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하지 못해 미안해
원래부터 쿨한 성격은 아니었다. 그래서 무한도전이 13년 만에 종영한다고 했을 때 의미 없는 “안돼”를 몇 번이나 내뱉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이별의 순간이 예정대로 다가오자 나의 마지막 보루는 곧 두 번째 시즌으로 돌아온다고 했던 그 한마디였다. 지금은 사람들에게 말해도 믿을 것 같지 않은 신기루 같은 내용이 되었지만 분명히 그런 기사들을 읽은 기억이 있다. 하지만 한 해가 훌쩍 지나도록 원하던 소식은 오지 않았고, 어느 영화의 대사처럼 “다시 돌아온다고 했잖아요.”를 되뇌고 있던 어느 날 <놀면 뭐하니>가 찾아왔다.
<놀면 뭐하니>의 중심에서 ‘무한도전’을 외치다
프로그램의 모든 요소를 배제한 채 유재석과 조세호 그리고 김태호 PD라는 키워드만 되새김질하며 무도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놀면 뭐하니의 초창기 포맷이었던 ‘조의 아파트’를 시작으로, 기다리는 심정으로 몇 달을 참고 지켜봐도 무도의 흔적 같은 건 없었다. 아. 이건 그냥 유느님과 김태호 PD의 새로운 프로그램이란 사실을 참 빨리도 깨닫기 시작할 무렵 라면을 끓이고 닭을 튀기던 유느님 곁으로 명수와 준하 그리고 하하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쿨하지 못해 미안한 사람답게 한 줄기의 기대감이 다시 샘솟기 시작했지만 그것도 잠시. 왜일까. 토요일 저녁이면 자동적으로 무한도전을 고정해두거나 다시 보기를 했던 것과 달리 놀면 뭐하니에는 그만큼의 애정이 가진 않았다. 사실 이런 흐름은 무도의 기존 멤버 두 명이 고정으로 합류한 최근까지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그냥 단순하게 말하면 프로그램에 큰 재미를 느끼지 못한 것 일수도 있다. 그냥 내 취향이다.
무한도전, 한번 더 이별
이 정도면 집착이라 생각하겠지만 사실 얼마 전까지도 마음 한 구석엔 무한도전의 부활에 대한 기대감을 전혀 버리진 않았다. 단 이제는 놀면 뭐하니라는 프로그램 과는 무관하게, 언제 어디서든 어떻게든. 그러다 지난겨울, 김태호 PD가 퇴사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심지어 연말 시상식에서 처음 보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고별인사를 전하는 태호 PD를 보며 정말 끝이란 걸 직감했다. 뭐 이미 그랬을 수도 있겠다. 사실 종영한 지도 이미 몇 해가 지난 TV 프로그램을 얘기하며 정말 끝이라는 둥 한번 더 이별이라는 둥의 표현이 읽기에 따라 오글거릴 수도 있지만 무한도전을 볼 수 있던 그 시간이 어지간한 친구보다 좋았던 나로선 진심이다. 이제는 깨방정 웃음 한 편에 언뜻 수심 비슷한 것이 보이는 유느님과 아이 셋의 아빠가 된 막내 하하 그리고 더는 추격적 같은 건 기대해 볼 수 없게 된 큰형들과 참여조차 불투명한 다른 멤버들까지. 무엇보다 이미 예전부터 평균 이하의 모습이 아닌 그들이지만 그냥 한 번쯤은 다시 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내가 너무 좋아했던 프로그램에 대한 미련을 접을 때가 된 것 같다. 그리고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가지 치듯 여기저기 걸려있던 기억들. 예를 들어 무한도전 달력이 걸려있던 내 방의 지난 모습 같은, 그때 TV를 보고 있던 내 등 뒤에 흐르던 추억들까지 고이 접어야 할 시간이 되었다. 20대, 토요일이란 시간을 공유한 나의 무한도전. 떠난다면 보내드리리 뜨겁게 뜨겁게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