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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픈H Aug 01. 2020

슬픈H의 감성매매일지 (7월 31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LG화학이 양봉으로 시작했다. 2분기 전기차 배터리 호실적에 힘입어 5천억 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기록한 거다.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어닝 서프라이즈다. 요즘 같은 시기 이 정도 성과를 낸 회사는 흔치 않다. 전날 저점에서 다시 매수한 게 신의 한 수였다.

잘 나가는 LG화학에 비해 엘앤에프는 신통치 않았다. LG화학의 호성적에도 불구하고 금세 음봉으로 전환했다. 예정에 없던 일이다. 진득하니 기다리기엔 기회비용이 아깝다. 얼마 되지 않는 수익이라도 지켜야지. 약익절했다.

9시 15분, 살짝 절던 LG화학이 날아가기 시작한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운전 실력이 기가 막히다. 장초에 실적 발표 소식을 듣고 매수한 개미들 상당수가 나가떨어졌다. 한 주에 50만 원이 넘는 대형 종목이 이렇게 무섭게 오르는 건 처음 본다. 여차하면 상승 VI까지 볼 기세다. 이렇게 물이 늘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한다. 지지부진한 웹젠을 팔고 LG화학을 추매했다. 전 재산의 반이다. 어제 모나미로 너무 많이 잃었다. 이젠 이판사판이다. 어려울 때일수록 과감하게 투자해야 한다.

LG화학에 정신이 팔려 엘앤에프를 못 봤다. 거짓말처럼 슈팅 중이다. LG화학도 추월할 기세다. 공포에 팔아버린 나 자신이 한심하다. 지금 들어가기엔 너무 늦은 걸까? 아니,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제일 빠른 법이다. 마침 전고점을 뚫었으니 물린 사람도 없다. 성간우주를 탐험 중인 보이저2호처럼, 엘앤에프도 미지의 영역으로 나아갈 거다. 이 모험은 재밌을 게 틀림없다.

악수였다. 사자마자 떨구기 시작한다. 제길, 어제부터 계속 이런 식으로 잃고 있다. 하지만 조금 기다려보기로 했다. 보아하니 LG화학은 오늘 떨굴 생각이 없다. 엘앤에프도 한 번은 치고 올라갈 거다.

직장 동료 D가 수젠텍을 추천했다. 그는 이 종목으로 대박이 났다. 며칠 전부터 들고 있었으니, 지금 수익률이 50%를 넘겼을 거다. 수젠텍은 2연상을 바라보고 있다. 과연 오늘도 상한가를 갈까? 반신반의했지만 D는 아직 늦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진단키트주 전문가다. 한 번 믿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51000원 매물 벽이 너무 높다. 계속 시도하지만 허들을 넘지 못한다. 50500원에 매수한 나는 피가 마른다. 마침 엘앤에프가 다시 오른다. 차라리 이 돈으로 엘앤에프 평단을 낮추는 게 낫지 않을까? 엘앤에프의 큰형님 격인 천보는 상한가에 근접했다. 동생인 엘앤에프도 따라갈 거다.

수젠텍을 털고 엘앤에프에 들어가자 엘앤에프는 떨구고, 수젠텍은 상한가를 찍었다. 아, 뭘 한 거지. 너무 아프다. 어제 모나미로 크게 잃었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누굴 탓할 수도 없으니 더 답답하다.

오늘도 마이너스로 마감했다. LG화학을 팔면 큰 수익을 남길 수 있었지만 꾹 참았다. 평소 같으면 없애버렸을 엘앤에프도 손절하지 않았다. 오랜 횡보 끝에 다시 쏘기 시작하는데, 세력이 이 정도로 멈출 리 없다. 밤새 장이 좋으면 월요일도 갈 거다. 무엇보다 오늘은 멍청한 짓을 두 번이나 했다. 스스로 내린 선택을 좀 더 존중할 필요가 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그것은 내 지갑을 가볍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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