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예술, 특히 사진 예술과 설치 미술 전시는 늘 내 관심밖의 영역이었다. 현대예술은 난해하다는 편견과 더불어 정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예술의 가치라는 다소 편협한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런 나의 생각이 상당 부분 바뀌면서, 과감한 조각 작품이나 설치미술, 영상을 기반으로 하는 미디어 아트, 그리고 사진 예술에 대한 관심이 계속 커지고 있다.
국제갤러리 윤혜정 디렉터의 '나의 사적인 예술가들'을 시작으로 '인생, 예술' 그리고 올해 출간된 '어떤 예술은 사라지지 않는다'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예술 3부작으로 완성된 그의 책들은 1990년대부터 에디터와 큐레이터로 활동하며 문화 예술의 최전선에서 작가가 바라본 현대 예술가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책에서 나에게는 다소 낯선 예술가들을 소개하지만 그들의 예술 작업과 철학, 그리고 삶의 이야기는 충분한 울림을 주며 현대 예술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몇 달 전 우연히 크레디아와 을유문화사가 함께 진행하는 <서촌풍류 - 현대 예술의 거장>이라는 흥미로운 렉처시리즈를 알게 되었다. 시리즈 전체를 다 듣기엔 어려운 주제 같아 보여, 고심 끝에 어떤 예술가를 다루는 지도 모르고 윤혜정 작가님의 강연을 신청해 두었다. 서촌 크레디아클래식클럽 스튜디오 진행된 강연은 공연장 느낌의 분위기 있는 지하 공간에서 진행되는데, 몰입도를 더욱 높여주는 공간이었다. 클래식 공연도 자주 진행되는 것 같아 공연을 보러 한 번 찾아가도 좋을 것 같다.
어두운 공간에서 생각보다 묵직한 작가의 목소리로 시작된 강연은 그동안 내가 현대예술이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고, 거리감마저 느꼈던 이유를 명확하게 알게 해 주었다. 현대예술은 작품을 통해 단순히 아름다움을 표현하기보다는 현대사회의 모순이나 부조리함, 나아가 아름다움 이면에 감춰져 있는 추한 모습까지 작품에 드러낸다. 그래서 사람들은 현대예술 작품을 보고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불편함은 우리가 다른 사유와 경험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중요한 장치이다.
"나는 우리 모두의 악마를 보고 싶다."라고 외쳤던 20세기 후반 미국을 대표하는 사진작가 메이플소프의 정교한 미학과 금기시된 욕망이 담긴, 어제 보았던 흑백 사진들을 한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우리가 생각하는 '아름답다'와 '아름답지 않다'라는 보편적인 이미지를 나 스스로 깰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