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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달 Jul 12. 2023

나는 왜 연극을 하는가

직장인 연극배우의 자기 성찰

 어릴 때부터, 아마도 초등학교를 다니기 시작할 무렵부터 나는 내가 커서 배우가 되리란 걸 알고 있었다. 열아홉 살 때부터 서른 살 때까지는 그 생각을 포기하려고 했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그게 내 본성을 거스르는 일이며 언젠가는 무대에 오를 것이란 의식을 갖고 있었다.


 나는 발랄한 성격덕에 친구들이 좀 있었는데 초등학교 전교학생회장 선거 후보에 출마할 정도랄까, 딱 그 정도 인기가 있었다. 전교생이 모인 자리에서 '내가 만약 전교학생회장이 된다면~'으로 시작하는 내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대강당에 울려 퍼지는 느낌이 생경했다.


 학창 시절 내내 ‘자기 생각 말하기 대회’나 ‘영어말하기 대회’ 같은 여러 대회에 나갈 때마다 상을 타오곤 했는데 그것들은 나의 재능이나 재주보다 항상 과대평가됐다는 느낌이 든다. 나는 그저 엄마나 선생님이 써주신 대본을 달달 외워서 읊어 대기만 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사람들 앞에 나서서 발표를 한다거나 말하는 것에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군중의 이목이 집중되고 긴장감이 흐르는 분위기에서 내가 무언가를 한다는 그 자체가 일종의 쾌감 같은 것을 만들어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연극활동을 처음 시작한 것은 고등학생 때다. 그날은 배역 오디션을 하는 날이었다. 연극부 선배들이 배역을 정할 때 외모는 전혀 고려대상이 아니라고 했지만 정작 주인공인 공주의 역할을 맡은 친구는 제일 이쁘고 늘씬한 친구였다. 내가 주인공의 시녀 역할을 하게 된 것은 결코 뚱뚱하고 키가 작았으며 여드름 많은 학생이기 때문은 아닐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슬프게도, 내가 전문연극배우로 꿈을 키워나가기에 외모적인 한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열패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더없이 한심하고 우스꽝스러운 고민이지만 그 당시에는 꽤 진지했다.

 그렇다고 연극부 활동이 나쁜 것은 아니었다. 매달 공연 초대권을 받을 수 있었는데 연극뿐만 아니라 뮤지컬이나 난타 같은 공연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지방에서 학교를 다녔음에도 공연문화생활을 가까이하게 된 것은 행운이라 생각한다.

 연극부 친구들과 고된 연극 연습으로 공연이라는 성과를 이루어 냈을 때의 기쁨도 있었다. 그러나 고등학교 3학년이 된 이후로 여느 학생들이 그렇듯 동아리 활동을 멀리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속에는 여전히 존재하는 일종의 연극 놀이 같은 것이 있었다. 말하자면 상황극 원맨쇼다. 나 자신을 성공한 커리어우먼의 모습으로 만들었다가 금세 비운의 여주인공으로 둔갑시킬 수 있었다. 어제는 미인계 하나로 세상 모든 남자를 유혹할 수 있는 스파이가 되었다가 오늘은 인디아나존스처럼 짜릿한 모험가가 되는 식으로 말이다.  

 

 서른이 넘어 연극을 다시 시작한 동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순전한 야심이다. 멋있어 보이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고 싶은, 유명해지고 싶은 욕구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 서른 남짓이 되면 개인적인 야심을 버리고 타성에 젖은 하루를 살아내기 마련이다. 그런가 하면 조금 더 자기답게 삶을 살아보겠다는 재능 있고 고집 잇는 사람들도 있으니, 연극 배우는 이 부류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직장인 연극배우도 연극에 대한 마음만큼은 진지하다.

 

둘째. 인간다움의 추구다. 연극공연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라면 안다. 눈앞에서 울고 웃고 찡그리며 열연하는 배우들의 섬세한 표정과 몸짓을 보았는가? 챗 GPT가 로스쿨 시험과 의사 면허 시험을 통과하고 논문작성, 작곡, 그림까지 그려준다 하지만 연극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AI가 연극이 탄생했던 기원전 그리스에서부터 2000년 연극사의 모든 작품과 인물 대사를 몽땅 외우고 분석한다 해도 연극을 할 수는 없다. (스토리를 만들어줄 수는 있겠지만 글쎄...) 오래전부터 관객은 그저 객석에 앉아서 무대를 보고 듣기만 한 것이 아니라 배우와 교감하고 연극을 완성하는 일부였다. 배우과 관객이 함께 호흡하는 연극은 어떤 것으로도 대체될 수 없기에 더욱 예술적이다. 인류가 발명한 이 오래된 예술이야말로 AI가 지배하는 세상에서도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최후의 보루가 아닐까.


셋째. 창조적 열망이다. 우리는 창조적인 본능을 거스를 수 없는 존재다. 서너 살부터 누구나 '소꿉장난'을 한다. '소꿉장난'놀이는 '~했다 치고', '~그렇다 치고' 식의 역할놀이였다는 것을 기억하는가. 흉내내기는 남이 되어보기와 같다. 이것이 발전하면 연기이고 연극이 되는 것이다. 연출가 이상우 선생님이 그랬다. 춤은 몸장난. 그림은 물감 장난. 소설은 말장난. 영화는 카메라장난. 연극은 소꿉장난. 그것이 기본이라고.

 

 거창하게 말했지만 내가 연극을 하는 동기는 사실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되었다. 연극을 하다 보니 욕심이 생기고 그것이 생각과 시야를 점차 확장해 나가는 과정에 있을 뿐이다. 내가 연극을 하는 동기들 중에 어떤 게 가장 강력한 것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어떤 것이 가장 따를 만한 것인지는 안다. 얼마 안 되는 연극생활을 돌이켜보건대 내가 연극의 끈을 놓치려고 할 때마다 붙들어준 것은 상상 속에서나마 나의 세계관이 투영된 연극세계를 창조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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