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소영 Nov 13. 2022

그대, 삶이 권태로운가요

아침, 저녁으로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다. 한 해를 시작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시간은 연말로 향한다. 요즘 들어 부쩍 주변에 마흔앓이를 하는 이들이 늘었다. 다들 한 해 동안 뭘하며 살았나 반추하다가 결국 '여긴 어디, 나는 누구'라는 존재론적 물음을 던지게 되나보다.


마흔앓이. 제2의 사춘기라고 불릴 정도로 신체적, 심리적으로 큰 변화를 겪는 시기다. 사십춘기 증상에는 다소 개인차가 있지만 대개 비슷한 레퍼토리가 있다. 참을 수 없이 인생이 권태롭댄다. 매일 반복되는 지겨운 일상. 더 이상 무엇에도 설레지 않고 더 기대할 것도 없는 하루하루라는 것이다. 마흔쯤되니 커리어우먼도 전업주부도 각자 나름대로 자신의 일에 익숙해질대로 익숙해버렸고 이미 이만치 걸어온 길에서 과감히 벗어나 새로운 무언가를 탐색하자니 그 정도의 열정은 없다고 한다.


나는 마흔줄에 갓 입직한 새내기인지라 하나부터 열까지 생소한 일뿐이고 외려 언제쯤 업무를 수월하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형편이니 불행 중 다행이려나. 이러한 개인사정으로 큰 마흔앓이 없이 무난히 지내고 있다. 그런데 마음의 갈피를 못 잡고 방황하는 또래의 친구들은 종종 내게 묻는다. 재미있게 사는 비결이 뭐냐고. 나는 좀처럼 심심해 보이지가 않더란다. 매일이 좌충우돌이고 우당탕탕의 연속인 신규직원의 적응기라 그렇게 보이는 것 뿐이라고 해도 그들은 동의하지 않는다. 예나 지금이나 생동감이 있다고. 내게는 지루한 기색을 찾아볼 수 없다는 평이다.


일례로 내가 출간한 전자책을 꼽았다. 최근 나는 첫 브런치북 <후원해주시겠습니까>를 전자책으로 만들어 교보문고, yes24, 알라딘 등의 온라인서점에서 공식판매를 시작했다. 이야기인즉 취미삼아 한,두편 써내려가던 글을 실제 어떤 결과물로 만들어내는 동력에 적잖이 놀랐다는 말이다. 이 대목에서 사실 나는 조금 뜨끔했다.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내게 처음부터 큰 그림이 있었던 게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상반기에 어느 전자책 플랫폼으로부터  나의 글을 전자책으로 만들어 게재하고 싶다는 제안을 받았었는데 그것을 계기로 ISBN(책 유통을 위한 국제적 관리번호)을 발급받아 출판등록 하는 방법을 찾아보게 된거였다.


언젠가 나도 출간해보고 싶다라는 막연한 바램은 있었지만 두 팔을 걷어올리고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꼭 어떻게 해봐야지란 목표의식이 있었던게 아니다. 굳이 나를 칭찬하자면 그저 글 쓰는 자체를 즐겼다는 정도. 매주 한 편씩 꼭 써야지란 강박도 스스로에게 주지 않았다. 쏟아내지 않고는 못 배길 만큼 영감이 그득 차올랐을때 비로소 활자들이 백지 위에서 신나게 춤을 추었다.


얼마 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박은빈 배우가 유퀴즈에 나왔다. 아역배우부터 무려 27년간 어떻게 한 길만 갈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의외의 대답을 한다. 한 우물을 파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고. 언제든 이 길이 아니다 싶으면 다른 일을 할 수 있도록 기반을 쌓아야겠다는 심산이었고 언제나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였다고 말했다.


끝장을 보려고 하면 숨이 막힌다. 의욕이 앞서면 자칫 일찍 지칠 수 있다. 재미를 느낄 여유도 없고 그러다보면 흥미를 잃기 마련이다. 인생이 그야말로 지겨워진다. '되면 좋고 아님 말고'식의 마인드가 필요하다.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자포자기가 아니다. 대충 살라는 말은 더더구나 아니다. 마음에 바람이 통하고 볕이 들도록 틈을 주자.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질 것이다. 나도 실천하기가 어렵지만 의식적으로 노력하니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똑같은 음식을 먹어도 누구와 함께 먹었는지, 그 날의 분위기는 어땠는지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이다. 매일 똑같이 굴러가는 일상이라도 힘을 빼고 온전히 음미해보면 오늘은 어제와 분명 다르다. 오후의 햇살이 유난히 눈부셨고 어제는 미처 몰랐던 할인혜택을 알게 되었으며 나를 스쳐간 인연의 향기가 특별했다. 실수가 많은 하루였으나 엉망진창인 당신이 있는 그대로 사랑스럽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에는 잘해보겠다며 다짐하는 모습이 기특하다.


아름다움을 알아볼 수 있는 안목, 심미안은 잔뜩 긴장한 영혼에는 깃들지 않는다. 그리하여 삶이 참을 수 없이 권태로운 그대여, 무엇보다 평화가 함께하기를. 신은 오늘도 당신을 축복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꽃에 대한 사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