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이리 Dec 15. 2023

엄마의 욕심에 끝이 있을까?  

아홉 살 아이의 겨울(2023.12-2024.02)



며칠 전 아이의 초등학교에서 오케스트라 공연을 봤다.


3학년에서 6학년까지 서른 명 가량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한 해 동안 갈고닦은 연주를 보여주는 자리였다. 아이가 피아노를 친지 햇수로 3년이 되어간다. 어렸을 때부터 장르 가리지 않고 노래를 듣더니, 피아노 학원은 시작과 동시에 무난하게 적응했다. 서너 명이서 함께 연주하고 노래도 부르고 율동도 하면서 즐겁게 피아노를 배웠다. 가끔 학원에서 진행하는 작은 연주회에서 참가하며, 피아노에 대한 자신감을 은근히 키워갔다. 운동에서 맛보는 좌절을 음악을 통해 상쇄하라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피아노가 어떻게 오케스트라로 넘어갔는지는 모르지만, 막연하게나마 아이가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면 어떨까 생각했다. 피아노는 경쟁률이 셀 것 같아, 현악기나 관악기 중 하나를 가르치면 되지 않을까 머리를 굴리기도 했다. 바이올린이냐 첼로냐 고민하던 중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학부모를 만났다.


"오케스트라 단원 하는 거 어때요? 아이가 좋아해요?"

"어머! 이거 강추예요. 자기 악기를 애정하는 아이들이 있는데 보기 좋더라고요. 타악기는 악보만 보면 바로 지원할 수 있고요, 특히 금관악기 같은 건 따로 배우지 않아도 선생님이 처음부터 잘 지도해 주세요. 이런 특혜는 우리 학교 밖에 없어요."


오케스트라 입단을 두고 나는 또 생각에 잠긴다. 내년이면 3학년, 오케스트라 활동이 가능한 나이다. 피아노 외에 할 줄 아는 악기가 없어 앞으로 1년 정도 다른 악기를 배운 후 4학년 즈음에나 입단 신청을 해야겠지만, 나는 벌써부터 설레발을 치고 있다.


공연을 보고 난 뒤 "만약 악기를 배운다면 무슨 악기를 하고 싶니?"라고 물었다. 아이는 "가장 큰 악기를 배우고 싶어."라고 대답했다. 아이에게 딱 어울리는 대답이었다. "엄마는 첼로 소리가 좋던데 그건 어떠니?"라고 말하면 "그래. 좋아!"하고 대답하다가 "근데 첼로는 가르치는 데도 별로 없어서 바이올린이 편한 것 같아."라고 고쳐 말하면 바로 "그럼 바이올린"이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사실 아이가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길 원하는지 아닌지도 나는 잘 모른다.


그런데 나는 왜 이 고민을 놓지 못하고 있는 걸까? 준비가 필요 없는 타악기에 지원할까 싶다가도, 선생님이 처음부터 가르쳐 준다는 금관악기를 할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선생님이 아이를 가르치는 장면을 머릿속에 떠올려 보았다. 입으로 불어야 하는 악기인데, 소리가 잘 나지 않는다고 짜증을 내면 어쩌나 생각이 들었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여러 명이 합주하는 과정에서 소리를 지르면 어쩌나, 선생님이나 다른 아이들 앞에서 짜증을 부리면 어쩌나, 결국 오케스트라 단원 중에 괴팍한 아이가 있다는 소문이 나면 어쩌나로 귀결되었다. 오케스트라 단원 학부모들이 순번을 정해 간식도 지원한다는데, 학부모 무리에서 나는 또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하나 걱정도 되었다.


있는 듯 없는 듯 눈에 띄지 않는 아이. 이건 초등학교 입학 전 아이에게 바란 모습이었다. 지금까지 아이는 크게 두드러지지 않고 학교 생활을 하고 있다. 담임 선생님께 피드백을 받은 적도, 같은 반 학부모에게 연락을 받은 적도 없었다. 그런데 나는 이제 '오케스트라'라는 집단에 아이를 넣어도 되는지 고민하고 있다. 일주일에 2시간 함께 연습해야 하는 공간에, 어떤 식으로든 아이가 두드러질 가능성이 많은 공간에.


갑자기 움추러든다.
이 또한 내 욕심이 아닐까?
아이가 원하는 것도 아닌,
내 바람이 먼저인 이 생각이...
나는 이 욕심을 고이 접어 놓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조용한 산만함에 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