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말스런 여자 Jan 22. 2022

22년 1월이 피워 낸 꽃들

                김종영 미술관 풍경


1. 2일


2022.1.2일 이틀  날이다. 소 해의 마지막 날부터 쑤셔대는 두통은 호랑이 해 첫날부터 머리를 짓누르더니, 오늘 아침은 다행히 살 것 같다. 사람이 이렇게 통증만 사라져도 몸과 마음이 이리 거뜬한데, 살다 보면 찾아오는 우여곡절의 사연들은 내 임의대로 할 수 있는 선택사항이 아니어서 종종 무력감을 느낀다.

간밤 꿈에도 호랑이 해에 힘찬 호랭이 기운은 느껴보지도 못하고 70살돼가니 까불지 말라는 꿈의 상징만을 보았다.


 난  꿈에 남자아이가 되어 식당에서 의자를 들고 덤벙되다 넘어져 구석에서 울고 있었다.

너는 호랭이처럼 날래고 달리고 싶은 마음이야 가득하겠지만, 육신의 한계를 잊지 말라는 새해의 메시지다. 그래도 나를 넘보는 온갖 불청객들은 호랭이나 물어가게  하고, 올해도 여전히 나를 들여다보고 분석하며 남은 363일도 울고 웃으며 살아가겠지. 


1.13일


오늘도 참 춥다. 그래도 겨울 맛이 묻어나는 톡 쏘는 듯한 차가운 촉감도 나쁘진 않다. 어젠 그 추운 날  혼자 미술 전시관을 찾았다. 조용한 시간을 갖고 싶어 일부러 추운 날을 택했다. 추우면 사람들이 덜 움직일까 하여. 이젠 제일 만만한 ㄴㅍ도 서로 주중에 같이 시간 내기 어려우니 혼자 움직였다. 그런데 허탕만 치고 돌아왔다. 내가 보고자 했던 그 작가의 전시 일정이 다 끝났단다. 내  머리에 입력된 정보는 나의 왜곡된 오류였던가? ㄴㅍ이랑 같이 갔더라면 분명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내 대신 일정, 시간 다 체크했을 터. 덤벙대는 나를 보며 그래, 살아가자면 부부가 티격태격이야 하겠지만, 이런 일을 당하면  이기적이지만 서로의 존재의 필요성이 매번 느껴다.


역시  짐작대로 그 매서운 추운 날씨 때문인지 인적 없는 한가로운  전시장에서  뜻하지 않게 다른 작가의 한 시대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위대한 작품들을 둘러봤다. 잠시 해체된  나를 어버린 시간들을 통해 얼음처럼 차가워  맑은 이성은 살아나고 가슴은 훈훈하게 덮여지는 허탕이 안겨준 선물이다.


1.15


내일88년생 큰 아들 생일인데 오늘  가족들이 모인다. 이  애미는 미역국 하나 안 끊이고 탱자탱자 배 깔고 누워 카톡만 두들긴다. 언젠가부터 아들이 자기 생일은 자기가 준비할 테니 엄만 신경 쓰지 말라고. 하여, 오늘도 본인이 다 준비하고, 음식들도 새벽이나 점심때 도착되도록  했단다. 회사 근처에서 분가하여 살고 있는 작은 녀석은 케이크와 술만 들고 점심때 온단다.


코로나만 희한한 게 아니고 우리 집 살아가는 풍경도 그런 것 같다. 난 뭐 이런들 어떠리, 저런들 어떠리, 지들 하자는 대로 하면 되지 하고 받아들인다. 사실 애미가 미역국  하나  안 끓여주는 차가운 면도 있긴 하지만, 정작 아이들은 미역국은 손도 안대니  필요 이상으로 억지 춘향이 노릇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크리스마스 때는 작은 아이 집에 가서 보냈다. 혼자 사는 남자 집이지만 깔끔하니 정리됐다.

싱크대와 전기레인지는 반짝박짝. 분리수거통까지 완전 깔끔. 먹고 난 뒤에는 금방 청소기 돌리는 민첩함도 좋아 보였다. 그런데 웃기는 게 위스키를 혼자서 홀짝홀짝 마시고 다. 그래서 나도 발베닌지 뭔지 그 술 좋다고 했더니 연말 집에서의 모임 때도 가져왔다. 내가 웃긴다는 건 아니, 술을 가져는 왔는데 먹고 남은 걸 이 녀석은 다시 가져가더라. 이거 비싼 술이다고.


거참, 내 정서로는 디게 웃기는 거였, 가져왔다가  다시  가져간다는 게. 그렇지만 지가 그러면 그러는 거지! 하고 애교로 봐줄만하다.

어젠 가족 카톡방에 큰 녀석이 지 동생에게 "너 그 술 다시 가져와." 하고 올렸다. 또 답은 다른 술 가져갈게 하고 올라왔다. 그 카톡을 보며, 난 속으로 아마 오늘도 마시고 남으면 또 싸들고 가겠지? 하며 피식 웃었다.


 그런데 또 오늘은 남은 술을 안 가져간단다. 나야 그러든지 말든지 이지만 그런 생각이 든다. 처음에 내가 그런 걸  왜 가져가느냐고 한마디라도 했더라면, 작은 애는 아마 그 술을 가져가는 행동을 금방 멈추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고. 인간은 누가 옆에서 뭐라 하면 자신이 옳다는 것을 인정받기 위해 자신의 신념이나 생각을 바꾸는 게 힘든  같다고. 별거 아닌 소소한 일상이었지만 잠깐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1. 21일

오늘 출근길엔 아침부터 웬 꼬마 여자아이가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초교 저학년쯤 보이는데 혼자 걷는 게 눈에 잡힌다. 아침시간에, 보호자도 없이 아이가 걷는 모습만도 눈에 띄겠지만, 거기에 하나 더 추가된다. 아이는 걷는 게 아니라 춤을 추는 듯하다.


춤과 걸음!

춤은 일정 공간에서 온몸이 리듬을 타며 그 언저리에서 머물며 곡선의 느낌이 드는 아름다운 몸짓의 동작이라면, 걸음은 경계선이 없이 거의 두 다리만을 움직이며 머무름 없이 앞으로만 가는 뻣뻣한 느낌이 드는 동작이다. 그런데 이 추운 아침에 예쁜 핑크빛 외투에 핑크색 부츠를 신고 춤추듯 리듬을 타며  걷는 아이에게서 역동적인 에너지와 즐거움이 온몸에서 쏟아져 나온다. 그저 시커먼 패션에 리듬감 없이, 즉 생동감 없이 걷는 어른들의 모습 대조를 이룬다.


그래, 인생이란 가끔씩이라도 저렇게 리듬과 활력이 삶에서 묻어날 때 삶의 메마름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신도 잘 알지 못하는 목표를 향해 앞으로만 가는 '걸음 같은 삶'에서 가끔은 정지된 듯한 시간 속에서 반짝반짝 삶에 윤기를 더해 줄 '춤 같은 자리'는 우리가 애써 만들지 않으면 그저 와주지는 않겠지.


            전시돤 작품 중 자화상(김종영)

작가의 이전글 못다 부른 노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