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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리 Dec 20. 2024

제정신이라는 착각

written by 필리프 슈테르처




제정신이라는 착각. 제목부터 파격적이다. 


이 책은 망상과 확신에 대해 이야기한다. 단어에 대한 정의를 하자면 망상은 ‘반대되는 증거가 있는데도 변치 않는 확신’이다. 그렇다면 합리적인 확신과 그렇지 않은 망상을 구분하는 게 가능할까? 확신과 망상의 차이는 정상과 비정상의 차이와 비슷하다. 뚜렷한 경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어떤 사람이 명백하고 합리적인 반대 증거가 있음에도 흔들리지 않고 고집스럽게 자신의 확신을 부여잡으면 망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렇다면 ‘명백하고 합리적인’ 증거란 과연 어떤 것일까? P61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하고 판단하는 과정에서 오류를 저지른다. 자신의 확신을 뒷받침하는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확증 편향, 자기 신념과 위배되는 사실이 제시될 때 오히려 신념이 강화되는 역화 효과, 심지어 자신이 의식하지 못한 채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는 맹점 편향 등 인지 왜곡은 빈번하게 일어난다. 논리적 과정을 거친 확신이라도, 이와 대립하는 증거가 나타날 경우 수정이나 변경이 녹록지 않은 이유다. 결국 합리적 확신도 비합리적 확신으로 변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비합리적 확신을 모두 ‘망상’이라 볼 수 있을까?


작가는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든다. 신경과학을 중심으로 철학과 진화론, 유전학, 사회심리학, 인지심리학은 물론 신경정신의학을 넘나들며 확신과 망상의 구분이 불분명한 이유를 제시하고, 인간의 뇌에서 확신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과정을 설명하며, 결과적으로는 정상과 비정상과 같은 이분법적 사고가 가진 한계를 강조한다.  


우리는 인간이 이성적인 존재라 생각하지만, 생각 외로 인간은 비합리적 신념에 빠지기 쉽다. 특히 확증 편향과 같은 현상은 똑똑한 사람에게 더 강하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이 자신의 명제를 그럴듯한 논지로 뒷받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간의 뇌는 지각과 행동에 대한 결정을 내리느라 늘 바쁘기 때문에, 가능하면 간단한 과정을 통해 상황을 인식하고 결과를 도출하려고 한다. 작가의 표현에 빌리자면, ‘빠르고 간소한 휴리스틱’. 인간은 직감적으로 결정을 내리고 의견을 형성한 뒤, 확증 편향을 통해 이를 확신으로 만들어간다.


우리는 지각, 사고, 믿음, 행동 등 여러 면에서 비합리적일 가능성이 있는 존재가 됐다. 다시 말해 인식적 비합리성은 아주 정상적이고 평범한 것이며, 결코 병리학적, 즉 망상적 확신이나 취약한 인간만의 특징이 아니다. 진화적 안경을 쓰고 관찰하면 인식적 비합리성은 ‘버그’가 아니라 ‘특징’이며 오류가 아니라 기능이다. P169  


책에는 망상을 특징으로 하는 조현병에 대한 설명이 종종 등장하는데, 이에 대한 진화론적 설명이 흥미롭다. 가령 빠듯한 자원을 두고 적과 경쟁해야 했던 선조들에게 불신과 편집증적 경향은 생존에 유리했을 것이고, 환시나 환청과 같은 현상도 신 혹은 영과 접촉하는 샤먼의 능력으로 숭배됐을 것이다. 조현병의 특징이 창조성과 관련 있다는 부분도 눈여겨볼 만하다.


조현병에 대한 유전적 프로파일을 지닌 사람이 특히 창조적일 수 있으며, 이것이 선택의 이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창의성은 정의하기 어려운 특성이지만, 대부분은 새로운 방식으로 사고하고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능력을 창조적이라 일컫는다. 대부분의 사람과 다르게 생각하고, 주류에서 벗어나고, 잘 닦아놓은 길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창조성의 전제다. P122


그렇다고 작가가 조현병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조현병은 종종 심한 사고장애를 동반하기 때문에, 명확한 사고를 하지 못하고 생각을 정리하거나 이해할 수 있게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다만 이런 상태를 질병으로 분류하는 것은, 그 사람을 배제하자는 의미가 아니라 조현병이 동반하는 중한 고통과 제한을 인정하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더욱이 조현병이 아니더라도 인간은 모두 비합리적인 확신이나 망상에서 자유롭지 않다. 고로 내가 굳건하게 믿는 확신에 대해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인식은 타인과의 벽을 허문다. 나와 다른 확신을 가진 사람을 이해하기는 힘들겠지만, 적어도 이 사람이 ‘적’이라는 혐오는 사라질 테니까.


이분법은 생각, 믿음, 성적 지향이 다른 사람들을 배제하게 만든다. 자신의 신념과 다른 생각을 하는 모두를 배제하고 보든 것이다. 이분법은 무엇보다 심리 질환자에 대한 낙인을 부추긴다. 그러므로 확신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면 많은 것이 더 간단하게 느껴지지만, 사회에서 더불어 사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P19


작가가 확신과 망상을 다각도로 탐구한 이유는, 우리 사회가 거짓 정보를 바탕으로 비합리적 확신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합리적인 확신을 표방하는 사람들은 비합리적 의견을 신봉하는 사람들을 얕보며, 비합리적 의견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얕본다. 여기에서 누가 합리적인지 비합리적인지는 알 수 없다. 통렬할 만큼 자기비판적인 인식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물론 이조차 완전하지 않다. 어쩌면 '나는 비합리적인 확신이나 망상에 취약하다'는 자기 인식이 더 효과적일지 모른다. 책 제목도 '제정신이라는 착각'. 우리 모두 이 착각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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