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소영 Sep 12. 2023

관계의 미학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식사하고 나오는 길. 밥값을 내겠다는 친구의 말에 함박 웃음을 지었다.


"고마워라. 맛있게 잘 먹었어."

"어머 소영아, 너 많이 변했다. 어릴 때 기억나? 한사코 자기 몫은 자기가 내겠다며 번번이 실랑이를 벌였자나. 지금에서야 말하는데 너 그럴때마다 내심 서운했다. 우리가 그 정도 사이밖에 안되나 싶기도 하고 말야."


그러고보니 그랬다. 남에게 빚지고는 못 사는 성격탓에 도움 받는 만큼 따박따박 갚아야 직성이 풀렸으니 말이다. 타인에게 폐 끼치며 살기 싫다는 명목하에 유난스럽게 깔끔을 떨었다. 좋게 포장하자면 경위가 바른 것이지만 조금만 각도를 틀어서 보면 그만큼 정이 없다는 거다. 똑부러진 계산 이면에는 '나는 당신에게 부담을 안 줄테니 당신도 나에게 부담을 주지 말 것'이라는 암묵적인 메세지가 있다.


근데 이 나이가 되어보니 알겠더라. 인간사 그렇게 매사 정확하게 아귀가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 A라는 사람에게 받았던 도움을 당사자에게 미처 갚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그로 말미암아 위기에 처한 B라는 사람을 구하게 되는 날이 있다. 타인에게 내가 베풀었던 선행이 돌고 돌아 그 공덕으로 내 아이가 누군가로부터 돌봄을 받게 되기도 한다. 남의 도움 1도 안 받고 살 수 있는 인생이 있을까? 우리 모두는 제 힘으로 몸을 채 가누지 못한 신생아때부터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한 존재였다. 지지고 볶으면서 그 와중에 조금 손해보기도 하고 더러는 덕보기도 하면서 더불어 살아간다. 이웃에게 곁을 내어 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삶이 행복하다.


최근 인사발령으로 또 한 가지 변화된 내 모습을 발견했다. 부서 이동을 하게 되면 생소한 업무를 배우기도 바쁘지만 무엇보다 새로운 조직에 적응하기가 어렵기 마련이다. 기존의 조직원들은 전입 온 나 '한 명'만 파악하면 되지만 나는 졸지에 '낯선 다수'를 한꺼번에 상대하게 된다. 나름 조화를 이룬 그들만의 세상에 나라는 외계 생명체가 출현하면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쏠린다. 사회초년생 때는 그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쉽게 조급해지곤 하였다. 어떻게든 빨리 '그들의 세상'에 끼고 싶어서 행동을 과장하고 누가 봐도 자연스럽지 않은 연결고리를 만드느라 분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나와 같은 속도로 다가와주지 않으면 노심초사하며 안절부절 못했뜨랬다.


하지만 이제는 조급해하지 않는다. 모든 관계에는 밥짓기처럼 뜸 들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것을 알기 때문이다. 밥솥내에 열기가 밥알 전체에 고루 퍼지고 잔열을 활용하여 수분이 밥알에 잘 스며들게 해야 밥맛이 제대로 나는 것처럼 나와 너의 세계가 마침내 공명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물리적인 시간은 불가피하다. 뜸들이기를 진득하게 기다리지 못하고 자꾸 들여다보면 관계도 밥처럼 설익는다. 시간이라는 삶에 보배같은 추억을 하나하나 정성스레 꿰어 우리는 비로소 친구가 된다. 때로는 다투기도 하고 실망하면서 그렇게 가까웠다 멀었다를 반복하여 서로에게 의미가 된다.


모든 관계에서 자유하지는 못하지만 관계의 미학을 어느 정도 실천할 수 있는 지금이 좋다. 다사다난했던 인연들 속에서 몇 개의 허물을 벗고 어엿한 성체가 되어가는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다. 남은 생 내게 찾아오는 귀한 인연들을 소중히 지킬 수 있는 지혜를 꾸준히 갖춰나가기를 기대해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