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닿는 대로...눈길 가는 대로...먹고, 보고, 즐기는 시간
이른 아침 일어나 부랴부랴 씻고 밖을 나선다. 오전부터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저녁까지 하루 일정은 연예인 뺨칠 정도로 머릿속에 하루 일과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그렇게 하루를 바삐 보내고 숙소로 돌아오면 여행의 여유 있는 밤을 보내기에는 온몸에 피곤기가 가득하다. 그래도 다음 날 유명 맛집에서의 만찬을 즐기기 위한 오픈런을 생각한다면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만 할 것 같은 다소 억울한(?) 기분마저 든다. 대체적으로 짧게는 1박 2일에서 길게는 2박 3일 정도의 기간으로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의 흔하디흔한 여행의 모습이다. 주어진 기간 내에 보고 싶은 것 보고, 먹고 싶은 것을 먹으려면 매우 부지런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맛집 앞에서 줄 서서 먹는 데에만 하루의 반나절을 반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정신없이 보내는 여행은 소수의 모습이 아닌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겪는 풍경이기도 하다. 여행의 정의는 저마다의 취향과 성향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시간에 쫓기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을 것이다. 충분하게 주어진 시간 내에서 여유를 만끽하며 여행을 즐기고자 할 것이며, 그러한 마음은 누구나 같을 것이다. 그래서 그 여유를 한 번 만끽해 보고자 필자가 경남 거창군으로의 보름살기를 떠나 보았다. 그리고 그 낯선 곳에서 보름동안의 자유시간은 누군가의 버킷리스트 목록에 포함될 가치가 충분함을 알 수 있었다.
-모든 사진은 스마트폰으로 찰영한 것입니다-
몇 년 전 외국에서 한 달 살기를 체험해 본 후로 이렇게 장기간 집을 떠난 건 아마 3년여 만인 것 같다. 지난 태국에서의 한 달 살기 과정에서 배낭 하나만을 메고 500km가 넘게 도보여행을 했던 그 기억이 워낙 강렬했기에 다음 한 달 살기 여행지를 바로 물색하기 시작했으며, 그 최우선 후보지는 바로 인도네시아 발리의 ‘우붓’이었다.
발리를 몇 번 다녀온 사람들에게 우붓은 말 그대로 천상의 낙원과도 같은 곳이자 그곳에서 숨 쉬는 것 하나만으로도 힐링 그 자체였기에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그런 곳이다. 하지만 직장인에게 단지 여행을 위해 한 달이라는 긴 시간을 빼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닐 것이며, 필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고민 끝에 이번에는 국내로 정했으며, 수많은 지역들 중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가 아닌 내륙지역으로 좁혀졌고, 최종적으로는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인 물 좋고 산 좋은 경남 거창군으로 정했다.
누군가에겐 낯설기도 하겠지만 또 누군가에겐 익숙하고 또 좋은 추억으로 간직된 곳이기도 할 것이다. 적어도 필자에게 경남 거창군은 오래 한 번 머물러보고 싶은 그런 고장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보름살기를 시작했다.
거창에서의 보름살기에 대한 글에 앞서 거창군에 대해 잠시 소개하자면 대한민국 경상남도 서북부에 있는 군으로써 경남지역의 시군을 통틀어 합천군에 이어 두 번째로 넓은 지역이다. 경상북도, 전라북도와 마주하고 있으며, 김천시, 무주군, 성주군, 합천군, 산청군, 함양군 등 7개 시, 군과 경계를 이룬다. 다만 교통은 다소 불편한 편이다. 거창군은 또한 대한민국의 명산으로 손에 꼽히는 지리산, 덕유산, 가야산 등 3대 국립공원의 가운데 자리 잡고 있어 자연경관이 매우 수려하다.
산업적인 부분에서 다른 지자체와 다른 부분은 거창에는 승강기밸리가 있으며, 관련 기업들과 연구소 등 산업 인프라가 매우 잘 갖춰져 있다. 또한 거창 시내를 다니다 보면 도로에서 버스에 붙어 있는 승강기대학교 및 승강기고등학교의 홍보물을 쉽게 볼 수 있다. 서울 및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의 입장에선 상당히 낯선 학교명임이 분명하다. 그만큼 거창군 내의 산업 중 승강기 관련 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도로에서 이러한 광고물을 발견한다면 이 또한 재미있는 추억으로 남을 수도 있는 지방도시 특유의 풍경이라 하겠다.
