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민바람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은 가혹하다.
이 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겉으로 보기에 말 잘 듣고 착해 보이는 이 작가가 ADHD라는 이름을 찾으려 그토록 먼 길을 걸었구나. 진단을 받은 뒤에도 끊임없이 자신에 대해 말하고 누군가의 이해를 받기 위해 힘들었겠구나. 보이지 않는 장애, 이를 테면 ADHD나 자폐 스펙트럼 같은 경우 사회적 인식이 의학적 민감성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느낀다. 작가는 이를 두고 ‘멀쩡해 보여서 잔인한 병’이라고 했다.
ADHD를 고백하는 작가에게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을 비슷했다. “에이, 너는 전혀 안 그래 보여.” 상담센터에서는 이런 말도 들었다. “ADHD가 아니라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때문이에요.” 사람들 대부분 모두 그런 문제를 갖고 있다며, ADHD에 대한 과잉 진단을 지적하기도 했다. 문제는 작가가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데 다른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에너지를 들여야 한다는 점이었다. 겉으로 멀쩡해 보이느라, 속으로 곪아 가는 삶.
ADHD라는 이름을 10년만 일찍 접했더라면 내 몸은 지금보다 훨씬 더 손상되었을 거다. 진로를 택할 때 나에게 어려운 과업과 비교적 쉬운 과업을 구분했을 것이고, 구멍 난 순발력과 주의력을 메우기 위해 일 중독이 되기보다 적절한 치료를 받았을 것이다. 언젠가는 나아지리라 기대하며 소진한 것들을 생각하면 무척 아쉽다. P24
결국 작가는 한국어 강사로 일하다 번아웃을 겪는다. 부족한 사회성에도 재미있는 강의를 짜는 데 사력을 다하지만, 몇 분 전에 쓴 보드마커가 어디에 있는지 잊어버리거나 준비물을 빠뜨려 강사실이나 집으로 간 일도 부지기수였다. 10년을 하다 보면 뭔가 달라지겠지, 하던 기대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영혼까지 짜내는 노력 끝에 작가가 얻은 것은, ADHD와 사회불안장애(사회공포증), 복합 외상후스트레스장애(CPTSD), 선택적 과민증(미소포니아)이라는 4개의 병명이었다. 결국 작가는 강사일을 접은 뒤, 사무직이나 편의점 알바를 포함해 40여 곳에서 단기 노동을 하다가, 지금은 글을 쓰며 살고 있다. ADHD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이면서.
보통 ADHD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이 남과 다른 면모를 갖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더 노력한다. 말하자면 자기를 탈탈 털어서 쓴다.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을 엄격히 감시한다. 의식하지 않은 그 노력 때문에 병은 감추어진다. P56
ADHD 작가가 쓴 책을 몇 권 읽었다. 성인기에 진단받은 사람들의 책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이 자랄 때에는 ADHD라는 진단이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ADHD라는 진단명이 나온 때는 1987년이었다.) ADHD든 자폐 스펙트럼이든, 성인기에 진단을 받는 것은 까다롭다. 성인이 되면서 발달하는 영역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ADHD 성인의 경우 아동기와 비교해 과잉행동과 충동성이 감소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불안이나 우울장애와 같은 질환이 있을 공존할 가능성이 높아, ADHD의 증상이 가려지기도 한다.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는 성인 ADHD의 84%에서 최소 한 가지 이상의 정신질환이 동반되는 경우가 61%, 세 가지 이상이 45% 정도라고 밝혔다. 작가가 ADHD라는 진단을 받기 위해, 8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이유다.
ADHD인의 10%는 치료 없이도 큰 문제없이 생활한다고 한다. 하지만 만일 “왜 이렇게 일상적인 것이 힘들지?”라는 의문을 오랫동안 가져왔다면, 꼭 ‘성인 ADHD’ 전문가를 찾아가 여러 검사를 받아 보자. 병명을 확인하는 일조차 뜻대로 되지 않을 수 있지만, 큰 산을 넘은 뒤에는 치료를 통해 점차 내 뜻대로 되는 일상의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P33
진단을 꼭 받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선뜻 고개를 끄덕이기는 어렵지만, 지금껏 자신을 괴롭힌 문제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진단을 받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약물과 상담도 아마 도움이 될 것이다. 다만, 진단을 받아야 할 상황에 맞닥뜨리기 전에, 먼저 자신을 잘 살피고, 무엇이 힘들고 아픈지 스스로 인지했으면 좋겠다. 그저 맞서 싸우지 않고 피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자신을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했으면 좋겠다. 진단 후에도 삶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작가가 약물 치료 중에도 상담을 받고, 명상과 운동 등의 활동을 하며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노력을 기울인 것처럼.
질환이나 장애, 증후군 등 무엇으로 분류할 것인지에도 모두가 동의하는 답이 없다. 각자 자기 분야의 시선으로 이야기한다. 의사들은 병으로 보고, 어떤 한의사는 병이 아닌 증상일 뿐이라고 하고, 상담가들은 특징이나 현상으로 보기를 바라기도 한다. 누군가는 ADHD가 재능이고 축복이라고 한다. 당사자들도 어떤 관점을 취하느냐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어쨌거나 ADHD인들이 바라는 건 한 가지라고 생각한다. 괴로움보다 편안함에 가까워지는 것. 일상 전투를 ‘일상’으로 바꿔나가는 것. P191
병든 몸이 비정상적인 몸은 아니다.
모든 병이 나을 수 있는 병도 아니고,
병과 함께 사는 삶도 틀린 삶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