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주 Mar 23. 2022

묵호항

넓은 바다가 보이는 수평선을 바라본다. 생각이 많아지고 머릿속이 복잡해지면 바다를 바라보는 꿈을 가끔 꾼다. 알 수 없는 공허함과 헛헛함이 밀려들 때면 머릿속에 묵호항을 떠올리며 최소한의 짐을 꾸리고 서둘러 집을 나선다. 

5시간 가까이 차를 타고 달려가면 가파른 긴 벽에 그려진 벽화를 보고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 수 있다. 모퉁이를 지나 어지럽게 늘어진 낡은 상점들을 따라 들어서면 어느새 바다의 비릿한 내음이 내 코끝을 통과해 온몸으로 퍼져가는 것을 느낀다. 자연에서 고스란히 녹아 나오는 청량함이 답답한 가슴을 관통한다. 알 수 없는 이끌림을 따라 걷다 보면 광활하게 펼쳐진 바다와 마주하게 된다.


파도는 잔잔한 물결선으로 뭍 가까이 바위를 살짝 때려 주고 있다. 가슴이 펑 뚫린 듯 상쾌함과 시원한 기운이 온몸을 감돈다. 바닷길을 따라 조금 더 들어가면 낡고 허름한 작은 식당이 하나가 있다. 7번 국도를 따라 동해를 갈 때면 일부러 들러 식사를 하는 곳이다. 작은 식당 인근에는 나지막한 야산이 하나 있다. 바다의 황망함과 푸른 초록 잎들이 어우러져 꾸미지 않는 날것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다. 육지의 끝자락에서 가고 싶어도 더 이상 갈 수 없는 막다른 곳에 다다른 느낌이다.

마치 삶의 종착역과 같다.     



삶을 살아가다가 만일 내 영혼이 피폐해져 어딘가에서 쉴 곳이 필요하다면 난 이곳으로 찾아오리라 생각했다. 이곳 바다는 육지와 인접한 곳에 작은 돌섬 하나가 있다. 바다 한가운데 홀로 떨어져 자리를 잡은 작은 돌섬.

바다가 있고, 산이 있고, 그리고 작은 돌섬만이 있다. 그 모습은 마치 냉혹하고 치열한 사회에서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우리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나는 그 섬이 좋다. 

그곳은 누구의 방해와 관섭을 받지 않은 곳으로 느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마음의 동요가 일지 않아 쇠약해진 내 영혼을 치유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아무런 생각 없이 한참을 바라보게 된다. 거친 파도에 흔들림 없이 솟은 작은 돌섬을 보고 있노라면 복잡했던 마음이 이내 고요해진다.      


이렇게 묵호항에서 바라 본 돌섬은 외부 세계와 내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린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 잠시나마 복잡하게 뒤엉킨 생각은 대수롭지 않음을 아는 순간이다.

작가의 이전글 행복이 별건가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