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이 돌아온 산을 상상하다
지난 6월 30일, '이동시'에서 기획·진행하는 강연·대담 시리즈 '환상학교'의 4번째 프로그램인 '야생이 돌아온다'라는 강연을 들었다.(진행: 정혜윤 PD, 강연 대담: 김산하 생태학자, 박수용 자연문학가) '활생 Rewilding'이 주제였다. 재야생화라고도 불리는 활생은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를 중심으로 자연이 자발적으로 새로이 생성하는 야생에의 시도이다. 이로써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재설정하고자 한다.
활생의 예로는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에 늑대가 재도입되고 생긴 변화들이다.
1800년대 미국인들이 목축을 시작하면서 가축을 잡아먹는 늑대를 사냥하기 시작하여 그 수가 크게 줄었다. 1926년에는 옐로스톤 지역 모든 늑대가 사살됐다. 최상위 포식자가 사라지면서 초식동물 수는 급증했고 초식동물들이 식생을 모조리 뜯어먹어 생태계의 균형이 흔들렸다.
심각성을 인지한 환경단체들은 캐나다에서 잡은 늑대 14마리를 옐로스톤 국립공원에 방생했다. 상황은 빠르게 변했다. 초식동물 특히 사슴들의 개체수가 줄은 것은 물론 계속 사슴에게 뜯어 먹혀 자라지 못했던 강변 나무 중 일부는 6년 사이에 키가 5배나 자랐다. 씨앗과 묘목의 생존율이 높아졌고 계곡에는 사시나무, 버드나무, 미루나무들이 자라기 시작했다. 다시 자란 나무의 숲에는 노래참새, 미국초록개고마리, 아메리카솔새, 버드나무긴꼬리딱새 등의 개체수가 증가했다. 강변의 숲이 재생되며 비버와 들소의 증가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늑대가 돌아오고 1년이 지난 후인 1996년부터 2009년 사이에 비버의 군집이 하나에서 열두 개로 증가했다. 야생의 건축가 비버가 만든 댐 덕분에 수달, 사향쥐, 물고기, 파충류, 곤충의 서식지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늑대들로 인해 사슴, 영양의 개체수가 준 후에는 토양의 질소가 약 4분의 1 가량 감소했다. 이는 그 토양에 자라는 식물의 종과 수가 다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상위 포식자와 핵심 종이 토양의 조성까지 변화시켜 환경을 재건한 것이다.
강연에서는 우리나라에서의 활생을 상상해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한국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는?
호랑이! 남한에서는 멸종된 호랑이.
다큐멘터리스트, 자연문학가로 활동하며 국제 NGO인 '시베리아호랑이보호협회STPS'를 설립하여 시베리아 호랑이 보호 및 연구 활동에 힘쓰고 있는 박수용 작가가 호랑이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다. 호랑이가 등장하는 동화가 아닌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는 야생 호랑이 이야기를 듣는 것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흥미진진했다. 강의 시작 무렵 그는 물었다. 산에 갔다가 등골이 오싹해진 경험이 있는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몰라 의아했다. 그는 주인이 있는 산에 가면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그리고 호랑이와 마주쳤던 순간을 말했다. 움직이기는커녕 숨을 쉴 수조차 없을 만큼 압도되던 그 순간. 내가 이제까지 다녔던 산은 주인이 떠난 텅 빈 산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한국에도 호랑이가 살 수 있을까? 통일이 되어 러시아 라조 자연보호구에 있는 시베리아 호랑이들이 북한을 거쳐 남한으로 내려온다면? 우선은 생태 통로가 확보되어야 한다. 강연에서 김산하 생태학자는, 생태통로라는 것은 이쪽에서 출발해서 저쪽에 도착하는, 양쪽 끝에 도달 가능한 서식지가 전제되어야만 성립될 수 있는 개념인데 끝없이 통로만 이어져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문제 지점을 짚었다. 그러면 남한의 호랑이 서식지는 어디가 될 수 있을까? 지역마다 다르지만 김수용 작가의『시베리아의 위대한 영혼』에 따르면 시베리아 암호랑이의 영역은 440~450 km² 이상, 수호랑이의 영역은 암호랑이의 네 배에 달한다고 한다. 북한과 가까운 설악산국립공원 면적은 398.237 km². 택도 없다. 산과 산이 연결되어야 한다. 그 사이엔 숱한 사유지가 있을 테니 쉽지 않을 것이다. 야생과 문명 사이의 경계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동안 인간은 너무 많은 야생을 침범했고 눈앞의 이익만을 좇으며 생태를 파괴했다. 많은 이들이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지역'발전', 경제'발전'은 여전히 해야 하는 것으로 남아있다.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 가덕도 신공항 건설, 새만금 신공항 건설 등의 사업이 떠오른다.
강연 말미에 정혜윤 PD는 “가능성이 벌어지는 곳에 소속감을 느끼고 싶다”는 말을 했다. 강연에 모인 사람들 모두 같은 마음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활생이 일어나는 이 땅을 꿈꾸며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발췌 및 참고>
조지 몽비오, 『활생』, 김산하 옮김, 위고, 2020.
임병선, 「늑대 복원 25년... 옐로스톤 국립공원은 어떻게 변했을까?」, 『뉴스펭귄』, 20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