말투는 경상도 특유의 사투리를 쓰며, 요즘은 사투리를 심하게 쓰는 지방 도시들도 각 도시별로 타 지역 사람들과 뒤섞여 살기 때문에 격한 사투리를 듣는 게 예전만큼 흔하지는 않지만 거창의 경우 아직까지도 지역 내에서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를 흔하게 들을 수 있다. 그리고 지역사회 내에서의 학연지연에 의한 그들만의 끈끈한 그 연결고리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럼 거창 소개는 이 정도로 마무리하고 다시 보름간의 여정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 보도록 한다.
편집마감 후 떠나는 보름살기의 설렘이란...
매 달 말일쯤 예외 없이 찾아오는 고통스러운 편집마감을 간신히 끝내고 다음 날 오전 마치 어디 이민이라도 가는 사람처럼 차에 짐을 한가득 싣고서 경남 거창군을 향해 출발했다. 지옥 같았던 편집마감을 끝낸 직후라 기분은 더없이 홀가분하고 상쾌했으며, 너무나 오랜만에 떠나보는 장기간 여행에 대한 설렘으로 기분은 한껏 달아올라 있었다.
강남순환도로에서 경부고속도로에 진입 후 대전까지 오직 직진만 하면 되기 때문에 내비게이션 따위는 전혀 필요치 않았다. 평소 즐겨 듣던 잔잔한 노랫말들이 이 날 만큼은 신나고 경쾌한 음악처럼 흥겹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렇게 콧노래를 부르며 내달리다 보니 어느덧 대전에 다다랐고, 대전-논산 간 고속도로로 갈아탄 후 다시 무주까지 달리기 시작했다. 평일 오후라 그런지 고속도로는 매우 한산했으며, 무주까지도 전혀 멀지 않게 느껴졌다. 무주에 도착했다면 거창에 다 온 것이나 마찬가지다. 무주리조트가 있는 구천동을 지나 산을 하나 넘으면 반대편부터가 거창군이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출발해 경남 거창군까지 휴게소에서의 휴식시간 포함 4시간이 걸렸다. 숙소에 가서 그 많은 집을 풀고 일정을 시작해야 맞겠지만 숙소로 들어가기 전 가장 먼저 들러야 할 곳이 있었다. 경남 거창은 매년 가을 계절의 마법을 만끽할 수 있는 명소들이 있는데 그중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 있었으니 바로 ‘의동마을’이다.
가을의 낭만 그 이상의 특별함을 간직한 곳
이곳 의동마을의 은행나무 길은 10월 말쯤 가면 가장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다. 필자가 거창군에 도착한 시기가 11월 초였으니 다소 늦었을 수도 있는 시기였기 때문에 부랴부랴 의동마을로 직행한 것이다.
점심시간이 지난 오후 1시가 조금 넘어서 도착했고, 그곳의 풍경은 평일이었음에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단풍을 즐기고 있었다. 물론 가장 멋진 사진을 찍기 위해선 아무도 없는 것이 최상이겠지만 현장 상황을 받아들이고 나름대로의 구도를 잡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사진들을 찍었다.
그리고 숙소에 도착해 두 번에 나눠서 짐을 옮기고 잠시 소파에 누워 앞으로 해야 할 것, 가야 할 곳 등에 대한 생각에 잠기었다. 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뿐, 보름동안의 긴 시간이 주어졌는데 또 계획을 세우고 짜여진 일정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도저히 마음에 내키지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그날 즉흥적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가고 싶은 곳에 가고, 먹고 싶은 것을 먹자고 스스로와의 타협을 끝냈다.
짐 정리를 한 후 동네 한 바퀴를 천천히 걸어 보았다. 자신이 살던 지역, 자신이 근무하는 회사 주변이나 그 외의 익숙한 지역들이 아닌, 서울을 벗어나 먼 타 지역에 와서 익숙하지 않은 동네를 거닐며 동네 풍경을 구경하는 것은 참으로 재미있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풍경이지만 그런 모습들 하나하나가 재미있다는 건 앞으로 시작될 보름살기가 딱히 심심하지는 않을 것이란 매우 긍정적인 신호다. 그렇게 동네를 한 바퀴 거닐며 주변 상권에 대한 기본적인 분석이 끝난 후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두어 시간 정도 휴식을 취한 후 저녁은 동네 백반집에 가서 육개장 한 그릇을 먹고 왔다.
