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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 Jul 15. 2024

부조리에 반응하는 자들 -3(完)-

《다크 나이트》(크리스토퍼 놀란, 2008)

 투페이스, 갈등 끝의 분노

 하비 덴트는 ‘백기사’라 불릴 정도로 고담시의 희망이었다. 그는 살바토레 마로니 등의 마피아들을 기소하는 등 고담시의 부패를 척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정의로운 경찰 제임스 고든은 물론 자경단 배트맨과도 협력하여 도시를 깨끗하게 만들기 위해 애썼다. 한편, 그는 브루스 웨인이 사랑하는 레이첼 도스의 현 연인이기에 브루스 웨인을 미묘한 견제하는 모습도 영화 내에서 볼 수 있다.


 브루스 웨인 역시도 마찬가지로 하비 덴트를 견제하지만, 공적으로는 선거자금 모금 파티도 열어주는 등 그를 굳건하게 지지한다. 앞서 말했듯, 배트맨으로서의 브루스 웨인은 그를 진정한 도시의 영웅으로 보며 그의 존재를 통해 배트맨의 역할을 내려놓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보기 때문이다. 하비 덴트는 배트맨과 달리 ‘합법적 권위’ 즉 법의 테두리 내에서 활동한다. 이처럼 영화 내에서 백기사로서의 하비 덴트는 흑기사로서의 배트맨과 뚜렷하게 대비된다. 그렇기에 오히려 브루스 웨인은 그를 지지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하비 덴트를 믿습니다.”     


 하비 덴트의 상징은 동전인데, 필연적으로 양면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 동전이지만 그의 동전은 오직 한쪽 면만 존재한다. 정확하게는 양면이 모두 같은 앞면이다. 그것은 항상 자신이 옳다는 믿음을 나타내며 도덕적 확신을 드러낸다. 그러나 동시에 하비 덴트 스스로가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자 하는 내면의 강박적 욕구를 나타내기도 한다. 즉 이미 결과가 정해진 동전을 튕기면서 도덕적 확신을 통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동전은 그의 심리적 안전장치와도 같다. 즉, 뒷면이 없는 백기사로서 하비 덴트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다. 따라서 하비 덴트의 동전 던지기는 자아와 초자아가 함께 구축한 페르소나적 행동으로, 자신이 신뢰하는 정의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다.


 그러나 영화 중후반, 그 동전의 한쪽 면이 훼손되면서 그는 변하게 된다. 그는 조커의 계략에 의해 믿었던 경찰들에 의해 배신을 당하고 죽을 위기에 처하고 얼굴의 한쪽 면에 끔찍한 화상을 입어버린다. 또한 레이첼 도스가 죽었다는 소식에 절망한다. 자신의 반쪽과도 같은 연인을 잃고, 자신의 전부였던 정의로운 사명감도 잃어버린 하비 덴트는 곧 자신을 찾아온 조커를 만난다. 그는 하비 덴트의 분노를 경찰과 마피아에게로 향하도록 그의 이드, 즉 본능적 욕망을 자극하여 자아와 초자아의 균형을 무너뜨린다. 그가 그동안 공평하다고 믿었던 정의에 배신당한 하비 덴트는 조커의 말에 설득되기 시작한다.     


 “무정부가 뭔지 보여주지. 정립된 질서를 뒤엎으면 모든 게 혼돈으로 바뀌어. 나는 혼돈의 대리인이야. 혼돈의 특징이 뭔지 아나? 공평하다는 거야.”     


 조커의 말을 들은 하비는 그 무엇보다도 공평한 ‘운’에서 정의를 찾는 투페이스로 각성한다. 그러나 과연 그것은 공평할까? 동전을 던졌을 때 한쪽 면이 나올 확률이 정확히 절반이라고 정의하기 위해서는, 그 동전이 ‘페어 코인’ 즉 앞뒷면 나올 확률이 같다고 가정해야 한다. 그러나 투페이스가 사용하는 동전은 한쪽 면이 불에 그을렸고, 그것이 결과에 영향을 미칠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을 포함한다. 그렇기에 그가 믿는 동전 던지기의 공평성도 사실은 정확하지 않다. 결론적으로 확률이 공정하다는 판단하에 행해지는 심판 역시도 자기 자신의 신념에 의한 행위일 뿐이다.


 투페이스는 자기 행동의 결정을 무작위성의 공평함에 맡긴 채 복수를 시작한다. 부패한 경찰들을 찾아가 동전 던지기의 결과에 따라 그들을 판결한다. 앞면이 나오면 살고, 뒷면이 나오면 죽는다. 이것은 자기 신념에 따른 정의를 추구하던 하비 덴트는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으며, 공평하다고 믿는 우연에 기대어 결정하는 투페이스만이 남게 되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그것은 조커를 통해 내면의 그림자가 해방된 것이며, 그의 이드가 자아와 초자아를 압도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한편 레이첼 도스가 죽은 사건은 브루스 웨인과 하비 덴트의 대조적인 면을 드러낸다. 두 사람은 조커가 꾸민 사건으로 사랑하는 여자, 그것도 같은 여자를 잃었다. 이때 배트맨은 그가 택했던, 비록 본의 아니게 택한 것일지라도 그가 선택했던 ‘대의’를 지키기 위해 마음을 다잡고 일어섰다. 반면 하비 덴트는 그 ‘대의’에 대한 환멸을 품고 추락했다. 자경단으로서의 활동에도 둘은 차이를 보인다. 배트맨은 계속 언급했듯 도덕적 경계에서 불살주의를 고수한다. 그러나 투페이스는 스스로를 심판관으로 여기며 대상자의 목숨을 쥐락펴락한다. 이렇듯 마침내 하비 덴트가 투페이스가 되었을 때, 앞서 계속해서 등장했던 배트맨(브루스 웨인)과 투페이스(하비 덴트)의 영화적 대비는 극명해진다.


