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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리스 부인 Sep 23. 2022

스탤론을 하루에 세 번 만난 날

추억의 영화와 극장 이야기 - 1 -

별다른 오락거리가 없었던 80년대, 내 유일한 취미는 영화 관람이었다. 그 시절에는 지금처럼 netflix, 애플 TV 같은 온라인 플랫폼이 발달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시내에 있는 극장에 가야만 했다.


하지만,  80년대의 극장은 거의 대부분 스크린을 하나만 가진 단관 개봉관이었다. 서울에는 종로 3가를 중심으로 강북지역에 대부분의 극장들이 모여 있었다.


종로3가역의 피카디리 극장과 단성사 그리고 서울극장이 있었고, 충무로의 대한극장, 중구에 명보극장과 스카라 극장, 낙원동에 허리우드 극장이 있었다.


스크린 수가 적다 보니, 영화 한 편은 하나의 극장에서만 개봉해서 변두리의 재개봉관으로 넘어가기 전까지 오랜 기간 동안 상영되곤 했다.

그러니, 인기 영화가 개봉되면 첫날부터 매표소 앞에 장사진을 친 줄이 길게 늘어서기도 했다. 지금은 상상하기도 힘들지만 그때 극장 앞에 가면 미리 표를 사서 비싼 값에 넘기는 암표를 거래하는 사람도 심심찮게 만나곤 했다.


나름 영화광인 나는 하루에 한편 영화를 보는 것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 한 번 영화를 보러 가면 두 편 이상씩 관람하곤 했다. 그러니 관람할 영화를 선택하는 나만의 기준도 생겼다.

일단 사람이 없고 입소문이 나지 않은 영화를 먼저 봤다. 인기 있는 영화는 개봉 시기를 피해 간판을 내릴 즈음에 가서 보았으며, 부득이하게 봐야 한다면 사람이 제일 없는 마지막 관람시간을 택하곤 했다.

이렇게 하면, 줄을 서지 않고도 하루에 두 편 이상의 영화를 여유 있게 관람하곤 했다.


87년 가을의 주말, 오늘 볼 첫 영화로 골라놓은 것은 실베스터 스탤론 주연의 영화 '코브라 cobra'였다. 

자전적 영화 '록키'로 데뷔에 성공한 스탤론은 이후 '람보', '록키 2'와 같은 여러 영화를 내놓으며 대배우로 성장해 갔다. 하지만, 이후의 영화는 작품성보다는 상업성이 짙은 영화가 대부분이었고, 스탤론도 출연하는 작품에 맞게 미국을 상징하는 액션배우로서의 이미지가 굳어져 갔다.

그 전환기의 대표적인 작품이 조지 P 코스마토스 감독의 '코브라' 다.

 

스탤론은 이 영화에서 악행을 저지르는 범죄 집단을 무자비한 폭력으로 응징하는 주인공 형사인 코브레티 역으로 출연했다. 또 여주인공인 잉그리드 역은 스탤론의 부인인 브리짓 닐슨이 맡았다.

이 영화는 한국에서도 꽤 흥행에 성공했다. 이 영화를 관람하러 종로 3가에 있는 피카디리 극장에 갔을 때만 해도 국내에서만 20만 명이 넘게 보았다고 신문광고가 나와 있을 정도였다. 

인기 있는 영화라 해도, 상영을 한 지 꽤 되어서 그런지 줄을 서지 않고 여유 있게 관람을 할 수 있었다.

(그때 근처에 있는 극장인 단성사에서는 아널드 슈워제네거의 '프레데터'가 서울극장에서는 이규형 감독의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가  개봉하여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선 것이 기억난다.)


코브라를 보고 근처 다른 영화를 하나 더 보려고 했으나, 단성사와 서울극장 앞에 줄 서 있는 사람들을 보고 중구에 있는 명보극장으로 향했다. (인터넷이 없어 어느 극장의 예매율을 알려면 직접 가 보는 수밖에 없었다.)


명보극장에는 역시 스탤론 주연의 영화 '오버 더 탑(over the top)' 이 상영되고 있었다. 스탤론이 우람한 근육을 가진 상대와 대결하는 팔씨름 영화였다. 이 영화는 주인공이 헤어진 아들과 같이 살기 위해 팔씨름 대회에 출전하여 고난 끝에 우승하고 아들과 재회하는 줄거리였다. 

스탤론이란 당대 최고의 스타가 출연하고 가족단위로 같이 볼 수 있는 따뜻한 스토리의 영화였으나 당시에 흔치 않은 팔씨름을 소재로 한 탓인지 미국과 한국에서 둘 다 크게 흥행은 하지 못한 영화였다.

   

개인적으로는 스탤론이 분한 주인공인 트럭 운전사 호크가 큰 트럭을 운전하며 넓은 미국 대륙을 횡단하는 장면과 영화 전반을 적시는 OST(케니 로긴스 같이 영화 OST에 전문적으로 참여하던 수준 있는 뮤지션이 많이 참가했다. 케니 로긴스의 'Meet me half way'는 영화의 배경과 잘 어울리는 음악이다. 참, 요즘 영화 탑건 2, 매버릭이 개봉되며 그가 탑건 1에서 부른  Danger Zone 도 다시 회자되고 있다. )가 인상 깊은 영화였다.


영화 두 편을 보고 나니 오후 3시가 되었다. 아직 집에 가기는 조금 아쉬운 시간.


내 눈에 명보극장의 대각선에 있는 스카라 극장의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스카라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는 역시 스탤론 주연의 '록키 4'였다.  

또 주인공이 '스탤론' 이란 것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망설임 없이 표를 구매했다. 

당시 록키 4는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영화였다. 냉전시대를 배경으로 미국과 소련이 권투로 맞붙고 결국 록키가 미국을 대표해 승리한다는 (지금 다시 보면 전형적인 국뽕 영화이다.) 전형적인 스토리의 영화로 록키 시리즈 중 가장 흥행에 성공한 영화이기도 했다.

미국에서의 인기와 다르게 한국에서는 그다지 흥행에 재미를 보지 못했는데, 그 이유로는 영화가 인기가 너무 높다 보니 불법으로 복제된 영화가 비디오 가게마다 깔려, 영화 개봉 전에 상당수의 사람들이 비디오로 영화를 본 탓이라는 말이 있었다.


지금처럼 제작된 영화가 실시간으로 개봉되는 시기에 한 명의 동일한 배우가 (그것도 조연도 아닌 주연배우) 출연한 영화가 세 편이나 동시에 개봉된다는 것은 보기 힘든 일이다.


OTT나 유튜브로 쉽게 영화를 볼 수 있는 요즘에도, 그 시절에 봤던 영화가 그리운 것은 한 편의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으로 버스를 타며, 몇 시간이고 기다려 줄을 서는 시간에 느꼈던 설렘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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