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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dal Apr 16. 2021

종로에서


어릴 때부터 친구를 만나거나 혼자 시간을 보낼 때면 습관적으로 종로를 찾았다. 개인적으로 강남역이나 홍대입구에서와 달리 심리적인 안정감이 느껴졌다. 적당히 붐비고 적당히 투박한 그곳의 모습들이 오랜 시간 눈에 익은 것이다. 중학교  겨울이 되면 학교에서 영화 단체관람을 했는데  장소가 이제는 폐관한 씨네코아였다. 해리포터와 반지의 제왕이 개봉하던 그때를 떠올리면 왠지 온기가 느껴진다. 영화를 좋아했던 나는 서울극장을 자주 찾았다. 방학이면 종로에 있는 어학원을 수강했는데 가끔 수업 대신 극장을 찾아 조조할인 관람을 했다. 지금은 모든 곳이 힘들다고 해도 종로극장들은 이미 그때부터 대형 멀티플렉스에 밀려 고전하던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매번 익숙한 그곳에 발길이 닿았다. 극장 티켓도 지금의 영수증 형태가 아닌 모두 고유의 디자인을 갖고 있어 그것들을 수집하기도 했다.  


그러고서 대형서점을 들르거나 아예 방향을 틀어 인사동을 지나 삼청동을 향하기도 했다. 특히 혼자일 때면 매운 라면집을 그냥 지나치기 어려웠다. 라면을 먹고 근처 도서관을 들렀다가 삼청동 길을 걷는 것이 주요 코스였지만 사실 봄과 가을의 삼청동은 적당히 붐빈다고 말하기 어렵다. 가끔은 홍대입구 9번 출구의 인파를 연상시키기도 했다. 덕수궁길도 빼놓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좋아하는 곳이긴 하지만 버스를 한 번 더 타야 하는 부암동은 가끔 찾아갔다.   


매년 크리스마스에도 아웃백 종로점과 스타벅스가 마치 패키지 코스처럼 짜여 있었다. 당시에 대유행이었던 패밀리 레스토랑이나 맛있는 커피도 좋았지만 반짝이는 트리와 거리의 캐롤이 그 날들을 빛내주었다.


쌈지길도 D타워도 없는 조금은 노후했던 그곳. 분명히 추웠는데 떠올리면 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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