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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ttle Blossom Nov 08. 2024

Day Off

나와 만나는 일상


 

 프리랜서로 일을 하고 난 후 나에게 '쉼'의 시간이 다가올 때마다 이상하게 밀려오는 죄책감이 들어 제대로 쉬지 못하는 날들을 보냈다. 남들 다 일하는 시간에 쉬는 시간, 그러니까 자유가 생긴다는 것은 3개월의 법칙처럼 처음에만 좋았지 '쉼'의 시간에는 나도 모르게 여러 가지의 생각에 사로잡혔다. '나'라는 사람은 걱정이 많은 스타일이라 빈틈이 생기는 공백, 침묵, 멈춤을 잘 견디지 못했다. 그 틈을 파고든 걱정이라는 것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쓸데없는 생각의 골짜기로 나를 데려가기 마련이었다. 더 이상 헤어 나올 수 없는 깊고 깊은 곳으로. 그래서 나는 쉬는 날이면 걱정의 고리에 연결되어 제대로 쉬지 못하고 항상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마음 편히 그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항상 쉬는 날이면 마음이 불편했다. 쉼에 대한 부분은 항상 훈련받아야 하는 부분이었다.


'이도 저도 아니게 시간을 쓰지 말고, 쉬는 날이면 아무 걱정 말고 편하게 제대로 쉼을 누려. 제발'


친구랑 통화를 하다가 이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잘 쉬지 못하는 것이 완벽주의 성향이랑 연관이 있는 것 같다는 친구의 말에 공감이 되었다. 일을 더 많이 해야 한다는 강박감도 있었던 것 같고, 마주한 현실에 대한 불안함도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일을 안 하는 것도 아니잖아. 2024년도 상반기는 쉬는 날 없이 달려왔잖아. 해야 할 일을 충분히 해내고 쉬는 쉼이니 누려도 괜찮아. 잘 쉬어야 다음 스텝을 갈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잖아.'


어린아이를 달래는 선생님의 다정한 말투로 내가 나를 다독였다. 쉬는 날이면 형체가 없는 죄책감에 빠져 나를 채찍질했던 과거의 나를 반성했다. 나에게 주어진 '쉼'을 잘 누려보기로 결정했다.


내 방식대로 Day Off를 누릴 거야.

 어제까지 열심히 일을 하고 드디어 쉬는 날이다. 침대에서 딩굴딩굴 거리며 새벽을 맞이했다. 늘 일찍 일어나는 습관 덕분에 눈이 절로 떠진다. '조금 더 자고 싶은데.' 그렇지만 이미 잠에서 깨 버린 나는 벌떡 일어나서 아침을 차려본다. 날이 꽤 추워진 덕분에 내 몸은 따뜻한 음식을 원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계란과 파, 김치, 당근, 홀그레인, 화이트 발사믹 글레이즈가 보인다. 평소에 요리하는 것을 좋아해서 내가 먹을 음식은 스스로 요리를 해서 밥상을 차려서 먹었다. 그걸 꽤 좋아했다. 누군가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는 일도 좋아했다.


'지글지글, 보글보글. 음, 맛있는 냄새.'


계란과 파를 사용해서 몽글한 계란국을 만들었다. 그리고 김치를 볶아서 따뜻한 잡곡밥 위에 올렸다. 많은 반찬은 필요 없이 이렇게 간단하게 아침을 만들어서 먹었다. 그리고 점심에 먹을 당근라페를 만들기로 했다. 당근을 채를 썰어서 소금에 잠시 절여 둔다. 그러면 당근의 식감이 오도독 더 좋아진다. 그리고 적당량의 올리브유와 홀그레인, 화이트 발사믹 글레이즈를 넣어 버무려준다. 레몬이 없어 살짝 아쉬웠지만 샐러드에 잘 어울리는 화이트 발사믹 자체가 시큼한 맛을 내주어서 맛있는 당근라페가 완성이 되었다. 시원하게 먹을 생각에 냉장고에 넣어두기로 한다.


나를 위한 요리가 나를 건강하게 만들어준다. 건강한 음식을 먹기.


바쁘다는 핑계로 흐린 눈 하고 있었던 어질러진 내 방의 상태를 보았다.


'쉬는 날이니깐 청소를 합시다.'


미루고 미루었던 묵은 먼지들과 정리할 옷들을 청소하기로 했다.

엉키고 엉킨 먼지들을 닦아 내다 보면 거기에는 끝이 어딘지 모를 나의 생각들이 묻어 나온다. 당장 없어져도 내 삶에 전혀 지장이 없는 것들. 더 열심을 다해 닦아 낸다.

세상 가득 차 있는 옷장을 열어 입지 않은 옷들을 덜어낸다. 닦아 내고 비우고를 반복한다. 내 머릿속에 엉킨 생각들도 비워낸다. 비워내니 홀가분하다. 창문을 열어 방 안의 공기를 바꾼다. 차가운 바람이 내 방의 온도를 상쾌하게 바꿔주니 감사할 따름이다.


이참에 반려 동물로 키우고 있는 거북이 사육장도 청소하기로 했다. 반려 동물의 이름은 '꼬부기'

꼬부기가 살고 있는 사육장의 바닥재를 새것으로 교체하고 사료 그릇과 물그릇을 깨끗하게 씻어 새로운 사료와 물을 지급을 했다. 보다 쾌적한 환경에서 잘 자라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꼬부기의 흔적이 남아 있는 사육장도 깨끗하게 닦아 냈다. 그런 나를 흘끔흘끔 보고 있는 꼬부기 녀석. 이번엔 너다.

꼬부기를 데려다가 온욕을 시킨다. 따뜻한 물로 꼬부기를 온욕을 시키고 다시 사육장에 넣어줬다. 활발하게 사육장 곳곳을 걸어 다닌다.

오래 함께 하자. 내 거북이


점심에 먹을 사워도우를 사러 집 밖을 나선다. 당근 라페를 듬뿍 올려 먹을 생각을 하니 지금이 행복하다.

빵집으로 가는 길에 하는 산책이 집 밖에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오래간만에 느끼는 여유로움을 즐기기로 한다. 볕 좋은 날을 누리기로 한다. 집 근처에 있는 빵 맛집으로 소문난 빵집에 들러 빵을 샀다. 고소한 빵 냄새가 매장 안에 가득하다. 여러 종류의 빵들이 있었지만 오늘은 사워도우. 큼직하게 썰어주신 빵을 얻었다. 내 손에 들린 빵과 땅콩버터는 한 동안은 나의 미각을 즐겁게 해주는 것들이 된다.

 

나에게 있어서 '쉼'은 나를 유익하게 하는 것에 있는 것 같다. 나를 건강하게 하는 요리, 청소, 반려 동물과의 교감. 산책, 그리고 그런 하루를 기록하는 시간들. 마냥 침대에 누워서 휴식을 취하는 것도 너무 좋고, 이렇게 나를 위한 일들을 하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오늘 오전을 내가 좋아하는 일들로 채우다 보니 삶을 즐겁게 살아갈 용기가 난다.


'역시. 잘 쉬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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