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탐방기
내 취미는 블로그 탐방이다. 그냥 아무 블로그는 아니고 누군가 자신의 취미를 꾸준히 기록해놓은 취미 블로그만 찾아다닌다. 세상엔 수많은 취미들이 있고, 사람들은 자신의 취미생활을 기록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그 기록을 보는 것을 좋아하고, 기록을 모두 보고 난 뒤엔 그 블로그 전체 내용을 압축해 내 블로그에 정리해놓는다. 한번 정리한 블로그는 다시 들어가지 않는다. 앞으로 정리할 블로그가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어쩌다 내가 취미 블로그 탐방이란 이상한 취미를 갖게 됐는지 궁금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겐 이제껏 자랑하고 싶고 기록하고 싶은 취미생활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도 남들처럼 번듯한 취미생활을 갖고 싶었다.
그 생각은 어떤 회식 자리에서 출발했다. 어색한 자리의 긴장감을 풀어주는 질문목록 중에서도 상단에 위치하는 취미질문을 나눌 기회가 생겼다. 1년에 두 번 있는 협력사와의 회식 자리가 잡힌 것이다. 명절날만 모이는 어색한 가족처럼 데면데면한 우리는 2차쯤 가면 언제나 취미 질문을 나눴다. 하지만 이번엔 자주 보는 드라마 몇 편을 말하고 대충 얼버무릴 수 있는 만만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협력사에 새로 들어온 신입사원 때문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취업했다는 신입은 자신의 사회생활 첫 회식 자리에 대학 시절 배운 소통의 기술을 대입했다. 언제나 진솔하게 상대를 대하는 것이다. 영문과를 졸업했다는 신입은 첫 인상부터 매사에 진솔했고, 회사의 회식 자리라고 해서 언제나 변치 않는 진솔함의 가치가 통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그것은 어느 정도 맞는 생각이었다. 살면서 취미질문을 던지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그 신입사원처럼 취미질문 하나로 테이블의 분위기를 경건하게 만드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취미질문이 나오는 타이밍이 항상 그렇듯 쓸데없는 이야기가 끝난 뒤 테이블엔 잠깐의 정적이 흘렀고 신입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이 대리님은 혹시 취미가 뭐예요?”
나의 적지 않은 사회생활 경험에 비추어볼 때, 취미질문의 핵심은 가벼움이다. 그 가벼움을 위해 취미질문 앞엔 곧잘 권태로운 삶에 대한 자신의 한탄이 덧붙여지는 것이다. 요즘 퇴근하고 집에 가면 할게 너무 없다, 유튜브 몇 개 보면 잘 시간이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낸다, 당신은 퇴근하고 무엇을 하나? 무슨 취미를 갖고 있나? 이런 흐름이 보통이다. 그러면 상대도 회식 자리의 익숙한 취미 레퍼토리를 눈치채고 자신도 특별한 것 없다는 예정된 답변을 한 뒤, 유행하는 콘텐츠와 관련된 화제로 테이블의 즐거움을 되살리는 것이다.
