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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주 Aug 22. 2021

나 여기 있어!

삶을 살아가다 보면 문득 생각나는 아이가 있다

치료는 계속 받고 있는지, 아직 그림은 그리고 있을까!

민수는 내가 만나온 아이 중 가장 지능이 뛰어난 자폐청소년이다. 사물을 보며 표현하는 능력이 우수하며, 관찰력이 뛰어난 아이다. 고등학교 2학년인 민수는 180cm 남짓 되는 키에 적당한 체구. 하얀 피부를 갖고 있다. 뿐만 아니라 손이 곱고 예쁘게 생겼다. 연필을 잡은 손이 예뻐 나는 종종 민수 손에 시선을 고정하는 일이 종종 있다.


“오늘은 뭘 해 볼까? 그리고 싶은 거 있으면 그려 볼래?”

민수는 얼른 도화지를 받아 들고 서슴없이 그린다. 도화지의 3분의 1지점 아래에 네모 칸을 3개 그리고 순서대로 상점의 이름을 써넣는다. 돼지국밥, 세차장, 미용실을 그려 넣는다.  돼지국밥집 앞에 세로 선을 하나 긋고 막대기 모양의 사람 두 명과 작은 사람을 한명 더 그린다. 세차장 역시 세로 선을 긋고 차를 그리고, 미용실도 십자형 틀에 사람의 머리만을 네 개 그려 넣으며 내게 말을 한다.


“밥 먹으로 가요”

“여기 있는 사람들은 그럼 누구야?”라는 나의 질문에 민수는 “엄마, 아빠, 동생”이라 대답한다.

“밥 먹을 때 민수는 없었어?”  질문을 하나 더 던져본다.

“아니, 나 여기있어

손가락을 자신을 가리킨다.


나는 민수의 얘기를 듣고 한참을 웃었다. 가족들과 밥을 먹으로 간 민수는 지금 여기 치료실에 있기에 그림 속에 자신을 그려 넣을 필요가 없었다. 일반 아동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사고체계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웃음으로 그대로의 민수의 세계를 받아들인다. 그림에서의 또 다른 특징이 눈에 들어온다. 모든 사람을 막대기와 동일 형태로 표현했으나, 동생만은 꼭 사람의 형상으로 그려진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궁금했다.

치료 시간이 끝난 후 어머니께 민수와 동생의 관계를 여쭤보았다.


민수는 동생이 어릴 때 우주복을 입은 모습을 좋아했고 지금도 그 우주복을 볼 때면 혼자서 웃곤 한다 했다. 생각 만해도 웃음이 절로 나올 만큼 귀여운 동생은 민수에게 다른 사람들과 달랐으며 그림에서도 그런 표현이 나타났다. 동생은 민수에게 언제나 귀엽고 사랑스러운 존재로 각인되어 있었다. 민수의 그림에서는 사람의 표정이 모두 무표정이었다. 한 번은 민수와 표정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고 싶었다. 민수는 묘사력은 좋으나 주제를 갖고 표현하는 것을 무척 힘들어했다. 내가 질문이 많아지거나 좀 더 생각을 요구하는 질문을 하면 온몸으로 거부의 반응을 보였다.


“민수야! 선생님 얼굴 잘 봐!

선생님은 기분이 좋으면 웃게 돼 그럼 입 모양도 올라가고 눈도 웃고 있어!

그러나 슬플 때면 눈물이 나고 입꼬리도 내려가고 눈 모양도 이렇게 처져있어!”

민수는 같은 반 여자 친구인 다은의 얼굴을 그렸다.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민수야 다은이는 지금 기분이 어떨까?

“좋아요.”

“왜 좋을까? 무슨 좋은 일이 있어?”


순간 난 느낄 수 있었다. 민수가 화가 났다는 것을 연필을 쥔 손에 힘이 꽉 들어 그 손이 부들부들 떨고 있었고, 눈동자는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순간 뚝! 하는 소리가 나더니 연필심이 부러졌다. 나의 과한 욕심이 민수를 화나게 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난 얼른 한 발 뒤로 물러서야 했다. 더 이상의 질문이 민수를 충동적인 행동을 보일 수 있게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항상 단답형에 익숙해져 있던 민수에게 “왜”라는 질문은 생각을 더 요구하기에 민수에게 질문에 대한 대답은 무척이나 힘든 과정이었다.  나는 민수가 더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질문을 던져 민수의 대답이 조금 더 다양했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짧은 생각이라도 말로 표현할 수 있도록 끌어내고 싶었다. 그렇게 민수를 볼 때마다 나는 욕심이 생겨났다.      


이 아이를 조금 더 일찍 만났었다면 어땠을까?
지금의 생각, 행동이 고착되어 있어 좀 더 가까이 내가 민수의 세계에 들어가고자 할 때 거부반응을 보이며 나를 강하게 밀어내고 있다. 이 현실이 치료가 더디게 간다는 것을 알기에 마음이 조급했었다.  내가 자폐 아동들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뭔가에 열중하는 모습이 나의 한 부분과 많이 닮아 있었기에 충분히 공감됐다. 그렇게 그림이라는 매체로 이야기를  나누고, 그림을  그리면서 우린 하나임을  느낄  수 있었다.



그해 5월 안 좋았던 몸이 악화하여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열흘간의 병원 생활 후 퇴원했으나 그 몸 상태로 일을 할 수가 없게 되어 치료사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렇게 난 무책임하게 민수와 만남을 가진지 3개월 만에 전화와 문자로 민수에 대한 특징과 자료를 후임 미술치료사 선생님에게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나는 민수를 만나는 동안 항상 불안한 마음이 가슴 저 밑바닥에 깔려 있었다. 곧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갈 텐데 무언가 할 수 있는 사회인의 한 사람의 모습을 보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민수는 지점토로 작은 소품 만들기도 잘했고, 드로잉도 재미있는 작품이 많았다. 장애인들을 고용하여 작업할 수 있는 작은 아트샾에서 엽서나 냉장고 자석, 메모 받침과 같은 소품을 제작하고 판매하는 일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혼자 했었다. 작은 일을 시작으로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방법과 기술을 알아봐 주고 싶었다. 그런 나는 마음만 앞섰고 민수에게 내 역할을 다하지 못한 선생님이었다.      


오늘은 더욱 민수의 밝은 미소가 생각난다.   


  

보라색의 아련함은 옛추억을 불러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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