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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dal Oct 24. 2021

청개구리의 간병기<3>

원래부터 늦게 잠드는 경향은 있었지만, 직장을 그만둔 이후 바이오 리듬이 급격히 무너졌다. 수면 시간은 조금씩 미뤄지다 어느덧 해가  때에 가까워졌고, 점심시간이 지나 깨어나는 것에 점점 자괴감이 들었다. 이미 바뀌어버린 밤낮을 되돌리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수시로 계속되었던 엄마의 잔심부름에 응하기 위해 졸린 눈을 비비며 새벽부터 깨어 있는 일이 계속되었고 그러다   한시가 넘어가면 버티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 뜻밖의 계기를 통해 나의 밤낮이 바로 잡히게 됐다.


생활 유지 정도로 설렁설렁 임했던 살림에는 보다 적극적으로 임하게 되었다. 꽃게탕 끓이기, 나물 무치는 법 등을 검색해 가며 집밥 꼬부기로 거듭나는 중이다. 주부들이 쉴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것에 공감하게 될 만큼 바쁜 순간도 있었다. 엄마가 지금보다 회복이 덜 되었을 때 우울한 마음으로 정신없이 설거지를 하고 있던 날, 문득 개수대에 비친 작은 쌍무지개 같은 것이 눈길을 끌었다. 그것의 정체가 무엇이든, 내게 미래에 대한 희망의 증거가 되어 달라 말하고 싶었다.


엄마뿐 아니라 나도 나이가 들어가고, 10년 전 새 아파트에 입주할 당시 들여왔던 가전제품들도 점차 병이 들어간다. 이미 한 두 번쯤 수리를 마쳤거나 아예 생을 다한 것들도 있다. 감정 과잉인지 그런 식으로 오랜 세월 뒤에 집을 떠나는(?) 물건들에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바깥세상만큼의 급속한 변화는 아닐지라도, 이곳에서의 조용하고 느린 변화에 가끔 막막하고 서운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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