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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리 Dec 22. 2023

도둑맞은 집중력

written by 요한 하리




목차를 보고 마지막 부분에 해당하는 “잘못된 ADHD 진단”을 먼저 읽었다. 작가의 한마디 한마디가 뼛속까지 와닿았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작가가 대신해 주는 것 같은 느낌, 그것도 아주 정교하고 세련되게.



이 책은 사회구조적인 이유로 사람들이 점점 집중력을 잃어간다고 주장한다. 스마트폰을 비롯해 인터넷 시스템과 만성 스트레스, 수면 부족 그리고 형편없는 식단까지.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 것은 역시 거대 테크 기업이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트위터, 유튜브 등 디지털 플랫폼은 우리가 오래 이용할수록 수익을 창출한다. 사용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진다. 영상을 추천하는 알고리즘부터 끝없이 생성되는 무한 스크롤 등 우리의 관심을 인터넷 창에 붙잡아 두기 위해 온갖 기술을 개발한다.  


페이스북은 우리가 화면으로 페이스북을 들여다보는 시간만큼 돈을 벌며, 우리가 화면을 내려놓을 때마다 돈을 잃는다. (중략) 페이스북을 오래 들여다볼수록 확실히 광고도 더 많이 보게 된다. 광고주들은 우리의 시선을 얻는 대가로 페이스북에 돈을 지불한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 디지털 디톡스를 실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 역시 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게다가 이 문제에는 거대 테크 기업만 있는 게 아니다. 집중력을 방해하는 요소는 우리의 삶 전체에 걸쳐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그중 몇 가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멀티태스킹은 집중력을 방해한다. 멀티태스킹이 아니라 한 가지 일에 몰입할 수 있어야 한다. 몰입을 위한 조건은 단일한 목표를 설정하고, 자신에게 유의미한 목표여야 하며, 이 목표가 능력의 한계에 가깝지만 이를 벗어나지는 않아야 한다.


둘째, 수면 부족과 스트레스, 값싸고 형편없는 식단은 집중력을 방해한다. 인간은 수면 중에 낮 동안 쌓인 찌꺼기를 청소하며 뇌를 깨끗하게 유지한다. 스트레스는 인간을 각성 상태로 만들어 한 가지에 집중을 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형편없는 식단은 뇌의 기능을 일부 훼손한다.


셋째, 약물은 집중력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 ADHD 진단이 증가하는 이유는 마음껏 뛰어놀지 못하는 환경과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시험 중심의 교육, 뇌 발달에 필요한 영양소 부족, 집중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설탕과 식용색소 가득한 식단 때문이다.



이 일에서 저 일로, 전환이 어려운 아이예요.
관심 없는 주제에 대해서는 전혀 이야기하지 않죠.
오로지 자기 관심사에 대해서만 말하려고 합니다.
일종의 과몰입 상태.
이건 자폐 스펙트럼과 ADHD의 특징이기도 해요.


대여섯 살 때 즈음, 발달센터 선생님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한 가지에만 집중하는 과몰입이 문제가 된다는 요지였다. 작가의 주장에 따르면 집중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몰입의 경험이 중요하다는데, 과연 과몰입은 집중력에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  이 책은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하는 것이 집중력에 도움이 된다고 말하지만, 현대 정신의학은 하나에만 몰입하고 다른 주제로 전환을 못하는 것을 문제로 삼는다.


몰입은 하고 있는 일에 너무 푹 빠진 나머지 모든 자아 감각을 잃은 상태, 시간이 사라진 듯한 상태, 경험 그 자체의 흐름을 탄 상태를 뜻한다. 몰입은 우리가 하는 것 중 가장 깊은 형태의 집중 상태다.


아울러 ADHD 진단에 대한 부분도 흥미로웠다. 이란성쌍둥이와 일란성쌍둥이를 조사해서 얻은 결과로 ADHD에 유전적 영향이 많다는 결과를 얻었지만, 이에 대한 해석에도 오류가 있다. 두 명 다 ADHD로 진단받을 확률이 이란성쌍둥이보다 일란성쌍둥이가 훨씬 높다는 사실을 유전적 원인에서 찾을 수도 있지만, 실제로 일란성쌍둥이가 이란성쌍둥이보다 훨씬 비슷한 행동을 하는 경향성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ADHD가 유전인가 아닌가 논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ADHD에 대해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도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지하자는 의미다. 특히 약물 치료에 대해서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


대다수가 이러한 약물들이 검사를 통해 안전성을 확인받았다고 추측하지만, 제임스는 "뇌 발달에 미치는 장기적 영향에 대해서는 연구가 많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중략) 다른 과학자들을 인터뷰하면서 이 약물들이 긍정적 효과가 놀라울 만큼 제한적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각성제는 반복을 요구하는 작업에서는 어린이의 행동을 개선하지만 학습 능력은 개선하지 못한다.


어쩌면 ADHD 자체도 이 사회가 만든 유행병인지 모른다. 낭만적으로 들리지만, 이 책은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자연과 폭력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안정적인 가정환경, 가공 식품과 거리가 식단 등으로 ADHD 진단이 감소할 수 있다고 믿는 듯 보인다. 물론 작가의 말이 틀릴 수도 있다. 다만 ADHD 아동에게 약물을 처방하는 것이 아닌 이렇게밖에 행동할 수 없는 환경을 바라보고, 이 같은 환경에 변화를 줘야 한다는 태도만큼은 본받고 싶었다. 약물은 증상을 약화시킬 뿐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문화에서 우리는 대체로 아이들의 욕구를 채워주지 않는다. 자유롭게 놀지 못하게 하고, 전자기기 화면으로 소통하는 것 외에는 별로 할 게 없는 집 안에 아이들을 가두며, 우리의 학교 제도는 대개 아이들을 무감각하고 지루하게 한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먹이는 음식은 에너지를 급격히 떨어뜨리고, 약물처럼 아이들을 들뜨게 할 수 있는 첨가제가 들었으며, 아이들에게 필요한 영양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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