하지만 신입의 질문은 앞뒤 맥락 없이 진중했다. “이 대리님은 혹시 취미가 뭐예요?” 화제를 돌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취미가 궁금해서 물어보는 반짝이는 눈빛, 그리고 그 진지함을 증명하는 느릿느릿하면서도 또박또박한 말투. 그런 말투에선 가벼운 질문이 나올 수 없다. 한순간 모두의 시선이 신입사원과 그 질문을 받아든 첫 번째 대상에게 향했다. 질문을 받은 것은 우리 팀 이 대리였다. 이 대리도 벌써 이곳 협력사와의 회식 자리만 네다섯 번째인 3년 차 직원이었고 취미질문에 익숙했지만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이 대리의 퇴근 이후 일상이 유튜브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던 나는 이 대리의 당황스런 표정이 거의 안쓰러웠다. 이 대리는 결국 회사가 끝난 뒤 유튜브를 보며 권태로운 삶을 보내고 있음을 어색한 미소로 고백했다. 그 뒤엔 사회생활 경험이 풍부한 동료들이 나서 공감을 표하며 상황이 일단락됐지만, 가벼운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신입의 취미를 듣고서 공감을 표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 중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신입의 취미는 자신의 여가시간을 주 단위로 기록하는 것이었다. 그도 처음엔 남들처럼 영상을 보거나 게임을 하며 여가시간을 즐겁게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언젠가 자신이 일주일 전에 무엇을 하며 즐거워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곤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가 말하길 우리가 아무리 쉬어도 쉰 것 같지 않은 기분이 드는 이유는 여가시간에 무엇을 하고 쉬었는지 기억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유튜브로 영상을 본 것은 알지만 무슨 영상을 봤는지는 모르기 때문에 무슨 이유로 즐거웠는지 알 수 없게 되고, 기억할 수 없는 즐거움은 쉼의 기억에 포함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하며 즐거움을 얻었는지 정확히 아는 것만으로 쉼의 효용을 극대화할 수 있으며, 그렇게 되면 새벽까지 자신을 무의미한 쉼의 노동으로 밀어 넣는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신입은 자신의 지난 주 즐거움을 빠짐없이 알려줬다.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는 것이 주된 취미라고 밝힌 그는 지난 주 <보스 베이비>와 <레고 무비>, <미니언즈>를 봤고 그것에 50%의 시간을 썼다고 말했다. 유튜브 보기의 비중은 20%, 인스타그램의 비중이 10%, 무슨 핸드폰 게임의 비중이 10%, 커뮤니티 탐방이 5%, 성인물 감상이 5%라며 자신의 취미 기록을 그 내용까지 빈틈없이 나열하는 신입의 모습에 우리는 모두 감탄했다.(그는 정말 세부적인 내용까지 전부 말했다) 신입은 그래서 자신의 취미가 일주일마다 바뀌는 편이며, 진정한 취미는 그 일주일간의 취미 생활을 기록하는 블로그 쓰기라고 말했다. 이제껏 들어본 적 없는 그의 기묘한 취미 이야기에 매료된 우리는 블로그 제목을 알려달라고 요구했지만 그는 끝까지 알려주지 않았다.
나는 솔직히 그의 블로그를 찾아내기 위해 내가 기억하는 모든 키워드들을 검색했다. 그의 이름부터 협력사 이름, 그가 회식 자리에서 말한 콘텐츠의 이름들을 조합해서 검색되는 블로그들을 하나하나 들어가 보았다. 각종 취미를 기록하는 블로그들도 최신 게시물부터 내가 찾을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 들어가 보았다. 그만큼 그날 신입의 이야기는 내게 강렬했다. 나는 그날 신입의 말에서 예전부터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들, 하지만 그것이 뭔지 몰라 말하지 못한 것들을 찾아낸 것 같다. 내가 항상 풀고 싶었지만 무엇이 문제인지 몰라 계속해서 안고 가던 삶의 불만들이 실체를 드러낸 것 같았다. 나도 더 이상 시간만 때우는 쳇바퀴 같은 취미가 아닌 취미다운 취미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온통 나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그 신입사원의 블로그를 찾기 위해 취미를 기록하는 블로그들을 계속해서 탐방하던 나는 두 가지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신입사원 말고도 자신의 취미를 기록하는 사람은 세상에 많고, 나는 각양각색의 취미들을 읽는 것을 재밌어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내 여가 시간을 후회없이 채워줄 취미다운 취미를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앞으로 이곳에 내 취미 생활이자 블로그 탐방기를 기록해보려고 한다. 여러분도 분명 재밌어할 만한 부분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탐방기를 함께 하다 보면 여러분도 이 익숙한 질문 앞에 한 번쯤 멈춰 서게 될지도 모른다. 여러분의 취미는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