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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소영 Feb 08. 2023

완전연소하는 삶

게으름병이 도졌다. 출퇴근만 겨우하고 집에 오면 그야말로 침대와 혼연일체가 되어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다 잠이 든다.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기 싫은 상태. 주말에도 딱히 하는 거 없이 빈둥댄다. 날씨가 좋으면 약속을 잡을까 하다가도 이내 고개를 도리도리, 만사 귀찮다. 그나마 직장을 다니니 때맞춰 일어나 씻고 나갈 준비를 하는거지, 그도 아니었으면 사람 구실 못할 뻔했다. 


이런 나에게 오늘 큰 깨우침을 준 것이 있었으니 어느 100세 할머니의 일과를 담은 영상이다. 100세쯤되면 손 하나 까딱하기도 힘에 부칠거 같은데 할머니는 연신 몸을 굴리신다. 외출할 곳도 없는데 아침 일찍부터 말끔히 씻고 화장을 곱게 한다. 그 연세에 2km거리의 시장을 운동삼아 일부러 걸어다니고 혼자 생활하는지라 살림도 모두 본인이 직접 챙긴다. 필요하면 망치도 스스로 뚝딱하고 100세에 영어를 배우겠다며 매일 알파벳을 공부한다. 할머니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나이가 80만 되었어도 영어를 훨씬 수월하게 배울 수 있을텐데"


세상에. 여든에도 도전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다면 내 나이 마흔에 시작할 일은 천지 빼가리일테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 보여주려는 것도 아닌데 하루하루를 허투루 보내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생명력에 그저 최선을 다하는 할머니를 보니 지금의 내가 부끄러웠다. 


문득 성경모임에서 알게 된 동생도 생각났다. 그녀는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누군가와는 함께 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선배와 함께 살고 있다길래 외로움을 많이 타서 그런가보다 했다. 근데 편하게 지내는 것이 싫어서랜다. 혼자 살면 누가 간섭하는 사람이 없으니 뭐든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고 그러다보면 자꾸 익숙하고 편한 방식으로만 살고싶게 될 것이라고 했다. 다소 불편하더라도 하우스메이트가 있으면 타인을 의식해서라도 항상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다고 했다. 


나보다 나이가 훨씬 어린 친구가 어떻게 그런 기특한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싱글로 산다는건 겉으로는 한없이 자유로워보이지만 그만큼 더 철저한 자기관리가 필요한 일이다. 본능에만 충실하다보면 자칫 게으름의 굴레에 갇히게 된다. 별 볼일 없는 초라한 싱글로 전락하는건 한 순간인 것이다. 


잉여짓으로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는 요즘의 나는 분명히 직무유기. 나에게 허락된 영육간의 건강을 생산적으로 쓰지 않고 인생을 낭비한 것도 죄라면 죄다. '내가 헛되이 보내는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었다'라는 명언도 있지 않은가. 무탈한 하루는 축복이다. 축복을 제대로 누리는 삶을 살자.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창문을 활짝 연다. 한바탕 방청소를 하고나니 온몸에 덕지덕지 묻은 묵은 때를 훌훌 털어 버리고 싶다. 이럴때는 반신욕만한게 없다. 욕조에 몸을 담그고 때밀기에 몰두하는 나 자신을 보자니 피식 웃음이 났다. 마음이란 요상하다. 어떤것에도 의욕이 없어 운신의 폭이 새끼손가락 한 마디같다가도 억지로라도 몸을 움직이면 별 거 아닌일에도 쓸데없이 두 팔을 걷어올리고 열심히 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사람은 안 변해'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은 언제고 변할 수 있다'는 말이 더욱 설득력있게 들린다. 우리는 살아있는 유기체로서 자생하는 존재이기에 언제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겨우내 웅크리고 있던 무기력한 나를 깨운다. 저 멀리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백세시대에 마흔은 아직 한창 나이. 어쩌면 본격적인 인생은 지금부터 아닐까. 생의 마지막 궁극의 나는 내가 이룰 수 있는 최고버전(best version of me)이기를 바란다. 내 안의 에너지를 백퍼센트 완전 연소하는 삶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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