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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주 Apr 24. 2024

2024년 드로잉 드로잉 전을 보며....

그림이 내게 말을 걸어온다

드로잉 작가로 참여한 전시이자 나 또한 한 사람의 관람객이었다.

따뜻할 것만 같았고, 계절의 시작인 봄이 마냥 희망적일 거라는 생각과 달리 2024년 봄은 내게 가장 봄 같지 않은 봄을 보내며 드로잉전시를 관람했다.


김선이 작가



삶의 다양한 모습과 표정들이 담겨있다.

할머니와 다정한 손녀.

좋은 작품을 관람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 중 한 사람.

그림을 말하고, 삶을 얘기했던 학창 시절 스승과 제자는 소담하게 마시는 커피에는 웃음이 묻었났고,

아담한 공간에 자신의 취향을 맘껏 담아 정성스레 가꾼 정원에서는 볼거리가 충분했다.

난생처음 새롭고 신기한 맛을 느꼈던 어느 밤.

와인이 있었고, 간결한 음식이 차려졌고, 더불어 화려한 불빛과 행동이 자유로운 이들과 함께였다. 우린 동지라는 이름아래 같은 고민을 했고,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았던 시간은 내가 이 세계에 몸 담고 있었던 사실에 행복했다.

그랬다.

추억이 있었고, 즐거웠고, 그리고 난 그곳에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수영 작가




가끔 바다를 보러 간다.

고요하고 잔잔한 파도는 나를 편안하고 고요함에 이르게 한다.

하지만,

거세게 몰아치는 파도를 보고 있으면 울퉁불퉁한 삶의 장면 장면을 연상케 한다.

한참을 보고 있는다.

그 거센 파도는 젊은 시절 한두 번 가봤던  클럽에서 크게 틀어주었던 음악처럼 들렸다.

삶에,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떻게 내가 듣고 싶은 소림만 듣고 살아갈 수 있을까?

때론 내가 좋아하지 않는 장르의 음악이 흐를지라도 노래 한 곡은 3~4분이면 끝이 난다.

순간은 괴로울지라도 그 시간만큼은 참고 들어줄 수 있을 것 같다.

소음 같은 음악을 듣기가 힘들지라도 너무 거부감을 갖지 말자.


시간이 흐른 후 나의 음악 감상의 폭은 더 확장되어 있을 테니깐....




윤옥례 작가




가로선은 요동치는 나의 마음 같고,

세로선은 가늘고 길게 가슴을 파고드는 빗줄기로 느껴진다.

어릴 적 나의 별명은 울보였다

'또! 울어'라는 소리를 얼마나 들었던지......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까지 슬픈 일이 뭐가 있을까! 싶다. 

대학1학년 때 첫사랑과 헤어지고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 어찌나 울었던지...

청명하고 파랗던 가을 하늘이 왜 그렇게 슬펐던지,

여전히 가을 하늘은 내게 슬프게 다가온다.

그러나 지금도 눈물이 흐른다.

 삶 속에서 나의 의도와 상관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지켜보고 겪어내면서 나는 아팠다.

마치 정주행으로 도로를 잘 달리고 있는 내 차를  갑자기 과속차량이 들이받은 것 같은 충격으로 정신과 육체가 혼미해졌다. 

통증으로 인해 흘리는 눈물은 아니다.

나는 세상을 몰랐고, 사람을 몰랐고 그리고 너무 무지했던 자신에 대한 연민에서 흐르는 눈물이다.




서유경 작가




'원'

내 작업의 소재이기도 하다.

명분을 추구했고,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왔다.

그림을 그릴 때, 색을 쓸 때도 극히 주관적인 해석을 담아서 작업하려 했다.

이젠,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할 필요도 담아내야 할 이유도 없다.

세상은 내 맘과 같지 않다는 것을 이번에도 또 깨달았다.

이 작품을 통해 난 나 스스로가 한계를 정해 두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어쩜, 우주는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넓고 광활하기에 나의 시야를 확장해 줄 것 같은 기대감이 든다.

내가 끝없이 고민해야 할 분야일 것 같다.





