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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dal Oct 24. 2021

아빠

몇 년 전, 지금은 없어졌을지 모를 MBC 구사옥에 작가 면접을 보러 갔다. 나를 인터뷰했던 담당 PD는 ‘이 일은 그런 일이 아닌데...’ 하며 여성스러운 원피스 복장의 나를 맘에 들지 않아 했다. 뭐, 옷은 핑계일지도 모르지만. 어차피 연락이 오지 않겠구나 라는 사실을 진작에 깨닫고 무작정 여의도를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마침 식사 시간이었는지 카페에서 직장인들 틈에 끼어 커피를 마신 후 정처 없이 걷다, 예전에 아빠가 오래 재직하면서 마음에 들어 했던 그 직장 건물을 마주하게 되었다. 기억은 마치 마인드 맵과 같아서 우연히 그 건물을 보게 된 순간, 그 시절의 아빠와 거의 아기에 가까웠던 나 그리고 당시에 살던 집에 대한 기억들을 모두 순식간에 불러왔다. 아빠와 엄마, 나의 봄 소풍 장소 같던 한강을 지날 때도 그랬다.


내가 중학교를 다닐 때는 이미 모든 학교에서 급식을 시행했을 때인데, 나의 모교는 특이하게 도시락 제도(?)를 운영했다. 그때 내 도시락을 담당했던 건 사실 엄마가 아닌 아빠였다. 작은 사각 도시락통에는 쌀밥이 눌러 담겨 있었고 반찬 통에는 주로 어묵볶음이나 달걀말이 같은 것들이 들어 있었다. 지금과 같은 양성평등의 시대보다는 조금 일렀던 때에, 사실 어리기도 했던 나에게 조차 아빠의 그런 모습들이 조금은 낯설었던 탓인지 친구들에게 굳이 “이거 우리 아빠가 싸 준 도시락이야.”라는 말을 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지금이라면 말할 수 있을 텐데. 자랑스러웠던 우리 아빠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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