한 가지 좋은 점은 서울의 경우 식사 도중 밥이 부족하면 추가요금을 내고 공깃밥 한 그릇을 추가 주문하면 되지만 이곳 거창에선 공깃밥이 사라져 갈 즈음 주인아주머니가 슬며시 밥상을 스캔하신 후 무료로 밥 한 공기를 가져다주신다는 점이다. 따지고 보면 공깃밥 한 그릇에 대한 돈 천원이 뭐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서울에서 절대 경험할 수 없는 인심이기에 필자에겐 더없이 고맙고 감사하게 느껴졌다. 이러한 상황은 비단 이 식당만이 아닌 필자가 식사를 한 다수의 식당들이 그러했다. 적어도 필자에게만큼은 거창 인심이 매우 훌륭했다.
기분 좋게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어느새 날이 어두워졌다. 출장을 이유로 지방에 내려갈 때마다 매번 느끼지만 지방 중소도시들의 경우 중심가에서 떨어진 지역들은 날이 어두워지면 주변이 정말 적막감마저 맴돈다. 밤이 되면 정말 밖에서는 아무것도 할 게 없고 볼 것도 없는 시골 특유의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하지만 이 또한 피할 수 없다면 즐기는 수밖에.
황량했던 곳이 ‘별바람언덕’으로 개과천선했다
이튿날 날이 밝으며 다시 하루가 시작됐다. 전 날 노곤 노곤한 몸으로 잠자리에 들었으며 그냥 자연스레 눈이 떠질 때까지 자다가 일어나자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아침에 눈을 뜨니 오전 7시였다. 평소의 루틴이 쉽게 바뀌지는 않는가 보다. 우선 아침을 먹어야 한다. 아침을 든든하게 먹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식사 패턴은 주로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점심은 상황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대체적으로 가볍게 먹는다. 그리고 저녁은 비교적 든든하게 먹는다. 경험상으로 아침과 점심을 든든하게 먹어도 저녁은 소식하겠다는 계획은 매번 틀어지기 때문이다.
어차피 저녁은 온갖 군것질을 하게 되어 있다. 저녁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강제적인 환경이 사라졌기 때문에 평소 때와는 달리 늦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기 때문에 군것질을 많이 하게 되는 편이다. 작년 속초 보름살기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번 거창 보름살기 역시 참치김치찌개를 거하게 한 번 끓이면 보통 3일은 거뜬히 먹는다.
속초에서의 경험치가 있기 때문에 이번 거창 보름살기 역시 그대로 적용시켰으며, 결론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수준급의 참치김치찌개에 든든하게 아침 한 끼를 해결한 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거실 소파에 앉아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에 잠기었다. 이 날 하루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멍하게 집 안에 처박혀 망상에 빠지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것 같았다. 그렇게 아무런 영양가 없이(?) 오전 시간을 보내고 또 같은 메뉴로 점심을 간단히 먹었다.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것도 좋지만 아무리 그래도 하루에 한 번은 밖에 나가야만 할 것 같아 오후 4시가 다 돼서야 숙소를 나섰다. 그리고 둘째 날의 첫 번째 방문 장소는 감악산 정상에 위치한 ‘별바람언덕’으로 정했다. 거창읍내에서 약 40분 정도가 걸리는 가깝지 않은 거리였다.
출발한 지 약 30분 정도가 지났을까. 본격적으로 산 정상을 향한 임도의 오르막길이 시작됐다. 구불구불한 오르막길을 한참을 오른 것 같았다. 그렇게 정상에 다다랐을 때 필자를 당황스럽게 한 건 매서운 바람이었다. 당연히 그 바람으로 인한 체감 추위 역시 상당했다. 그래서인지 정상에는 사람이 거의 보이질 않았으며, 캠핑카 한 대와 승용차 두 대가 전부였다.
차에서 내려 갈대밭을 지나 전망대까지 올라 보았다. 예전에는 이곳이 아무것도 없이 그저 풍력발전기만 몇 대 돌아갈 뿐 매우 황량한 곳이었다고 한다. 그런 이곳을 거창군청에서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산 정상에는 보랏빛 아스타국화가 가득하며 매년 10월에는 꼭 축제도 열린다. 보랏빛 아스타국화들 뒤로 떨어지는 노을을 배경으로 사진 한 컷 찍으면 그림이 따로 없는 작품이 만들어진다고 하니 필자도 내년 10월에 꼭 다시 이곳을 방문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11월 초의 별바람언덕은 비록 아름다운 이스타국화가 장관을 이루는 그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노을빛에 반짝이는 갈대의 그 황금빛 자태와 풍력발전기 뒤로 떨어지는 노을의 풍경은 아쉬움을 달래기에 충분히 아름다웠다.
전망대 위에서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니 언뜻 보면 강원도 평창의 육백마지기나 강릉 안반데기의 느낌과 사뭇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춥지 않은 화창한 날 다시 오면 산책하기 참 좋은 곳인 것 같다.
