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 정예의 친구님들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이라기 보다는 성격이 나쁜 사람이지만, 어쨌든 나도 사람들과 문제없이 잘 지내는 법 정도는 알고 있다. 대체로 시작되는 인간관계란, 그저 덮어놓고 웃다보면 잘 풀리게 마련이다. 새로운 사람을 알고 나면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는 성의가 필요하다. 만나면 성실하게 웃고 꼬박꼬박 인사를 한다. 적당히 안부를 묻고, 적당히 질문에 대답을 하고, 적당히 웃다보면 깜짝 놀랄 정도로 쉽게, '지인'이라는 타이틀을 얻을 수 있다.
획득하게 된 '지인'자격을 유지하는 것은 더 쉽다. 잘 모르는 부분에 대한 얘기는 잘 몰라서,하며 듣고 잘 아는 부분은 잘 모르는 척을 하며 듣는다. 화제에 대한 감상이나 의견을 얘기하는 것보다는 그랬구나, 아, 전혀 몰랐네, 오! 같은 맞장구를 치는 것이 좋다. 그리하여 나란 사람에 대한 타인의 평가는 단순하고 적당하게 되어간다. 요령은 없지만 그저 덧 없이 가벼운 존재로 남길 노력한 덕분인지, 대인관계에 문제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아마도 어딘가에서 내 이름이 나온다면 대부분 아, 그렇지! 그런 사람이 있지, 좋은 사람이야, 라는 말이 나올 것이다. 이제까지 그런 척을 하며 살고 있으니까, 그래야 한다.
타고난 성격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남을 믿지 못하는 나는 타인이 내가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나에게 다가오는 것에 대해 깊고 진한 공포가 있다. 느닷없이 나타난 미지의 존재들이 나와 친하다고 말할때, 내 안에서는 백년에 한 번 있는 세자빈 간택에 견줄만한 치열한 심사중이다. 대부분은 1차에서 탈락한다. 내 마음의 아우성은 더욱 모질고 거세져 모르는 척 할 수 없다. 이 사람 저 사람이 나의 근황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것이 싫다.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내 이름이 오르내리는 상황이 끔찍하다. 게다가, 남의 일로 재미를 찾는 사람들이 대다수인 세상에서, 마음 주는 일은 자주 우스워지게 마련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불특정 다수가 싫은 덕분에, 나는 특정 소수에 집착하는 사람이 되었다. 한 자리에 5인 이상이 모이게 되면 부담스러워서 빠지게 되는 일이 잦아졌다. 그렇게 모여서 놀아봤자, 기억에 남는 것은 별로 없었다. 그저 난 쓸데없이 시간을 쓸데없게 만들며 그곳에 있었을 뿐이었다. 관심과 가쉽으로 쉼없이 나를 소비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나는 마치 중독된 사람처럼 나의 장벽을 뚫고 들어온, 내게 허락된 특정 소수에 열광하게 되었다. 정해진 사람과의 정해진 관계, 제한된 정보의 공유에서 느끼는 안정감에 매료되었다.
아주 작은 울타리 안에서 사는 것이 나쁘지는 않지만, 결국 돌아보면 주위에 사람이 몇 없다. 나의 제한적인 인간관계는 나에게는 만족을 주지만, 나의 가족에게도 만족을 주진 못한다. 내가 만드는 관계의 단점을 알아 버린 나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하게 느끼게 되었지만 이제 와서 어떡하겠어. 중독되어 버렸는데.
나이가 들수록 너그러워 진다는 것은 낭만적인 오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