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undal Oct 24. 2021

감사합니다!

회사라는 곳을 다니면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원 없이 쓰게 되었지만 모순적이게도 진심으로 감사했던 일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사실 타 부서 사람들과 가벼운 내용을 주고받은 전화 연락의 시작과 끝에도 늘 붙어 있는 습관성 감사일 때가 많았다. 시간이 흐르면 잊히는 기억도 있지만 오히려 또렷해지는 것들이 있는데 고마움에 대한 것 역시 그렇다. 타인에게 큰 고마움을 느끼게 되는 일도, 반대로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는 일도 쉽지 않다는 것이 점차 몸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1. 혈압이 높은 아빠가 주기적으로 다니던 동네 작은 의원이 있었다. 스카이 캐슬 예서가 그토록 진학을 희망했던 의대를 졸업 후, 아버지의 병원을 물려받아 운영하는 분이라 들었다. 기자 같기도 하고 의사 같기도 한 전형적인 생김에 안경을 쓴 중년의 아저씨로 기억하는데 내가 그분을 직접 마주하게 된 건 오래전 그날, 우리 집에서였다. 통풍에 걸린 아빠의 발을 주물럭거리는 낯선 아저씨가 누구인지 묻는 내게 그 의사 선생님이라고 했다. 사실 당시엔 어린 마음에 초라했던 집 내부가 남에게 보이는 것이 더 신경 쓰였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 시절 내 나이의 두 배가 넘도록 지나버린 지금에서 ‘특별했던 일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딱히 방문 진료를 하는 곳도 아니었고 평범한 동네 고객 중 한 명이었을 아빠를 위해 우리 집을 찾았던 것이니까.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운영 중인 병원에 지금은 엄마가 다니고 있는데, 이제 그분도 연세가 많이 높아졌을 것이다.  


2. 잠시 구성작가 일을 했을 , 원하던 프로그램에 입성할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하지만 새로운 인력이 급히 필요했던  팀에서는 바로 투입할  있는 인력을 원했고, 나는 당시 재직 중인 곳이 있었다. 수십  고민 끝에 떨리는 마음으로 담당 PD에게  사정을 말했다. 다행히  팀의 업무 시간이 겹치지는 않을  같으니 인수인계에 문제가 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요지의 말은 단칼에 거절당했다. 답답한 마음을 안고 연차가 높은 선배 작가님에게 연락했다. 사실 싹싹하지 못한  성격에, 카리스마 있는  선배님과 그다지 친분을 쌓진 못했다고 생각했는데 얼마나 급했는지 연락을 드린 것이다. 작가님은  얘기를 듣고  바닥에서  달씩 유예 기간을 두고 이직할  있는 곳이 얼마나 되냐며 대신 역정을 내주셨고(?) 급기야 본인이 담당 PD 대화를 나눌 테니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했다. 천군만마를 얻은 듯한 기분이 들면서도 소심하고  소심했던 나는 결국 연락처를 전달하지 않았고, 결국  직장을 포기했다. 사실 원칙적으로는 담당 PD 행동에 틀린 부분이 없어  이상  부분을 원망하거나 따지고 싶지 않다. 다만 그때 당시 선배 작가님의 모습은 장그래에게 풀칠을 시키지 말라며   상사를 다그치는  과장님과 비슷했다. 나는  이후 후배의 일에 대신 나서 주겠다는 상사를 어디서도   없었다.


살면서 이런 일들이 다행히도 달랑 두 개는 아니었다. 어쨌든 고마움을 느끼고 나서 그걸 표현하는 것 역시 중요할 텐데, 주인에게 전달되지 못한 채 내 안에 맴도는 감정들이 많아진다. 언급된 의사 선생님의 경우 그때 그 일을 기억하기는커녕 나의 존재조차 알지 못할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혹시 귀가 간지럽지는 않으실지.

작가의 이전글 오직 세 사람, 아니 두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