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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 Apr 12. 2024

나의 반쪽, 왼손

"죽어서 제사 지내주는 건 아들이다. OO아, 너도 아들 가져라."


 지금 살아계셨다면 100세가 넘으셨을 외할아버지의 남아선호사상은 강렬했다. 며느리를 넘어서, 사위에게도 한결같이 아들의 필요성을 강조하셨다. 그런 외할아버지 바람과는 반대로 손녀, 외손녀가 줄줄이 태어나는 상황이었다. 


 외할아버지의 강한 아들 집착처럼 나는 오른손, 오른발에 대한 강력한 믿음이 있었다. 후천적으로 타고난 건지, 선천적인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모든 면에서 오른쪽이 우수했다.


 지난주 일요일에 다친 다음날 빨갛게 퉁퉁 붓고, 통증은 심해졌다. 응급실에서 밤에 받은 처치로 금방 나을 줄 알았는데 정반대였다. 그렇게 이틀을 더 앓다가 결국 입원하게 되었다. 다친 손에 세균이 침투했고, 균이 팔꿈치를 향해서 퍼져나가고 있었다.


 처음 손을 다쳤을 때, 오른손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일상생활은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병뚜껑을 열 때도 왼손으로 병을 잡고, 오른손으로 병뚜껑을 돌린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옷을 한 손으로 겨우 입었지만 평소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뒤에서 머리를 묶으려고 보니, 왼쪽 머리가 삐져나왔다. 지금 치고 있는 타이핑도 오른손으로 바쁘게 움직여야만 쓸 수 있었다.


 다치기 전까지는 몰랐다. 나의 일상에 티 나지 않게 지지하던 왼쪽 세상을. 한쪽으로만 지탱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 줄 몰랐다. 당연한 일상에 욕심이 더해져 있었는데... 지금은 욕심이 반쯤 줄어들었다. 물론 며칠 지나서 다시 돌아가겠지만 말이다. 


 외할아버지의 아들 타령에도 종종 찾아오는 사람은 딸이었고, 외손녀였다. 나 역시 오른쪽 중심의 세계관을 받쳐온 것은 왼쪽팔과 다리였다. 그렇게 티 나지 않게 한 세상을 지탱해주고 있는 고마운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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