을 통해 삶의 고난을 극복하고 자신을 표현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그들의 작품과 이야기는 내게 큰 감동을 주었고, 예술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지 다시 한번 느끼게 해 주었다. 나는 아트만 토론장에서 1도 높은 송정막걸리를 마시며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1도 높은 자신의 비경을 그려가길 바라며, 아름다운 아트만 전시장을 떠났다.
월산 아트만: 월산은 서양화가 김형권의 아호이자. 2007년 성남에서 시작된 월산미술관' 그리고 2016년 이곳에서 시작된 ‘월산무릉아트플라자'로부터 온 정체성이다. ‘아트만'은 참 나를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aiman)로 이곳에 머물며 '진정한 나를 찾길 바라는 염원을 담았다. 자연과 예술을 있는 그대로 아름답다 여기듯이, 제각기 다른 생각과 마음, 생김새를 가진 우리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시간이 되길 바라는 맘을 담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