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현창 May 18. 2020

아버지도 아버지가 처음이다

그러나, 나도 누군가의 아들이 처음이었다

어렸을 때, 나에게 아버지란 전지전능한 신과 같았다. 이 세상 모든 지식을 알고 있는 무불통지(無不通知)의 사람이며, 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의 아우라를 갖고 있는 남자였다. 어린 나보다 지식이나 교양 부분에서 월등히 앞서셨고, 장기, 바둑 심지어는 메이플스토리라는 게임조차 나보다 잘하셨다. 나에게 아버지란 신화에서 나올법한 그런 존재였고, 아버지가 아버지로서, 남자로서 존경스럽고 멋있었다.


그러나 2020년 05월 현재, 나는 아버지와 더 이상 연락하지 않는다. 2018년 02월, 내가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뵀던 날이다. 그 이후로 나는 아버지와 어떠한 연락도 주고받지 못했다. 




아버지도 아버지가 처음이다. 아버지도 어머니와 첫혼인을 했고, 아버지도 아들을 처음 낳았고, 누군가에게 이렇게 큰 사랑을 지속적으로 주신 적은 처음 이리라. 


2014년부터 본가에서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 미국에서 유학생활 중이던 나는, 본가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깨 넘어 듣기는 했지만 자세한 일들을 알지는 못한다. 확실한 건, 그 당시의 나와 아버지의 사이는 그리 가깝지 못했다.


2017년 12월, 나의 유학비 지원이 끊겼고, 나는 한국의 외할머니 댁으로 돌아와 군대에 입대를 하게 되었다. 그때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뵀었고, 내가 처음 들었던 말은 '약속 없지 찾아오지 마라'였었다. 그때의 일이 아직도 머릿속에 트라우마처럼 맴돌아 나에게 아버지라는 존재는 어렵다. 매해 어버이날이나 아버지 생신 때 연락을 드리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고 있다.


그 기간 동안 나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사랑했던 사람들도 떠나가고, 중학교 때부터 나와 가장 친했던 친구도 더 이상 연락하지 않는다. 20살 이전에 첫차를 사고, 본가가 청담동 빌라였던 나는 현재 10년이 더 된 집에서  대중교통을 애용하며 살아가고 있다. 물론 나는 이 삶에도 나름의 재미를 느끼며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핑계일 수 있지만 아버지가 아버지가 처음이듯, 나도 아들이 처음이다. 아버지를 대하는 법을 모르고, 아버지와 소통하는 법을 몰랐다. 세상 무서울 것 없었고, 부족한 게 없이 자랐기에 내가 잘난 줄 알았다. 부모라는 그늘 아래에서만 살았던 나에게 세상은 가혹했다. 쇼핑몰 창업도 하고, 영어 강사도 하고, 플랫폼 창업도 하고, 어플 회사까지 창업해 보았다. '맨땅의 헤딩'은 너무 힘들었고, 나름의 성과도 얻어도 보았지만 아직은 '경험'에 만족할 정도다. 하지만 나에게 진짜 필요한 건 '아버지'라는 존재였다.


가끔 창업을 하면서 조언을 구하고 싶거나, 어버이날이나 주변 지인들이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때 아버지가 사무치게 그립기도 하다. 지금도 아버지에게 연락을 드리고 싶은 마음이 가득 하나, 혹여나 금전적인 문제 때문에 하는 연락으로 비추어 보일까 아직도 먼저 연락을 드리지는 못한다.


우리 아버지는 '전지전능'하지 못하다. '완벽'한 분은 더더욱 아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도 한 명의 사람이었고, 책임감 있는 남자였다. '가장'이라는 호칭 아래에 열심히 노력하셨던 분이다. 아버지도 아버지가 처음이다. 아들과 비슷한 생각을 하며 때론 아들을 사무치게 그리워하실 수도 있다. 그 역시 먼저 연락하는 게 어려울 수 있다. 


나 역시 아버지에게 복합적인 감정을 갖고 있듯이, 아버지가 나에게 가지시고 있는 감정이 분노인지, 절망인지, 배신감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아버지가 아버지가 처음이듯, 나도 누군가의 아들은 처음이었다. 아버지에게 언제 연락을 드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그 역시 아들을 가끔씩은 그리워했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한국'과 '미국'의 육아(育兒) 下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