해가 지는 시간이 점차 짧아지면서 어느새 날이 어둑어둑해짐이 느껴져 서둘러 산을 내려와 숙소로 향했다. 둘째 날 뭔가 거창한 일정이 있을 것 같았지만 뭐 딱히 없었다. 숙소에서 푹 쉬다 오후가 돼서야 올라온 별바람언덕에서 산책과 일몰 구경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고 여유로운 하루였다. 그리고 이러한 여유로운 일정은 거창에 머무는 내내 계속되었다.
세상 모든 식물과 꽃이 모인 듯한 이곳
필자가 예전 거창군 지역경제에 대한 취재차 3일 동안 거창군에 머문 적이 있는데, 그때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 있었으나 일정상의 이유로 다음을 기약해야만 했던 곳이 있다. 바로 ‘창포원’이라는 곳인데 그 정원의 규모가 무려 축구장 66개의 크기라 한다. 걷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 입장에서 그 드넓은 정원을 걸으면서 구경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곳임이 분명해 보였다. 그리고 이번 기회를 통해 방문해 보았다.
창포원은 거창 읍내에서 차로 불과 20여 분 거리의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멀리서 보아도 상당히 넓은 부지임을 짐작할 수 있는 규모였다. 주차장 역시 널찍해서 편하게 주차할 수 있었다. 또한 별도의 입장료도 받지 않기 때문에 이곳을 방문하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입장료를 받는다 할지라도 충분히 방문해 볼 만한 매력이 있는 곳이다.
거창 창포원은 합천댐을 조성할 당시 수몰된 곳으로 벼를 재배했던 농지인데, 국가하천인 황강의 수변경관과 어울리는 생태정원으로 다시 태어나면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필수적으로 방문하는 거창의 관광명소가 되었다. 또한 지역민들도 즐겨 찾는 인기 장소이기도 하며, 워낙 광활한 부지에 조성되어 있기 때문에 이곳을 다 돌아보려면 자전거를 이용하는 것도 하나의 좋은 방법이다.
이곳의 관람 코스는 총 4개로 구분되어 있다. 왼쪽 코스=1.2km 약 30분이 소요되며, 방문자 센터-수국원-국화원-전망정원-나리원-생태연못-수생식물원을 둘러보게 된다. 오른쪽 코스는 1.3km 약 30분이 소요되며. 방문자 센터-꽃창포 습지-수련원-연꽃원-번답습지-아이리스 정원-메타세쿼이아 길-이팝 습지-생태연못 순으로 둘러본다. 산책로 코스는 1.8km 45분이 소요되며, 방문자 센터-수국원-국화원-전망정원-메타세쿼이아 길 전체-아이리스 정원-꽃창포 습지 순이며, 구석구석 코스 2.2km 1시간 정도가 소요 예정에 코스는 방문자 센터-수국원-나리원-국화원-전망정원-벚꽃습지-수련원-연꽃원-아이리스 정원-버들습지-나비 광장 순으로 짜여져 있다.
이렇듯 여러 코스가 구분되어 있기는 하지만 막상 방문하면 그 코스들이 명확히 구분된 것도 아니기에 자신들에게 주어진 시간과 체력에 맞게 자율적으로 걷고 싶은 코스로 걸으면서 구경해도 좋을 듯하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많은 종류의 꽃들이 가득하기에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의 여행을 보다 풍요롭게 만들어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필자의 경우 자전거를 대여해 한 바퀴 돌아보려 했으나 제아무리 넓은 부지의 정원이라도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면 너무 빨리 끝날 것 같아서 일부러 걸어서 이동을 했다. 도보 이동의 경우 사진 찍는 시간을 포함해 대략 3시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크게 한 바퀴를 걷고 나니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걷는 내내 기분이 좋아서인지 콧노래를 흥얼거렸으며, 굳이 멋진 사진을 찍기 위해 애써 구도를 잡으려 하지 않아도 주위의 모든 풍경이 그림 같은 사진을 만들어 주었다.
거창 창포원에서 약 4시간 정도를 머문 것 같다. 반나절이나 하루 종일 머물러도 좋았을 것 같았던 창포원. 단기 여행이라면 하루 방문일정에 속한 4~5곳의 여행지 중 한 곳에 불과했겠지만 보름살기를 하다 보니 남는 것이 시간인지라 하루에 몇 군데를 방문했는지의 그 양적인 부분보다는 어느 곳을 방문해서 어느 정도의 만족스러운 휴식을 취하고 힐링을 받았는지에 대한 질적인 부분에 치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 날 역시 풍족한 시간을 무기 삼아 매우 여유 있는 하루를 즐겼던 것 같다.