이경란 작가




봄이면 어김없이 산천에 꽃이 핀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충분히 살아낸 꽃들은 언제 그랬냐! 잎이 하나둘 떨어져 지고 만다.

사람도 이와 같다.

무수히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다.

만나야 할 사람은 어디서든 어떻게든 만날 테고 떠나야 할 사람은 그 또한 서로의 역할에 충실했기에 미련 없이 보내야 함이 자연의 이치인 듯하다.

이경란 작가의 작품을 보니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법'을 연상시킨다 


 


추연희 작가




나는 꽃의 이름을 일부로 알려고 하지 않는다.

무수히 들어도 기억을 잘하지 못한다.

내 눈을 즐겁게 하고, 그 작은 즐거움들이 모여 나를 행복하게 해 준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기에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꽃이 좋다.

각기 다른 모양과 색으로 자신의 빛을 발하는 꽃과 식물을 보고 있으면 그냥 좋다

별다른 이유를 대고 싶지 않다.


삶을 살다가 길을 잃을 때면 나는 자연을 돌아본다.

자연 속엔 진리가 있다.

해마다 꽃은 피고 지고,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이것은 결코 변하지 않는 진리이자 순리이다.

모든 답은 자연 안에 있기에 길을 잃은 순간 자연을 더 깊이 바라본다.




추경희 작가




카페에 가면 거울 앞에서 습관처럼 셀카를 찍곤 한다.

왜! 였을까?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괜찮다며 보여주려 했던 행동이었는지 모른다.

사실은 괜찮지 않았다.

거울에 보이는 겉모습만 괜찮은 척하고 하고 싶었을 뿐이다.

좋은 의도로 시작된 만남일지도 때론 서로에게 상처를 남기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번 경우도 그러했다.

위의 그림처럼 마치 살점이 파힌 듯이 아팠지만, 태연한 척하고 싶었다.

시간은 사건의 기억을 옅게 만들어 줄 수는 있지만, 내면에 남겨진 상처와 흔적이 순간순간 올라 온다.




박월희 작가




일상에서 '성'을 연상케 하는 소재로 드로잉 한 작품이다'

요즘 유튜브에서 '성'에 관한 주제를 재미있고, 가볍게 다루고 있는 영상이 꽤 많다.

나도 즐거보는 편이다.

시대가 달라졌다.

인간의 본능인 성을 예전과 같은 사고의 틀로 음지에 두고 비밀스럽게 다뤄야 할 부분이 아니다.

밝은 곳에서 가져와 오픈할 때 좀 더 건강한 사회로 나아가지 않을까!

요즘 젊은이들의 개방적인 '성의식'을 보면 시대가 많이 달라짐을 새삼 느낀다.




최경옥 작가



수면 아래 감춰진 나의 무의식 세계를 보는 것 같다.

겉은 고요히 평온한 척하지만, 보이지 않는 나의 내면은 늘 요동치고, 때론 불쑥 올라오는 충동성을 느낀다.

어릴 적부터 인간은, 사람은, 그리고 여자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유교적인 교육을 알게 모르게 늘 받고 자랐다.

엄마는 내게 해도 괜찮다는 말보다 하지 말라는 소리를 수없이 했었다.

그 말은 어찌나 싫었던지.....


묻고 싶다.

우린 과연 모두 선한 동물일까!

내면은 누구도 알 수 없는 악함, 추함, 그리고 때론 폭력성도 갖고 있다.

아닌 척할 뿐...

내 안에 이러한 어둠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이성'이라는 단어를 붙여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사회와 적당한 타협으로 자신의 욕망을 누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타인의 삶을 함부로 말할 자격은 없다.

누구의 삶이 과연 옳은 삶이라고 자신 있게 과연 말할 수 있을까!

혹여나 타인의 험담을 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릴지라도 잠시만 워~워~하기를....!



안현수 작가



드로잉 전에 출품한 나의 작품이다.


들판이든, 강이든 어느 곳에서든 고요하고 평화로운 한 때를 보내고 싶다.



관람객의 모습



이번 드로잉 전에 출품된 작품은 나의 내면에 소용돌이치고 있는 나의 자화상을 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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