 자아와 페르소나가 무너진 투페이스의 총구는 곧 제임스 고든의 가족에게로 향한다. 그가 총구를 그곳으로 내민 것은, 제임스 고든이 하비 덴트의 걱정과 경고를 무시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가 부하를 제대로 관리했다면 그의 부하로 있는 부패한 경찰은 하비 덴트와 레이첼 도스를 납치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투페이스는 그 총구를 책임자라 볼 수 있는 제임스 고든이 아닌, 죄 없는 그의 아들에게 내민다. 그것은 레이첼 도스의 죽음으로 그가 경험해야 했던 상실감과 비통함을 제임스 고든에게도 주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러자 배트맨은 레이첼 도스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자들에게 총구를 향하게 해야 한다며 그를 설득한다. 그 말에 일부 동의한 투페이스는 배트맨과 자신, 그리고 제임스 고든의 아들에게 순서대로 총구를 내민다. 이때 자기 자신에게도 총구를 들이미는 모습을 보며 그 광기를, 그리고 그가 얼마나 확률의 공평성을 믿는지를 알 수 있다.  


 “이건 내가 원하는 바와는 상관없어. 이건 공평함의 문제니까! 넌 이런 정신 나간 시대에서도 우리가 선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나? 틀렸어. 세상은 잔인해. 잔인한 세상에서 도덕은 단 하나, 확률이야. 편견도 없고, 치우침도 없고, 공평하지. 고든의 아들도 그녀와 똑같은 확률을 얻게 될 거야. 50대 50으로.”     


 배트맨과 자신의 차례를 지나 제임스 고든의 아들을 심판하기 위해 동전을 던진 그때 배트맨은 투페이스를 공격하여 그를 추락사시킨다. 이것은 배트맨에게도 비극이었는데, 불살주의 신념을 저버리게 된 것과 더불어 그가 고담의 희망이라고 생각했던 정의로운 검사이자 백기사 하비 덴트를 제 손으로 죽이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그때 동전 던지기의 결과는 ‘앞면’이었다.


 아래로 떨어진 투페이스는 화상을 입은 면을 하늘 쪽으로 보인 채 죽었다. 배트맨은 그의 얼굴을 멀쩡한 반대편으로 돌리며, 자신이 모든 죄를 뒤집어쓰겠다고 제임스 고든에게 말한다. 고담시에는 배트맨과 같은 자경단이 아닌,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희망을 보여준 ‘진짜 영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만약 고담의 정의를 상징했던 하비 덴트가 타락했다는 것이 알려지면 고담 시민들의 희망이 짓밟히고 믿음이 무너져 버릴 것이 뻔했다. 반면, 어차피 배트맨은 법의 테두리 바깥에서 활동하는 자경단이었고, 시민들 눈에는 언제 타락해도 이상하지 않을 존재였다. 그렇기에 정의로운 사명을 가진 검사로서의 죽음을 알린다면 일종의 순교자로서 하비 덴트를 기리며 정의에 대한 희망을 고취 시킬 수 있다. 물론 배트맨은 최악의 범죄자가 되어 버리지만 말이다.


 그것은 하비 덴트가 영화 초반부에 직접 했던 대사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결국 그가 내뱉은 말처럼, 하비 덴트는 영웅으로 죽고 배트맨은 악당으로 살아가게 됐다.      


 “영웅으로 죽든가, 아니면 오래 살아서 악당이 되는 자신을 보든가 둘 중 하나죠.”     


 이러한 하비 덴트의 투페이스로의 변모는 영화 《다크 나이트》에서 가장 극적인 요소 중 하나다. 영화는 그를 통해 영웅과 악당의 경계가 얼마나 불안정한지, 사회적 부패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도덕적 갈등이 인간 내면을 어떻게 복잡하게 만드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이 세상에서 마주하는 부조리 가운데 어떻게 결정을 내리고 행동해야 할지를 관객들에게 고민하게 만든다.


 혹자는 ‘동전 던지기는 진부하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동전 던지기’로 대표되는 선과 악의 갈등, 그리고 세상의 부조리 끝에 잘못된 선택을 내리는 모습은 사람들의 실제 삶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그렇기에 오히려 그것이 진부해질 정도로 다뤄져 온 게 아닐까? 그리고 여전히 그 모습이 존재하기에 이 영화 역시도 그것을 다룰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닐까? 세상이 여전히 부조리하고 그 가운데 갈등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한, 그것이 아무리 진부하더라도 ‘동전 던지기’는 계속 다루어질 것이, 그리고 다뤄져야 함이 명백하다.   

  

 맺으며

 본 비평문에서는 배트맨을 질서와 정의를 수호하려는 고뇌하는 영웅으로, 조커를 사회 부조리와 인간 도덕성의 한계를 폭로하려는 혼돈의 화신으로, 투페이스를 사회적 부조리에 처해 도덕적 갈등 끝에 분노하는 개인으로 분석했다. 그것을 통해 사회적 구조와 개인의 도덕적 선택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보여주었으며, 현대 사회의 불안정성과 모순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했다.


 단순한 오락 영화 이상의 작품성을 가진 이 영화를 통해, 우리는 현대 사회의 중요한 논의를 촉발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영화《다크 나이트》가 히어로 영화 역사상 가장 걸작으로 칭송받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아직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어둠의 기사가 보여주는 그 숭고한 희생 속에 동행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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