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주 Jul 08. 2021

들꽃을 만나다

우리 동네 사람들이 자주 찾는 강이 있다. 아침을 먹고 나면 가벼운 옷차림을 하고 서둘러 집을 나선다. 산뜻한 공기를 맡으며 홀로 강 길을 걷는 것도 어느새 익숙해졌다. 햇빛을 쐬며 걸으면 우울증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의사 선생님의 권유로 시작하게 된 운동이다. 임종환의 노래 가사 말처럼 처음엔 그냥 걷기만 했다. 앞만 보며 목적지까지 갔다 오면 오늘의 숙제가 끝이 났다.  

   

어느 순간부터 나를 스쳐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려 오기 시작했고, 길옆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들꽃, 얌전하고 곧게 서 있는 나무, 간간이 강에서 노니는 물고기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걷기 시작하면서 나는 새로운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그들에게 나의 넋두리를 늘어놓으면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잎사귀들은 내 말에 호응해 주었다. 어느새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들꽃은 내가 걸어가는 길에 친구가 되었다.

    

들꽃이 좋다. 길을 걷다 만나는 이름 모를 들꽃. 온실에서 잘 자란 화초보다 길섶에 자유로이 피어 있는 들꽃을 보면 시선이 머물게 된다. 그곳으로 다가가 허리를 낮추며 들여다보는 이유다. 분명 화려하게 피어 있는 꽃은 아니다. 도심의 빈터에 자리 잡고, 돌 틈 사이를 비집고 올라온 질긴 생명력에 감탄한다. 열악한 곳에서도 작고 여리기만 꽃이 자라날 수 있다는 사실에. 그곳은 누구의 시선에도 쉽게 들지 않는 곳이다. 자그마한 이름 모를 꽃은 잎을 쫙 펼치며 자신의 영역임을 확연히 보여 준다. 내가 무척 닮고 싶은 삶의 모습이자 태도이다. 사람들 속에서 잘 드러나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나 세월이란 걸림돌에 걸려 넘어질 듯 넘어지지 않고 자신을 지탱해 온 모습과 흡사하다.   

  

그 어떤 곳이라도 내가 있는 그 자리에서 성장하고 싶다. 다른 사람들의 삶 속에 들어가 그들에게 꽃을 피워주는 사람이고 되고 싶다. 치열한 경쟁에서 홀로 살아 남기 보다는 그들과 함께 나아가고 싶다. 들꽃을 보고 있으면 그런 삶의 방향성을 엿볼 수 있어 좋다.    

 

나는 나의 프레임 안으로 들꽃을 가져왔다. 캔버스에 들꽃의 의미를 부여하고 나만의 시각으로 재해석하여 표현한다. 단순한 잎은 확장되고, 축소되면서, 때론 왜곡하여 그 자유분방함의 이야기를 캔버스에 담아낸다. 복잡하게 뒤엉킨 잎을 보고 있으면 그들 세상에 숨겨진 이야기가 매우 궁금해진다. 내가 붓을 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가던 길을 멈추며 이름 모를 들꽃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들꽃 2021 드로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