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해주시겠습니까?

사명감 없이 시작한 NGO 후원모금 이야기

by 지소영

살다보면 그럴 때가 있다. 움켜쥔 모래알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가듯. 잃는 것이 최선이 되는 시간.

서른 다섯은 내게 상실의 시대였다. 망상과 집착으로 스스로 갉아먹던 병든 짝사랑을 끝냈고, 그 충격으로 급기야 평생 직장이라 여기던 회사를 그만 두게 되었다. 그 와중에 나는 건강마저 무너졌다. 부모님의 간절한 눈동자 속에 비친 내 모습이 한없이 낯설었다. 몸과 마음을 가까스레 추스리고 출발선에 겨우 세웠지만, 이미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무엇을 해도 오래가지 못했다. 보통은 두세달을 근근히 해내었고, 심한 경우에는 2주 버티는 것도 힘들어했다. 물론, 교육을 받다 도망치기도 일쑤였다. 잦은 이직에는 구구절절한 이유들이 있었지만, 결국 '그 일을 할만한 깜냥이 못된다'는 한 줄로 요약되었다. 조금이라도 도전이 필요한 일이면, 어김없이 포기부터 하는 것이다. 대학졸업 후, 총 8년 10개월의 직장생활을 했던 나의 근성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거리에 나뒹구는 낙엽만 보아도 눈물이 떨어졌다. 또래 친구들은 결혼을 해서 육아와 살림으로 바쁘다. 그나마 시집을 가지 않은 몇몇은 커리어 우먼으로 당당히 싱글을 즐기고 있다. 나름 열심히 살아왔는데, 뭐 하나 제대로 하는게 하나 없는 내가 너무 하찮았다. 존재감이 위협 받을 수록, 나는 강박적으로 구직 사이트에 매달렸다. 아침에 눈을 떠 밤에 잠들때까지, 채용공고를 이 잡듯이 뒤지면 비로소 내가 해야할 바를 다 한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하도 많이 보니까, 이제 게시글만 보아도 인사담당자의 심리, 노동강도, 기업문화까지도 대략 가늠할 수 있었다.


'어렵진 않겠네' 무미건조한 얼굴로 습관처럼 채용공고들을 클릭하다가 <후원권유 아웃바운드 모집>이란 제목을 마주했을 때, 처음 들었던 생각이다. '일단, 후원에 관심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이니, 거칠고 예의 없는 진상들은 없겠군.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일은 덜하겠어. 거래되는 유형의 상품이 없으니까 배송, 교환, 환불처럼 복잡한 절차를 배울 필요도 없을테고. 실적이 문제이긴 한데, 설마 NGO가 영리를 추구하는 여타의 기업처럼 영업 스트레스를 주겠어? 어차피 기본급은 보장이 되잖아.' 소외된 이웃을 위해 내가 작은 보탬이 될 수도 있겠다란 모범적인 동기는 이미 머릿속에 모든 계산이 끝냈을 때서야 슬그머니 보태어졌다.


남의 속사정도 모르고 후원자들은 종종 수화기 너머로 따뜻한 응원을 해주신다.

'난 평생 내 입에 풀칠 하기도 바빴는데 선생님은 이렇게 훌륭한 일을 하시네요!'

'복 받으실꺼예요!'

'좋은 일에 힘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무일푼으로 봉사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다.

부끄러움에 두 볼이 화끈거린다.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고개가 저절로 숙여진다.

메마르고 황량해서 풀 한 포기 나지 않은 내 마음에 어쩌자고 귀한 씨앗을 자꾸 뿌려대나 말이다.


'아니예요. 난 그럴말한 자격이 없어요.' 손사래를 치면서도 나도 모르게 단전에 힘이 들어가고, 다음 통화에서 목소리에 흥이 돋는다. '누군가를 도와라'라는 명령어보다 '이미 누군가를 돕고 있다'는 인정의 말이 사람을 변화시키는데 더욱 효과적이라더니. 근사한 말을 자주 들을수록, 그런 칭찬이 어울릴만한 태도를 갖추고 싶어졌다. 결국 나 먹고 살기 위해 하는 밥벌이더라도 어떠한 마음으로 임하냐에 따라 그 가치는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짧은 기도로 업무를 시작한다. '주님, 지금 이 순간도 열악한 환경에서 고통받는 아이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소서. 한 명의 아이라도 더 살릴 수 있도록 제게 주어진 일에 성실히 임하게 하시고 당장 눈 앞에 큰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실망하지 않게 하소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유난히 기운이 빠지고 허공에 돌팔매질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날이면, 마더테레사의 '난 결코 대중을 구원하려고 하지 않는다'란 글을 떠올려 본다.

난 다만 한 개인을 바라볼 뿐이다. 난 한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다. 한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껴안을 수 있다. 단지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씩만. 따라서 당신도 시작하고 나도 시작하는 것이다. 난 한 사람을 붙잡는다.만일 내가 그 사람을 붙잡지 않았다면 난 4만 2천명을 붙잡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노력은 단지 바다에 붓는 한 방울, 물과 같다.하지만 내가 그 한 방울의 물을 붓지 않았다면 바다는 그 한 방울만큼 줄어든 것이다.당신에게도 마찬가지다. 당신의 가족에게도 당신이 다니는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단지 시작하는 것이다. 한번에 한 사람씩.


특히, '바다에 붓는 한 방울 물과 같다'라는 이 구절을 몇번이고 되새긴다. 나의 한 통의 전화가 부족해서 미처 피어보지도 못하고 시들어가는 어린 생명이 있을지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면, 흐트러진 마음이 이내 정돈되곤 한다. 매일 수백통의 전화로 후원을 권유하는 건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수많은 아이들에게 희망을 담아 편지를 쓰는 일이다. '나도 살테니, 너희도 살아내거라. 너희의 소리없는 울부짖음을 듣는 이가 여기 있다. 절대 포기하지 말거라. 조금만 버텨내거라.'


나와 내 가족의 안위만을 바라보는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나를 둘러싼 세상으로 눈을 돌리면서, 내면에 짙게 드리워진 우울이 걷히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그동안 당면한 삶의 과제들을 해결하는데 급급해서 살아왔다. 학창시절에는 대학에 합격할 수 있을까. 대학졸업하면 뭐 해먹고 사나. 때에 맞춰 승진은 해야할텐데. 인생의 동반자를 찾아야지. 관심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온통 나였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타인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들여다본적이 없었다. 이 일을 하면서 많은 사례들을 접한다. 내가 평범하게 누리는 것들이 결코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우리의 작은 도움의 손길이 모여 이루어내는 기적들을 체험하게 된다. 나와 너가 연결되어있고, 서로가 서로를 지탱하는 힘이 된다는 단순한 진리를 배운다. 처음부터 가슴 두근거리는 사명감과 소명의식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후원자들의 진심 어린 격려가 나를 성장시키고 있다.마음의 고랑에 여기저기 흩어졌던 씨앗들이 기어이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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