몹시 추운 겨울을 지나고 있다. 칼바람에 쓸린 귀가 벌겋게 물든 사람들이 버스 정류장 앞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겨울 바람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는 내 두 귀도 저들처럼 붉을 것이다. 메모를 하기 위해 수첩 위로 펜을 놀리는 손에는 감각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허겁지겁 써내려가는 글자가 이제는 한글이라 부르기 어려운 모양으로 변해갈 때쯤 메모가 끝났다. 수첩을 덮지도 않은 채로 펜과 함께 주머니에 욱여 넣고 주먹을 쥐었다.남은 네 개의 손가락으로 엄지를 감싸면서 주먹을 쥐면 손이 금방 따뜻해진다고. 누가 그랬더라. 출처도 알 수 없는 얘기였지만, 그간에는 잘 통했던 터라 이번에도남은 네 손가락으로 엄지를 감아 주먹을 쥐었다. 두터운 패딩 주머니에 두 주먹을 쏙 넣고 버스가 달려올 방향을 바라봤다. 버스가 오고 있었다. 여전히 차게 굳은 손으로 주머니 속 카드를 움켜쥐었다. 자, 이제 집으로 가자.
운이 좋았다. 딱 하나 남아있던 빈자리에 엉덩이를 붙였다. 벽과 지붕의 존재만으로 몸이 녹는 것 같았다. 좌석에 등을 묻고 창밖을 내다봤다. 밤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어둑한 거리 위해 새빨간 불빛이 그득했다. 조금 전 지나온 길목의 전구 장식이 떠올랐다. 전봇대였는지, 가로등이었는지, 아예 다른 기둥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위로 색색의 전구를 감아올려 장식해뒀었다. 그를 보니 연말이 확실히 실감났다. 2022년이 끝나가고 있구나. 시원한가, 섭섭한가 생각하기도 전에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하나 확실한 것은 서른이 되는 내년이 퍽 반갑다는 것이었다.
철 없는 소리지만, 나는 내 나이에 대한 감각이 무디다. 내년에 서른인데 아직도 스물 중반 어디를 헤매고 있는 것 같다. 그 때문에 나는 이십대 후반이 됐을 무렵부터 얼른 삼십대에 진입하고 싶었다. 앞자리가 바뀌면 이미 내가 지나온 곳을 헤매던 감각도 화들짝 놀라 나를 쫓아올까봐.
그런 반면에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한 채 서른을 맞이한다고 생각하면 조금 염려스럽기도 하다. 그래도 이미 한 번 겪어본 일이라고 설렘으로 둥둥 떠오르다 푹 꺼져버린 스물과는 다를 거란 생각이 든다. 분명히 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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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주간열음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매주 한 편의 글을 올린다는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앞으로 주간열음은 자유연재로 연재 주기가 변경됩니다.
그럼 즐거운 크리스마스, 즐거운 연말 되시길 바랍니다.
2022.12.24
사랑을 담아
김열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