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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성인 ADHD 진단을 받았다.
35살이 되어서 처음으로 찾아간 정신의학과에서 ADHD 상담 의뢰를 하게 된 것은 여동생의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언니는 딱 봐도 ADHD라니까! 어릴 때부터 줄곧 그랬는데 정작 언니는 모르고 있는 거 같아."
2021년 10월, 나는 가족여행을 위해 비행기를 예약했고 아침 비행기라 출발 전날 공항 근처 숙소에서 가족들과 1박을 했다. 나름 준비를 잘했다고 생각하고 이튿날 공항에 갔는데, 그만 실수로 비행기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아... 나 때문에 가족 모두가 여행을 망치게 되었구나.'
어렵사리 현장에서 수소문하여 우여곡절 끝에 당일 항공편을 예매할 수 있었지만 그때의 충격과 금전적인 손실은 꽤 컸다. 여행지에 도착한 시간이 늦어지는 바람에 예정되어 있던 가족 여행 스케줄이 꼬여버린 것은 더말 할 것도 없다.
그리고 그날 여동생의 입에서 나온 말이 ADHD였다.
나에게는 늘 이런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있어왔다. 친구들이나 회사 사람들에게 사과해야 하는 일들이 잦았었고, 반복되는 실수들로 인해 도덕적/인격적인 문제가 있는 게 아닌지 의심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일상의 불편함에도 그것이 뇌의 어떤 부분이 작동이 잘 되지 않는 탓에 기인한 신경발달장애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단지 스스로를 자책하거나, 사회나 세상을 탓하는 것으로 원망하며 보냈던 시간들이 많았다.
ADHD 진단을 받고 난 후 나의 이 몹쓸 병에 대해 알아보고자 관련 서적들을 찾아보았다. 제8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대상을 수상한 정지음 작가의 <젊은 ADHD의 슬픔>을 읽고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그리고 웃었는지 모른다. 꽤 많은 부분에서 동질감을 느꼈고 눈물 나게 간절한 삶의 의지가 전해졌다. 결국은 행복해지겠다는 비장한 결심은 나로 하여금 슬프게도 했다. 반건호 교수의 <나는 왜 집중하지 못하는가>는 정신의학 전문가의 수많은 임상사례와 시각에서 ADHD의 실체를 전해주어 그동안 ADHD에 대해 갖고 있었던 편견이나 오해를 바로 잡을 수 있었다. 풍문으로 들었던 ADHD를 제대로 마주하게 되니, 아는 것 자체만으로도 내 삶을 질적으로 향상할 수 있을 것이라는 용기가 생기기도 했다.
<성인 ADHD의 대처기술 안내서>는 실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는 인지행동치료 기법들을 제시해 준다. 현재 나는 ADHD 약물치료를 멈추고 인지행동교정을 통해 ADHD를 개선해 나가는 중이다.
ADHD는 뇌의 전전두엽의 신경전달물질의 기능 저하로 인해 주의집중 부족, 불필요한 과잉행동, 충동행동을 야기시켜 그로 인해 가정과 학교, 또래관계, 성인이 되어서는 직장, 사회관계 등에서 문제를 겪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ADHD는 스펙트럼 질환이라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크고 여러 가지 다른 정신건강 문제로 덮여 있는 경우가 있어 진단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나의 경우는 전산화주의력검사(CAT)에서 몇 가지의 영역에서 저하 수준이 나왔는데 주의력결핍 우세형이라 할 수 있다. 어렸을 때부터 물건을 자주 잃어버리고 부주의한 실수가 잦았다. 준비물이나 교과서를 못 챙겨 온 날이 다반사였고 심지어 시험지 뒷장을 빼먹거나 답안지를 바꿔 내는 일도 있었다. 그럼에도 학교 성적은 상위권을 유지했는데 종종 지적으로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성적이 좋은 학생들을 관대하게 대하는 특성 때문에 ADHD를 자각하지 못하고, 그로 인해 진단이 늦어지게 된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상담한 정신의학과 원장님께서 약물치료를 권했을 땐, 거부감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제가 약을 먹을 정도로 심각한가요?!"
소소한 실수들로 직장과 일상생활에서 불편함이 있어왔지만 그것이 약물복용을 할 정도로 나의 전신건강이 나쁜 것인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현재 ADHD치료제로 사용되는 약물을 복용하면 뇌 기능을 개선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ADHD는 감기나 다른 질환처럼 약을 먹어서 완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약물을 사용하면서 행동 문제를 최소화하고 개인의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기에 치료기간을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약물치료를 받아도 ADHD 특성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기도 하다. 나는 일주일 동안 고심한 끝에 약물치료를 하기로 결심했고 충추신경자극제인 메틸페니데이트(제품명 콘서타)를 처방받았다.
-다음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