유유자적 떠돌던 중 우연히 발견한 한옥마을
거창에서의 평범한 나날들을 보내던 중 하루는 차를 몰고 무작정 거창 곳곳을 누비며 다녀 보았다. 목적지 없이 운전을 하다 보니 거창이 참 넓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참으로 산이 많은 고장이었다, 일 때문에 두어 번 출장 왔을 때는 무감각했지만 이번 보름살기를 통해 천천히 둘러보니 거창이란 곳이 그러했다.
운전을 하다 보니 어느덧 수성대로 가는 방향의 이정표가 보이기 시작했다. 수성대는 무더운 여름철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거창의 대표적인 유명 관광지다. 하지만 늦가을에 그것도 평일이라서 그런지 오고 가는 차도 없고 사람도 보이질 않았다.
수성대 앞에 잠시 차를 세우고 주변을 둘러보는데 바로 맞은편에 황산전통한옥마을 안내표지판을 발견했다. 거창에 한옥마을이 있는 줄은 전혀 몰랐기에 그 반가움은 더욱 컸다. 천천히 이정표를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니 바로 한옥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을 초입에 차량 십여 대 정도가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으로 보이는 공터에 차를 세우고 마을 담벼락을 따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전국의 그 어떤 한옥마을과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그런 한옥마을이 주는 정취 가득한 곳이었기에 걷는 내내 매우 만족스럽고 큰 힐링을 받았다. 그곳을 걷는 사람은 필자 외에는 아무도 없어서인지 더욱 그 고요함과 여유로움을 충분히 만끽하며 즐길 수 있었다.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가 바로 전혀 의도치 않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 그 사람들과 만들어가는 여행 이야기들, 또는 이처럼 뜻밖의 장소를 발견했을 때 느끼는 희열과 행복감은 여행의 즐거움이 배가 된다.
이 날은 날씨까지 도와줘서 그랬는지 스마트폰 카메라의 렌즈를 갖다 대는 족족 모든 사진이 하나의 작품처럼 보였다. 이제와 다시 생각해 봐도 이 날 한옥마을 발견은 필자에게 큰 선물과도 같은 것이었다. 개미새끼 한 마리 없는 그 마을 전체를 홀로 천천히 둘러보던 그 여유로웠던 시간이 가끔 머릿속을 맴돈다.
언제나 소소한 재미를 주는 전통시장
각 도시들의 매력을 어필하는 요소들은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른 매력을 뽐내는 각양각색의 관광지와 더불어 사진만 봐도 침샘을 폭발시키는 다양한 음식들이다. 특히 해당 지역에서 나는 농수산물을 이용한 향토음식들은 여행객들의 발길을 사로잡는데 큰 역할을 한다. 제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전국 어디서나 맛볼 수 있다면 그 매력이 반감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맛 기행을 즐기는 위해서 좀 더 특색 있고, 맛있는 지역의 음식을 먹기 위해서라면 4~5시간을 운전해서라도 가고야 마는 그들에게 수백 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리는 전혀 문제가 안 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들이 여행에서 빼먹지 않고 들르는 곳이 바로 각 지역의 전통시장이다. 필자 또한 여행 및 잦은 출장에서도 항상 들르는 곳이 전통시장이다. 몇몇 전통시장 빼고는 그 모양새나 규모나 다 비슷비슷하지만 그래도 그 지역의 문화나 정취를 엿볼 수 있는 곳이 전통시장이기 때문에 매번 들르는 편이다.
거창군 역시 거창전통시장이 있다. 거창 읍내의 중심부 부근에 있어 접근성이 매우 좋으며, 그다지 화려하거나 규모가 크진 않지만 시골의 정취를 느끼며 구경하기에는 그럭저럭 가볼 만하다. 이번 거창에서의 보름살이 과정에서 필자 역시 4~5번 들러 식사를 하기도 했다. 그중 허름하고 좁디좁은 식당에서 점심 한 끼를 때운 푸짐한 양의 잔치국수 한 그릇이 그렇게도 만족스러울 수가 없었다. 소소한 재미를 즐기기에 전통시장만 한 곳이 없다고 생각한다. 여행의 백미는 역시 맛 기행이며, 맛 기행의 백미는 역시 전통시장이다.
전통시장 얘기가 나왔으니 한 마디 더 덧붙이자면 거창과 접해있는 경남 합천군에 위치한 가야시장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 특별했던 가야시장에서의 감동과 거창 보름살기의 남은 여정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이어보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